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 (Solemnity of the Body & Blood of Jesus)**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은 예수님께서 세우신 성체성사를 기념하고
묵상하는 날입니다.
삼위일체 대축일 다음 첫 목요일이나 주일에 지내게 되어 있는데, 우리나라는
주일에 지냅니다. 이 대축일은 1264년 우르바노 4세 교황 때부터 지내왔습니다.
전에는 성체 축일과 성혈 축일이 따로 있었으나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부터
함께 기념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 많은 우리 인간을 위하여,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당신 자신을 송두리째 내어 주신 사랑을 묵상하게 합니다.
“받아라. 이는 내 몸이다.”,
“이는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내 계약의 피다.”
예수님께서는 벗을 위하여 자신의 목숨을 내놓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고
하셨습니다. 우리를 위하여 당신 자신의 목숨을 바치시고, 당신의 몸과 피
한 방울까지 우리에게 주고자 하신 그분의 사랑보다 큰 사랑은 없습니다.
(매일미사에서)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은 1247년 리에즈에서 몽 꼬르니용(Mont-Cornillon)의
복녀 쥴리앙(축일:4월6일)이라는 한 수녀의 열성에 의해 처음 드려졌다.
1208년 환시 중에 주님께서 제대의 성체성사를 공경하는 연중 축일이 빠져 있음을
자신에게 알려주셨다고 그녀는 말하였다.
얼마동안의 시간이 지난 후 리에즈의 주교와 특히 후에 교황 우르바노 4세가 된
(1261) 쟈끄 빤딸레옹 대부제가 이 계시를 호의적으로 받아들였다.
오르비에또(Orvieto) 근처 볼세나(Bolsena)에서 일어난 성체성사 기적에 감명 받은
우르바노 4세는 1264년, 오르비에또에서 교서 "Transiturus"를 반포하는 가운데
새 대축일을 제정하였으며, 이 대축일은 성령강림절 팔부 다음 목요일에 성체성사를
기념하여 지내게 되었다.
쥴리앙은 몽 꼬르니용의 한 젊은 수사에게 새 축일 시간전례 기도문을 만들 것을
부탁하였었다.
하지만 우리 시대까지 사용되고 있는, 교황의 교서에 함께 붙어 있는 시간전례
기도문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었다.
근대의 연구는, 이 축일을 위한 미사와 시간전례 기도문은 성 토마스가 만든
것이라는 전통적 견해를 지지하고 있는 경향이다.
교황이 새 축일을 서방 교회 전체가 지키도록 자신의 권위로 명한 것은 이것이
처음이었다. 오랫동안 이 축일은 "새 대축일"이라 불렀다.
또한 성체성사 축일, 하느님 축일, 지극히 고귀한 성사 축일, 그리스도의 몸과 피
대축일로도 불렀다.
우르바노 4세가 새 축일을 세운지 두 달 후에 죽은 까닭에 그의 교서는 실현되지
못하였다.
클레멘스 5세(1311-1312)와 요한22세(1317)가 이 교서를 새로 확인한 다음에야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이 전 교회에 받아들여졌다.
이 축일을 진작시킨 세 교황 가운데 성체 행렬에 대해 언급한 이는 아무도 없었다.
여러 지역에서는 빠스카 아침 지성소의 그리스도의 "무덤"에 빨마 가지를 든 채
성체를 모시고 행진하거나 또는 성대하게 성체를 옮겼다.
본래 의미의 성체 행렬(성체 거동)은 13세기 말 산발적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풍습은 14, 15세기에 퍼져나갔다. 로마교회는 15세기에 이를 받아들였다.
(꼰벤뚜알 프란치스코회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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