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ring/떠나고 싶어서

단숨에 달려가 포옥 안기고 싶은 섬

ohjulia 2006. 5. 27. 08:21
▲ 동해의 바닷길을 여는 명선도
ⓒ2004 이종찬
"푸름아! 저기 수평선 위에 떠있는 저 섬이 무얼 닮은 것 같니?"
"고래 같아."
"빛나는?"
"아빠, 나는 거북이처럼 보여."
"히야! 두 딸의 상상력이 아주 뛰어난데?"


여름휴가 첫 날, 가도 가도 끝자락이 보이지 않는 수평선을 따라 도착한 휴가지 진하 앞바다에는 금빛 고운 모래가 허리를 반달처럼 하고 한껏 휘어져 있었다. 검푸르게 출렁이는 그 바다의 북동쪽에서 그 긴 꼬리를 감추는 수평선에는 자그마한 섬 하나가 끝없이 밀려오는 파도를 들어올려 세수를 하고 있다. 하얀 거품을 내뿜으며.

그 섬은 큰딸 푸름이와 작은딸 빛나의 말처럼 활등처럼 드러누운 수평선 위에서 하얀 물보라를 뿜으며 떠다니는 고래 같기도 하고, 다시 바라보면 검푸른 바다에 잔주름을 일으키는 파도를 다스리며 목을 길게 뺀 채 엉금엉금 기어다니는 수 억 년 묵은 거북이 같기도 했다.

▲ 명선도는 사람이 살지 않는 동해안의 작은 무인도다
ⓒ2004 이종찬
▲ 진하 바다의 수평선을 양쪽으로 갈라놓은 명선도
ⓒ2004 이종찬
그래. 바로 이 섬이 울산 울주군 서생면 진하리 앞바다를 떠돌며 천천세 만만세를 목청껏 내지르고 있는 신선의 섬, 명선도(名仙島)다. 근데 아무리 그 섬을 오래 바라보아도 신선의 그림자는 커녕 사람의 그림자도 얼씬거리지 않는다. 간혹 갈매기 한 마리가 그 섬을 바라보며 쓸쓸히 날아 다니고 있을 뿐이다.

면적 1만1000여㎡.사람이 살지 않는 이 작은 섬의 처음 이름은 명선도(鳴蟬島), 즉 '매미가 우는 섬'이라 불리웠다고 한다. 그러던 것이 긴 세월이 흐르면서 '선(蟬)'의 한자말을 따서 '매미섬', 혹은 사람이 살지 않는 섬이라 하여 '맨 섬'이라고 부르다가 지금의 명선도(名仙島)로 불리워지게 되었단다. 하지만 누가 언제부터 그렇게 부르기 시작했는지는 알 수가 없다.

"지금 명선도로 건너가시는 분들은 즉시 나와 주시기 바랍니다. 명선도는 출입금지구역입니다."
"아빠! 왜 저 섬에 건너가지 못하게 하는 거야. 사람들이 건너가다가 혹시 물에 빠질까 봐 그러는 거야?"
"아니, 저 섬이 오염될까 봐 그러겠지."


"우리도 명선도 앞에 한번 가 볼까?"

▲ 명선도에는 동백이 많아 동백섬이라 불리기도 한다
ⓒ2004 이종찬
▲ 울산 제일의 진하 해수욕장 동북쪽에 위치하고 있는 명선도
ⓒ2004 이종찬
그랬다. 진하 해수욕장 북동쪽, 미아보호소란 조그만 입간판이 붙어 있는 하얀 팔각정에서는 목이 쉬도록 방송을 하고 있다. 하지만 명선도로 향하는 사람들의 의지 또한 좀처럼 사그라들지 않는다. 방송을 할 때면 잠시 주춤거리며 밖으로 나오는 척하다가 방송이 잠잠해지면 이내 명선도로 다시 건너가기 시작한다.

그도 그럴 것이 명선도는 백사장에서 아주 가까운 곳에 있는데다 백사장과 섬 사이의 바다 아래 바닷길이 만들어져 있다. 무릎 정도 깊이의 그 바닷길은 명선도가 진하 앞바다의 한가운데 있기 때문에 바닷물이 양쪽에서 부딪히면서 모래가 쌓이고 쌓여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길이다.

