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Lord/† 聖人들의 삶을 통해서

성 이레네오 (6월 28일) 교부, 주교, 순교자

ohjulia 2006. 6. 28. 11:07
고향으로 , 성 이레네오
 

    성 이레네오 (St. Irenaeus) 교부, 주교, 순교자

    성인의 활동지역 : 리옹(Lyon) 성인의 활동연도 : +202년경 성인과 같은이름 : 이레나이우스, 이레네우스 이레네오는 희랍어로 "평화"란 뜻이다. 2세기의 수많은 이단 속에서도 이레네오가 존재했다는 것은 교회에는 큰 다행이다. 그는 진지한 학생으로서 훌륭한 교육을 받았으며 의심할 바 없이 강한 인내심을 가지고 탐구하며 사도들의 가르침을 크게 옹호했다. 그러나 그는 반대자들의 오류를 입증하기보다는 반대자들을 설득하려는 원의가 더욱 지배적이다. 리옹의 주교로서 그는 특별히 그노시스파에 대해 관심이 많았다. 그노시스파의 가르침은 갈리아 지방의 수많은 그리스도인을 유혹하고 혼란에 빠뜨렸다. 이레네오는 여러 가지 그노시스파의 교파들과 그들의 "비밀"을 철저하게 연구한 다음 그들의 교의가 어떠한 논리적 결론에 이르는지 보여 주었다. 그는 이 연구 결과를 사도들의 가르침과 성서 텍스트를 대조시킴으로써 다음 세대에 크나큰 중요성을 지니게 된 신학 체계를 다섯 권의 책으로 남겼다. 더욱이 라틴어와 아르메니아어로 번역되어 광범위하게 사용된 그의 저술은 점차적으로 그노시스파의 영향력을 줄여 가게 되었다. 그가 어떠한 환경에서 어떻게 죽었는지는 그의 탄생이나 소아시아에서의 초기 생활과 마찬가지로 분명치 않다. 동료들에 대한 깊이 있고 진지한 관심은 진리에 대한 탐구가 어떤 사람에게는 승리를 주고 또 어떤 사람들에게는 패배를 안겨 주는 것이 아님을 우리에게 일깨워 줄 것이다. 모든 사람이 그 승리에 참여할 수 없다면 진리 그 자체는 패배자들한테서 계속 배척당할 것이다. 패배자들은 그 진리를 패배의 멍에에서 분리할 수 없는 것이라고 여길 테니까 말이다. 따라서 대립과 반발 같은 것들은 하느님의 진리에 대한 진지하고 통일된 탐구에 양보하고 어떻게 해야만 하느님의 진리 탐구에 가장 잘 봉사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소아시아에 있던 일부 그리스도인들은 부활 축제를 서방 교회에서 정한 날짜에 치르기를 거부했기 때문에 교황 빅토리오 3세로부터 파문의 벌을 받았다. 그의 이름이 가리키는 것처럼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인 이레네오는 이것이 본질적인 일도 아니고 이 백성은 그저 옛날 전통을 따르고 있을 뿐이며 폴리카르포 성인과 교황 아니체토 같은 사람들도 그것을 분열의 요인으로 보지 않은 점을 지적하면서 파문을 해제해 주도록 간청했다. 교황은 호의적로 답변하였고 상처는 치유되었다. 약 100년 이후에는 서방의 관습이 저절로 채택되었다. (성바오로수도회홈에서) 성 이레네우스(또는 이레네오)는 소아시아의 스미르나(Smyrna, 오늘날 터키의 이즈미르, Izmir) 출신으로 스승인 폴리카르푸스(Polycarpus) 주교를 통해 사도적 정통성을 이어받았다. 그의 출생 연도에 대해 논란이 많지만 130-140년 사이로 추정된다. 그는 로마(Rome)에 와서 오랫동안 머물렀으며, 이때 유스티누스(Justinus)가 세운 교리 학교에서 공부한 것으로 보인다. 그 후 언제 무슨 이유로 프랑스의 리옹으로 가게 되었는지 알 수 없다. 투르(Tours)의 성 그레고리우스(Gregorius)에 의하면 폴리카르푸스가 그를 프랑스 지방의 선교사로 파견하였다고 한다. 그는 177년 리옹 교회의 특사로 교황 엘레우테루스(Eleutherus)를 방문하여 몬타누스주의 문제에 대해 상의하고 리옹 지방의 순교자들에 대해 보고하였다. 그가 로마에 체류하는 동안 리옹의 주교 포티누스(Photinus)가 순교하였으며, 리옹에 돌아온 즉시 그는 주교로 선출되었다. 그는 리옹 지역의 복음 선포에 열정적이었고, 프랑스 지방의 영지주의자와 피나는 싸움을 전개하였다. 이때 그가 쓴 저서가 “이단 논박”(Adversus Haereses)이다. 그는 이단 사상의 정체를 적나라하게 폭로하면서 동시에 초기 교회의 정통 신앙을 확립하였다. 이레네우스는 ‘가톨릭 교회의 수호자’라고 불릴 정도로 2세기 신학자들 중에서 가장 뛰어났으며, 특히 영지주의 계통의 이단들에 대항하여 정통 교리를 수호한 대표적인 교부이다. 그의 저서에는 사도들의 전승이 그대로 담겨 있으며 또 교황 수위권의 중요한 근거가 되고 있다. 투르의 그레고리우스(Gregorius)에 의하면 그는 202년경에 순교하였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