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독서 이사야 50,4-9ㄱ 4 주 하느님께서는 나에게 제자의 혀를 주시어 지친 이를 말로
격려할 줄 알게 하신다. 그분께서는 아침마다 일깨워 주신다. 내 귀를 일깨워 주시어 내가 제자들처럼 듣게 하신다. 5 주 하느님께서 내
귀를 열어 주시니 나는 거역하지도 않고 뒤로 물러서지도 않았다. 6 나는 매질하는 자들에게 내 등을, 수염을 잡아 뜯는 자들에게 내 뺨을
내맡겼고, 모욕과 수모를 받지 않으려고 내 얼굴을 가리지도 않았다. 7 그러나 주 하느님께서 나를 도와주시니 나는 수치를 당하지 않는다.
그러기에 나는 내 얼굴을 차돌처럼 만든다. 나는 부끄러운 일을 당하지 않을 것임을 안다. 8 나를 의롭다 하시는 분께서 가까이 계시는데
누가 나에게 대적하려는가? 우리 함께 나서 보자. 누가 나의 소송 상대인가? 내게 다가와 보아라. 9 보라, 주 하느님께서 나를
도와주시는데 나를 단죄하는 자 누구인가? 복음 마태오 26,14-25 14
그때에 열두 제자 가운데 하나로 유다 이스카리옷이라는 자가 수석 사제들에게 가서, 15 “내가 그분을 여러분에게 넘겨주면 나에게 무엇을 주실
작정입니까?” 하고 물었다. 그들은 은돈 서른 닢을 내주었다. 16 그때부터 유다는 예수님을 넘길 적당한 기회를 노렸다. 17 무교절
첫날에 제자들이 예수님께 다가와, “스승님께서 잡수실 파스카 음식을 어디에 차리면 좋겠습니까?” 하고 물었다. 18 그러자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도성 안으로 아무개를 찾아가, ‘선생님께서 ′나의 때가 가까웠으니 내가 너의 집에서 제자들과 함께 파스카 축제를 지내겠다.′
하십니다.’ 하여라.” 19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분부하신 대로 파스카 음식을 차렸다. 20 저녁때가 되자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와 함께
식탁에 앉으셨다. 21 그들이 음식을 먹고 있을 때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 가운데 한 사람이 나를
팔아넘길 것이다.” 22 그러자 그들은 몹시 근심하며 저마다 “주님, 저는 아니겠지요?” 하고 묻기 시작하였다. 23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나와 함께 대접에 손을 넣어 빵을 적시는 자, 그자가 나를 팔아넘길 것이다. 24 사람의 아들은 자기에 관하여 성경에 기록된 대로
떠나간다. 그러나 불행하여라, 사람의 아들을 팔아넘기는 그 사람! 그 사람은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자신에게 더 좋았을 것이다.”
25 예수님을 팔아넘길 유다가 “스승님, 저는 아니겠지요?” 하고 묻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네가 그렇게 말하였다.” 하고
대답하셨다.
며칠 전에는 아주 당황스러운 일을 하나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아마 남자들에게 아침에 씻으면서 꼭 하는 것을 이야기하라고
하면 ‘면도’를 이야기할 것입니다. 즉, 이 면도를 통해서 보다 더 깨끗한 모습을 남에게 보이도록 합니다. 물론 수염을 멋있게 기르는 사람도
있기는 하지만, 저의 경우는 수염이 멋있게 자라지 않기 때문에 귀찮더라도 아침마다 면도를 해야 합니다.
면도할 때는 거울을
쳐다보면서 하지요. 그래야 실수로 얼굴을 베일 염려도 줄일 수 있으며, 안 깎이는 부분이 없이 보다 더 깨끗하게 면도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씻는 세면기 바로 위에는 거울이 없습니다. 그러다보니 조금 바쁠 때에는 거울을 보지 않고서도 면도를 합니다. 비록 직접 볼 수는 없지만,
제 얼굴이고 더군다나 손으로 만지면서 면도를 하면 거울을 보지 않고서도 깨끗하게 면도를 할 수가 있거든요.
이렇게 거울도 보지
않고서 면도를 했던 날이었습니다. 그리고 아침에 늘 하던 대로 성지 청소 및 간단한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조금 이상한 느낌이 드는
것입니다. 거울을 쳐다보았지요. 깜짝 놀랐습니다. 글쎄 제가 면도를 반쪽만 한 것입니다. 즉, 오른쪽은 잘 면도가 되어 있는 반면에 왼쪽 수염은
그대로 있는 것이 아니겠어요? 그 모습이 얼마나 웃겼을까요? 아마 수염을 길러도 저처럼 왼쪽과 오른쪽을 나눠서 수염을 기르는 사람은 없을껄요?
아무튼 저는 누가 볼까봐 얼른 세면실로 들어가서 나머지 수염을 깎았습니다. 그런데 수염을 깎으면서 이런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내 얼굴인데도 불구하고 보지 않으니까 제대로 깎지 못하는구나.’
그래요. 분명히 제 얼굴입니다. 평생 제가 가지고
있었던 얼굴입니다. 그런데 그 얼굴 하나도 거울 없이는 제대로 손 볼 수가 없다는 사실이 저를 깜짝 놀라게 합니다.
이처럼 부족한
인간이 바로 우리들의 모습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끊임없이 제대로 나아가기 위해서 노력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요?
오늘 복음에서는
유다 이스카리옷에 의해서 예수님께서 은전 30닢에 거래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돈의 액수에 상관없이 어떻게 같이 동거 동락했던 스승님을
팔아넘길 수가 있을까요? 더군다나 그 스승님은 하느님의 외아들이 아닙니까? 그래서 이 모습에 우리는 분노를 갖기도 합니다. 하지만 나약한 나의
모습을 볼 때, 나 역시도 그 유다 이스카리옷이 되어서 예수님을 팔아넘길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는 뻔뻔하게 예수님 앞에서
유다처럼 말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스승님, 저는 아니겠지요?”
이제 욕심과 집착으로 인해서 점점 더 부족한 내가
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사랑을 내 마음 안에 간직하면서 보다 더 완전해 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그래야 주님 앞에 더 이상 뻔뻔해지지
않을 것입니다.
내일부터는 '수난과 부활의 파스카 성삼일'이 시작됩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욕심과 집착을 버리고, 1년 중에서
가장 거룩하고 장엄하게 거행되는 성삼일 전례에 참여하여 주님과 함께 수난과 영광의 길에 동참해야 하겠습니다.
자신의 부족함을 잊지 맙시다.
완전하신 분은 주님 뿐입니다.
마음의 문은 내가
먼저...('좋은 생각' 중에서)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자신을 숨기고 감추는 작은
집이 있습니다. 그 집의 문은 항상 잠궈 두고 함부로 열게 되면 자신이 큰 손해를 보는 줄 착각하며 살고 있습니다.
타인이 들어올 수 없게 굳게 잠가 두고 우리는 살아가고 있습니다. 커다란 열쇠를 채워 두고 사람을
대한다면 상대방도 더욱 굳게 닫아 두고 경계하며 채워두고 또 채워두게 됩니다.
자신의 집 잠긴 문은 생각하지
못하고 남의 집에 들어가려 한다면 많은 부작용이 생겨 좋지 못한일이 생길 것입니다.
대화의 중요성은
먼저 나부터 문을 열어 놓아야 타인도 문을 조심스럽게 열어 간다는 것입니다.
먼저 자신의 문을 열어
보세요. 바로 앞에 있는 그 사람의 마음이 들어올 수 있도록 활짝 열어 두세요. 분명히 누군가가 필요할 때
당신을 찾아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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