이곳에서 논과 밭, 바다를 터전으로 삼아 살아온 주민들의 말에 따르면 명선도의 바닷길은 10년마다 한 번 꼴로 열린다고 한다. 그러니까 그때에는 늘상 무릎 정도 깊이의 그 바닷물까지도 몽땅 빠지고 바닥이 훤히 드러난다는 것이다. 굳이 모세의 기적 어쩌고 저쩌고 하면서 들먹이지 않아도 말이다.

▲ 그날 명선도에는 해가 뜨지 않았다
ⓒ2004 이종찬
▲ 명선도 옆에 드러누운 해중암으로 이루어진 이덕도
ⓒ2004 이종찬
자료에 따르면 명선도의 바닷길은 지난 1989년 바닥이 완전히 드러났으며, 그 뒤 14년 만인 2003년과 2004년 겨울에 또 한번 바닷길이 활짝 열렸다고 한다. 그리고 바닷길은 조수 간만의 차이가 심한 남해안이나 서해안에서 주로 볼 수 있는데, 명선도처럼 동해안에서 바닷길이 열리는 일은 극히 드문 일이라고 했다.

"푸름! 빛나! 우리도 명선도 앞에 한번 가 볼까?"
"아싸! 아싸!"
"아빠! 그러다가 또 방송을 하면 어떡해?"
"섬까지 건너가지만 않으면 괜찮아."


진하 앞바다는 명선도를 중심으로 두 개의 바다로 나뉘어져 있었다.그중 남쪽으로 휘어진 바닷가는 마치 채로 걸러낸 듯한 아주 고운 모래가 하얗게 깔린 진하 해수욕장이었다. 하지만 북동쪽으로 휘어져 있는 바닷가는 해수욕장이라기보다는 일종의 해변이라고 불러야 마땅할 것만 같았다.

▲ 명선도의 아름다운 야경
ⓒ2004 이종찬
▲ 오래 오래 바라보아도 결코 지겹지 않은 섬이 바로 명선도다
ⓒ2004 이종찬
물론, 북동쪽의 바닷가에도 고운 모래가 깔려 있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그곳에서도 수많은 피서객들이 비키니 차림으로 하하 호호 웃으며 물놀이를 즐기고 있었다. 근데, 그곳은 바다 곳곳에 갯바위가 듬성듬성 솟아나 있었고, 고기잡이배들이 들락날락거리는 진하부두가 있었다.

무인도에 동백이 많이 있다고 하여 동백섬이라 불리기도 하는 명선도는 그 두 개의 바다 끝자락에 아득하게 그어져 있는 수평선을 사이좋게 가르고 있었다. 그 두 개의 바다는 마치 견우와 직녀처럼 명선도라는 오작교를 향해 힘차게 달려와 서로 몸을 세차게 부비며 하얀 눈물을 마구 쏟아내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명선도 옆에는 해중암으로 이루어진 이덕도가 '날 찾아봐라' 하듯이 하루종일 파도와 숨박꼭질을 하고 있다. 언뜻 바라보면 파도라는 하얀 여의주를 문 큰 용 한 마리가 수평선을 한 손에 거머쥐고 금세 용트림을 하며 하늘로 날아오를 것만 같다. 하늘과 바다를 마구 뒤흔들며.

그런 생각 때문이었을까. 그때 문득 흐릿한 하늘에서 빗방울이 하나 둘 떨어지기 시작한다. 마치 검푸른 바다를 가슴에 가득 안고 아스라한 하늘로 한 점 별이 되어 승천하는 용이 투둑투둑 떨어뜨린 은빛 비늘처럼.

그래. 아무리 오래 바라보아도 늘 살갑게 다가오는 그 섬, 명선도. 여름이 가고, 가을이 가고, 겨울이 가고, 봄이 가고, 마침내 다시 여름이 찾아올 때까지 그렇게 오래 오래 바라보고 싶은 그 섬. 간혹 바닷길이 열리면 오래 기다려온 그 누군가를 만나듯 단숨에 달려가 안기고 싶은 섬, 그 섬이 바로 명선도다.

/이종찬 기자

덧붙이는 글
☞가는 길/서울-울산-공업탑-덕하검문소-14번 국도-남창역-울산온천-진하해수욕장-명선도

※울산 삼산동 시외버스터미널 안 동부강남고속에서 운행하는 해운대행 버스를 타고 가다가 진하해수욕장에서 내리면 된다. 부산에서는 노포동 터미널에서 울산으로 가는 1127번 좌석버스 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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