Homily/★ 빠다킹 신부님과 새벽을..

마음의 대청소를 합시다. 가능하다면 고백성사도 좋겠어요.

ohjulia 2006. 3. 14. 06:03
2006년 3월 14일 사순 제2주간 화요일

제1독서
이사야 1,10.16-20
10 소돔의 지도자들아, 주님의 말씀을 들어라. 고모라의 백성들아, 우리 하느님의 가르침에 귀를 기울여라.
16 너희 자신을 씻어 깨끗이 하여라. 내 눈앞에서 너희의 악한 행실들을 치워 버려라.
악행을 멈추고 17 선행을 배워라. 공정을 추구하고 억압받는 이를 보살펴라. 고아의 권리를 되찾아 주고 과부를 두둔해 주어라.
18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오너라, 우리 시비를 가려보자. 너희의 죄가 진홍빛 같아도 눈같이 희어지고, 다홍같이 붉어도 양털같이 되리라.
19 너희가 기꺼이 순종하면 이 땅의 좋은 소출을 먹게 되리라. 20 그러나 너희가 마다하고 거스르면 칼날에 먹히리라.” 주님께서 친히 말씀하셨다.


복음 마태오 23,1-12
1 그때에 예수님께서 군중과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2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모세의 자리에 앉아 있다. 3 그러니 그들이 너희에게 말하는 것은 다 실행하고 지켜라. 그러나 그들의 행실은 따라 하지 마라. 그들은 말만 하고 실행하지는 않는다. 4 또 그들은 무겁고 힘겨운 짐을 묶어 다른 사람들 어깨에 올려놓고, 자기들은 그것을 나르는 일에 손가락 하나 까딱하려고 하지 않는다.
5 그들이 하는 일이란 모두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한 것이다. 그래서 성구갑을 넓게 만들고 옷자락 술을 길게 늘인다. 6 잔칫집에서는 윗자리를, 회당에서는 높은 자리를 좋아하고, 7 장터에서 인사받기를, 사람들에게 스승이라고 불리기를 좋아한다.
8 그러나 너희는 스승이라고 불리지 않도록 하여라. 너희의 스승님은 한 분뿐이시고 너희는 모두 형제다. 9 또 이 세상 누구도 아버지라고 부르지 마라. 너희의 아버지는 오직 한 분, 하늘에 계신 그분뿐이시다. 10 그리고 너희는 선생이라고 불리지 않도록 하여라. 너희의 선생님은 그리스도 한 분뿐이시다.
11 너희 가운데에서 가장 높은 사람은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12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




자신의 낡고 좁은 집이 늘 불만인 청년이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넓은 새 집으로 이사를 가자니 가지고 있는 돈이 너무나 적었지요. 그래서 그는 자신에게 이런 돈이 없음을, 또한 이런 돈을 물려줄 부모가 안 계심을 항상 원망하면서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자신이 살고 있는 마을에 이 나라에서 가장 현명하다는 노인이 왔다는 이야기를 친구로부터 전해 듣게 되었습니다. 그는 노인을 찾아가서 말했지요.

“저는 너무나도 작고 낡은 집에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보다 훨씬 넓은 새 집으로 이사를 가고 싶습니다. 그런데 가지고 있는 돈은 하나도 없지요. 이 상황에서 제가 어떻게 하면 될까요?”

이 말에 노인은 수탉 한 마리를 사서 집안에 풀어 놓으면 고민이 해결될 것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반신반의했지만 워낙 지혜 있는 사람이라는 평을 받고 있었던 노인인지라 그의 말대로 했습니다. 그러나 사방에 날리는 닭 깃털과 흩어져 있는 닭 모이 때문에 집 안은 전보다 더 좁고 더러워졌습니다.

청년은 다시 노인을 찾아갔습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염소 한 마리를 수탉 옆에서 키우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염소가 닭을 쫓아 집 안을 뛰어다니는 바람에 집 안은 더욱 엉망이 되고 말았습니다.

화가 난 청년은 또 다시 노인을 찾아갔습니다. 그러자 노인은 암소마저 집 안에 끌어다 키우라고 합니다. 이제는 좋아졌을까요? 더욱 더 최악의 상황으로 변했답니다.

