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ily/★ 빠다킹 신부님과 새벽을..

힘들다고, 어렵다고 포기하지 맙시다

ohjulia 2006. 6. 12. 08:46
2006년 6월 12일 연중 제10주간 월요일

제1독서
열왕기 상권 17,1-6
그 무렵 1 길앗의 티스베에 사는 티스베 사람 엘리야가 아합에게 말하였다. “내가 섬기는, 살아 계신 주 이스라엘의 하느님을 두고 맹세합니다. 내 말이 있기 전에는 앞으로 몇 해 동안 이슬도 비도 내리지 않을 것입니다.”
2 주님의 말씀이 엘리야에게 내렸다. 3 “이곳을 떠나 동쪽으로 가, 요르단 강 동쪽에 있는 크릿 시내에서 숨어 지내라. 4 물은 그 시내에서 마셔라. 그리고 내가 까마귀들에게 명령하여 거기에서 너에게 먹을 것을 주도록 하겠다.”
5 엘리야는 주님의 말씀대로 요르단 강 동쪽에 있는 크릿 시내로 가서 머물렀다. 6 까마귀들이 그에게 아침에도 빵과 고기를 날라 왔고, 저녁에도 빵과 고기를 날라 왔다. 그리고 그는 시내에서 물을 마셨다.


복음 마태오 5,1-12
그때에 1 예수님께서는 군중을 보시고 산으로 오르셨다. 그분께서 자리에 앉으시자 제자들이 그분께 다가왔다. 2 예수님께서 입을 여시어 그들을 이렇게 가르치셨다.
3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4 행복하여라, 슬퍼하는 사람들! 그들은 위로를 받을 것이다.
5 행복하여라, 온유한 사람들! 그들은 땅을 차지할 것이다.
6 행복하여라, 의로움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들! 그들은 흡족해질 것이다.
7 행복하여라, 자비로운 사람들! 그들은 자비를 입을 것이다.
8 행복하여라,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을 볼 것이다.
9 행복하여라,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의 자녀라 불릴 것이다.
10 행복하여라, 의로움 때문에 박해를 받는 사람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11 사람들이 나 때문에 너희를 모욕하고 박해하며, 너희를 거슬러 거짓으로 온갖 사악한 말을 하면, 너희는 행복하다! 12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너희가 하늘에서 받을 상이 크다. 사실 너희에 앞서 예언자들도 그렇게 박해를 받았다.




많은 분들이 아시다시피 저는 스포츠를 상당히 좋아합니다. 그래서 요즘에는 월드컵 경기 보는 것으로 얼마나 큰 즐거움을 얻는지 모릅니다. 2002년 월드컵 때가 생각나네요. 그때는 우리나라에서 열렸기에 그 열기가 더욱 더 뜨거웠었지요.

얼마 전, 스포츠 채널을 보다가 2002년의 열기를 다시 한 번 기억하게끔 한국과 이탈리아의 경기를 재방송 해주고 있었습니다. 전반 초반 이탈리아 비에르 선수의 헤딩 선제골을 당했지요. 그런데 저는 선제골을 먹고도 한골 먹었다고 아쉬워하지 않았습니다. 왜 그럴까요? 바로 이 경기의 결과를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지요.

그 뒤 이탈리아의 빗장수비에 막혀서 계속해서 1:0으로 지고 있었습니다. 경기가 거의 끝날 무렵, 이제 중계방송을 하던 아나운서와 해설자는 걱정과 패색에 짙은 멘트를 계속 내보내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이 중계방송을 듣고 있던 2006년을 살고 있는 저는 어떠했을까요? 과연 제가 이 아나운서와 해설자처럼 큰 걱정을 하면서 경기를 보고 있었을까요? 물론 그 당시만 해도 저 역시 큰 걱정에 싸였었고, 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경기 결과를 모두 알고 있었던 저로써는 도대체 염려가 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걱정하는 멘트를 하는 아나운서와 해설자의 모습에 웃음까지 나오더군요. 왜냐하면 후반 43분에는 동점골이 나올 테고, 연장전에 가서는 안정환 선수의 멋진 결승 헤딩골이 나온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되었습니다.

결과를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즉 결국은 우리나라가 승리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도무지 걱정을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긴장이 넘치는 경기를 흐뭇한 미소를 띠면서 편하게 볼 수가 있다는 것이지요.

어쩌면 우리들의 삶도 이렇지 않을까요? 주님께서 약속하신 하느님 나라에 대한 확신과 희망을 잃지 않는다면 행복하게 살 수 있을 텐데, 우리들은 그러한 확신 없이 불안감을 간직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요? 그래서 너무나 힘들다고 하면서 불행한 자기 자신을 자책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요?

오늘 복음을 통해서 주님께서는 어떤 사람이 행복한지를 말씀해주십니다. 그런데 ‘그 사람들이 정말로 행복한 사람인가?’라는 생각을 하게 하지요. 왜냐하면 이 세상의 관점으로는 도무지 행복해 보이는 사람들이 아니거든요. 바로 주님께서는 이 세상의 관점으로 바라보아서는 안 된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보다는 주님께서 약속하신 하느님 나라에 대한 굳은 믿음을 간직하고 있는 사람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행복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우리에게 전해주시는 것이지요.

미래에 대한 확신만 있다면 비록 지금의 상황이 지치고 힘들지라도 결코 절망하지 않습니다. 바로 그 희망을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 행복한 사람입니다.


힘들다고, 어렵다고 포기하지 맙시다.



당신의 사명('좋은 글' 중에서)

한 번은 사하라의 남쪽 지역에 큰 가뭄이 닥쳤습니다. 초원의 풀들은 바싹 말랐으며 물 한 방울 남아있지 않은 땅바닥은 쩍쩍 갈라졌고 물을 찾지 못한 동물들은 힘없이 쓰러져 갔습니다. 계속 되는 가뭄 속에 아주 큰 나무들과 곧 부서질 것처럼 말라버린 덤불들도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뙤약볕 속에서 샘과 강물은 오래 전에 말라붙어 버렸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악 조건에서도 오직 한 송이의 꽃만은 가뭄을 이겨내고 있었습니다. 근처에 아주 작은 샘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샘물은 꽃이 괘씸해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주위에 있는 모든 것이 이미 말라버린 이 마당에 내가 이까짓 꽃 한 송이 때문에 왜 수고해야 되지?" 그때 잎이 쭈글쭈글해지고 생기가 없어진 풀이 작은 샘물에 고개를 숙이고는 죽기 전에 말했습니다.

"샘물님. 당신이 말라버린 이 땅 전체를 푸르게 만들 거라고는 아무도 기대하지 않는답니다. 당신의 사명은 오직 이 유일한 꽃의 생명을 유지시키는 것뿐이지 그 이상은 아니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