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istance/▲ 사랑하는 이들의 글

용서해 주실까요?

ohjulia 2006. 4. 19. 09:29


 

 

 

 

 

모가지가 길어서 슬픈 짐승이여...

ㅎㅎ 한 번쯤은 노래 부르듯 외웠던 싯귀이지요.

목이 길면 왜 슬퍼 보일까?

기다림이 길어지면 목이 길어지는 것일까?

작은것에도 의미를 두며 의문을 만들었던 그 시절...분명 아름다웠던것 같아요.

그래서인지 모딜리아니의 그림이 슬프고도 포근한 느낌으로 다가옵니다.

 

이곳은 부활절 (금~일요일 까지) 연휴였답니다.

금요일은 기도 모임에다 성당에서 봉사할 일이 있었고

토요일은 골프 토너먼트 약속에다 오후에 성당 봉사가 있었으며

일요일은 조금 멀리 떨어진(약 한시간 반 정도의 거리) 한인 성당으로 이곳 성당 가족들과 함께

부활미사 가기로 약속이 되어 있었답니다.

그렇게 삼 일, 꽉찬 계획과 이쁜 계란 만들어서 이웃에도 선물하고

성당 교우들에게도 선물하려고 했었지요.

 

왠걸?

목요일 오후쯤...여행을 다녀와야 될것 같다며 장을 봐 오라는 남편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왠 여행?  안된다고 하였지만 남편도 안된다네요.

이유는 거래처의 두 가족이 여행을 함께 하자고 했는데

높은양반 이라서가 아니라 평소에 존경하는 분인데다 처음 하는 제안이라

거절할 수 없다는 것이었어요.

목요일은 렛슨도 많은데다 아이들도 과외가 있는 날이라 시간이 없다고 했지만

어떻게 알아서 해 보라는 간곡한 부탁을 하니

이리뛰고 저리뛰며 시장보고 준비해서 다음날 아침 이박삼일의 여행을 떠났답니다.

그것도 아이들은 동생 부부에게 부탁을 하고 말입니다.

 

그렇게 꽉 차 있던 계획을 모두 취소하고 떠나면서

나중에 다시 태어나면 남자로 태어 날거야...라고 중얼거리기도 했네요. ㅎㅎ

부끄럽게도 부화절 미사도 드리지 못했으니

오는길...가는길...마음은 무거웠지만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왔기에

더 죄스러운 마음이 들거든요.

용서해 주실까요?

 

그리 길지않은 여행이었지만

참 아름다운 자연임을 느끼기에 충분했던 시간이었네요.

바다를 배경으로 펼쳐진 하늘은 왜 그리도 아름다워 보이는지...

다리끝에 앉아서 바라본 저녁 하늘은

잠깐의 화려함으로 사라진 뒤 어둠을 선물했지만

그 여운이 아직도 남아있는 느낌입니다.

자연의 아름다움 앞에서 붓을 꺽었다던 어느 화가의 말이

또다시 떠오르는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높은 온도에 무더운 여름이 싫다고들 이야기 하지만

그 따가운 햇살이 만들어 놓은 나무의 푸르름은

그에 비할 수 없는 값진 선물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곧 맞이할 여름 준비로 분주한 나무들을 보면서

자연은 언제나 말 없이 저들의 임무를 묵묵히 해 내고 있는데

유독 하느님의 최고 걸작품이라고 말 하는 우리 인간들은

욕심과 다툼으로 많은 시간을 소비하고 있으니 부끄러운 모습이지요.

그렇게 잠깐 철학자도 되어보면서 플로리다의 멋진 바닷가를 음미하고 왔습니다.

 

오늘 여행 잘 다녀왔느냐며 전화한 성당 교우분이

혼자서도 미사 다녀가는 아이들이 부럽다며 칭찬을 하더군요.

문필이는 토요일에 성가대 연주봉사가 있어서 혼자 다녀오고

유진이는 일요일 미사에 혼자 왔었다는 말에

어찌나 미안한 마음이 들던지요.

오늘 아이들이 돌아오면 아무 말 없이 그냥 꼬옥 안아줘야 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