청년은 녹초가 되어 노인을 다시 찾아가 더 나은 방법을 물었습니다. 그러자 노인은 말했습니다. “이제 그 동물들을 모두 집 밖으로 끌어내시오.”

집으로 돌아온 청년은 닭을 우리에 넣고 염소와 암소를 마당 말뚝에 매어 놓은 뒤 집안을 치웠습니다. 그러자 그렇게 좁았던 집안이 한없이 넓게 느껴지더라는 것입니다.

바로 이 이야기는 우리들의 마음을 말하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원래의 우리 마음은 너무나 깨끗했지요. 아무 것도 없는 상태, 그러나 그 안에 어떤 것이 들어옵니다. 그리고 또 다른 어떤 것들이 있어야 그 안이 더욱 더 좋아질 것이라고 생각하지요. 하지만 그 무엇이 들어오면 올수록 마음은 더욱 더 지저분해지고 정신없어 지고 맙니다. 오히려 내 마음 안에 있는 것들을 치워 나갈 때, 깨끗하고 나에게 딱 맞는 마음을 얻을 수가 있는 법인 것이지요.

이렇게 나의 마음을 채움으로써 스스로를 힘들게 하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요? 바로 이 세상에서 말하는 욕심이라는 것이 아닐까요? 물질에 대한 욕심, 명예에 대한 욕심들..... 그 욕심들이 스스로를 힘들게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은 또 다른 욕심으로 마음을 채우려고 하는 것이지요.

예수님께서는 오늘 복음을 통해 말만 하고 실행하지 않는 율법학자나 바리사이가 되지 말고, 진정으로 겸손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하십니다. 이 말은 내 안에 있는 욕심의 마음을 치워나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진정으로 행복해질 수 있다고 합니다.

지금 내 마음을 객관적으로 바라보세요. 너무나 지저분하지 않나요? 그렇다면 한번 대청소를 해보세요. 그 대청소의 방법은 ‘회개’입니다.


마음의 대청소를 합시다. 가능하다면 고백성사도 좋겠어요.



삶의 목표('좋은 생각' 중에서)

공동묘지 관리인에게 수년 동안 한 주일도 거르지 않고 한 여인으로 부터 편지와 우편환이 동봉되어 왔다. 죽은 자기 아들의 무덤에 신선한 꽃다발을 갖다 놓아 달라는 부탁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병색이 완연한 늙은 부인이 커다란 꽃다발을 안고 와서는 조용히 말했다.

“오늘은 제가 직접 아들의 무덤에 꽃다발을 놓아 주려고 왔습니다. 의사선생님이 제가 앞으로 몇 주일밖에 더 살지 못하게 될 것이라고 해서 말입니다.”

관리인은 말없이 그 여인을 쳐다보다가 드디어 결심한 듯이 말했다.

“부인, 저는 꽃을 사라고 부인이 계속 돈을 부쳐 주시는 걸 보고 늘 유감으로 생각했습니다.”

“유감이라니요?”

“유감이지요. 이곳에서는 어느 누구도 그 꽃을 보거나 향내를 맡을 수가 없으니까요. 하지만 주립병원이나 정신병원 같은 곳에 있는 사람들은 정말 꽃을 좋아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꽃을 볼 수도 있고 그 향내를 맡을 수도 있습니다. 부인, 그런 곳에는 살아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무덤에는 아무도 없습니다.”

부인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잠깐 동안 앉아 있다가 한마디 말도 없이 가 버리고 말았다. 몇 달이 지난 뒤 그 부인이 다시 찾아왔다.

“당신 말이 맞았어요. 나는 직접 꽃다발을 다른 사람들에게 갖다 주었습니다. 그렇게 하니까 사람들이 몹시 기뻐하더군요. 그리고 저도 기뻐지고요…. 의사는 어떻게 해서 내가 이렇게 다시 건강해졌는지 그 이유를 모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분명히 알고 있습니다. 지금 저는 삶의 목표를 다시 찾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