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ily/★ 빠다킹 신부님과 새벽을..

‘싫다’라는 말보다는 ‘좋다’라는 말만 합시다.

ohjulia 2006. 8. 4. 05:40
2006년 8월 4일 성 요한 마리아 비안네 사제 기념일

제1독서
예레미야 26,1-9
1 유다 임금 요시야의 아들 여호야킴이 다스리기 시작할 무렵에 주님께서 이런 말씀을 내리셨다.
2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주님의 집 뜰에 서서, 주님의 집에 예배하러 오는 유다의 모든 성읍 주민들에게, 내가 너더러 그들에게 전하라고 명령한 모든 말을 한마디도 빼놓지 말고 전하여라.
3 그들이 그 말을 듣고서 저마다 제 악한 길에서 돌아설지도 모른다. 그러면 나도 그들의 악행 때문에 그들에게 내리려는 재앙을 거두겠다.
4 너는 그들에게 이렇게 말하여라.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너희가 내 말을 듣지 않고 내가 너희 앞에 세워 둔 내 법대로 걷지 않는다면, 5 또 내가 너희에게 잇달아 보낸 나의 종 예언자들의 말을 듣지 않는다면, ─ 사실 너희는 듣지 않았다. ─ 6 나는 이 집을 실로처럼 만들어 버리고, 이 도성을 세상의 모든 민족들에게 저주의 대상이 되게 하겠다.′’”
7 사제들과 예언자들과 온 백성은 주님의 집에서 예레미야가 이 말을 하는 것을 들었다.
8 그리고 예레미야가 주님께서 온 백성에게 전하라고 하신 말씀을 모두 마쳤을 때, 사제들과 예언자들과 온 백성이 그를 붙잡아 말하였다.
“너는 반드시 죽어야 한다. 9 어찌하여 네가 주님의 이름으로 이 집이 실로처럼 되고, 이 도성이 아무도 살 수 없는 폐허가 되리라고 예언하느냐?” 그러면서 온 백성이 주님의 집에 있는 예레미야에게 몰려들었다.


복음 마태오 13,54-58
그때에 54 예수님께서 고향에 가시어 회당에서 사람들을 가르치셨다. 그러자 그들은 놀라서 이렇게 말하였다. “저 사람이 어디서 저런 지혜와 기적의 힘을 얻었을까? 55 저 사람은 목수의 아들이 아닌가? 그의 어머니는 마리아라고 하지 않나? 그리고 그의 형제들은 야고보, 요셉, 시몬, 유다가 아닌가? 56 그의 누이들도 모두 우리와 함께 살고 있지 않는가? 그런데 저 사람이 어디서 저 모든 것을 얻었지?” 57 그러면서 그들은 그분을 못마땅하게 여겼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예언자는 어디에서나 존경받지만 고향과 집안에서만은 존경받지 못한다.” 58 그리고 그들이 믿지 않으므로 그곳에서는 기적을 많이 일으키지 않으셨다.




요즘 너무나 덥습니다. 글쎄 어제 낮 시간에 제 방 온도가 34도였으니 얼마나 더운 날씨였겠습니까? 특히 요즘에는 밖에서 할 일이 참 많습니다. 지난 장마로 인해서 물에 잠긴 창고의 물건을 모두 꺼내서 말리는 일, 어제부터 시작된 십자가의 길 설치 작업, 축대 쌓는 작업 등등 할 일이 너무나 많네요. 그런데 뜨거운 태양 아래에서 일하기가 얼마나 힘들던지요. 그러다보니 저절로 얼굴이 찡그려집니다. 그리고 이런 소리가 저절로 나오네요.

“태양이 싫다…….”

그 순간에 저는 깜짝 놀랐어요. 사실 지난 장마 때, 계속 내리는 비를 바라보면서는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었거든요.

“비가 싫다…….”

생각해보니 ‘싫다’라고 말한 적이 얼마나 많았는지 모릅니다. 해가 나와도 싫다고, 비가 내려도 싫다고, 또 흐리면 흐리다고 싫다고 말하고 있는 제 자신을 보면서, 하느님께서는 과연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까 라는 의구심도 듭니다.

이렇게 날씨만을 보면서 ‘싫다’라고 말하는 있는 우리들이 아니지요. 우리들의 삶 안에서 ‘싫다’라는 말을 얼마나 많이 하고 있었으며, 부정적인 생각을 간직하고 있었을까요? 창세기에서도 나오듯이, 하느님께서 보시니 참 좋게 창조했던 이 세상을 우리는 얼마나 ‘좋다’라고 말하고 있을까요? 하느님과 달리 ‘좋다’ 보다는 ‘싫다’를 더 많이 외치고 있는 나는 아니었을까요?

예수님께서 고향을 방문하셨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어떤 말을 했나요? 사람들은 당시에 많은 사람들의 존경과 사랑을 받는 예수님을 보면서 이렇게 부정적인 말을 하면서 못마땅하게 여길 뿐이었습니다.

“저 사람이 어디서 저런 지혜와 기적의 힘을 얻었을까? 저 사람은 목수의 아들이 아닌가?”

사람은 누구나 고향을 사랑하는 법입니다. 왜냐하면 어렸을 때의 추억이 간직되어 있는 곳이 고향이니까요. 따라서 예수님도 고향에 대한 애틋한 사랑을 간직하고 계셨을 것이고, 이러한 사랑을 가지고 더 좋은 말씀과 놀라운 행적으로 고향 사람들을 구원으로 이끌고 싶으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앞서 말했듯이 무조건 ‘싫다’라고 말하는 우리들의 나쁜 습관을 이들도 간직하고 있기 때문일까요? 깔보고 무시하는 말로써 그들은 결국 예수님의 기적을 체험하지 못하게 됩니다.

‘싫다’라는 말은 이제 그만 써야 하지 않을까요? 태양이 싫어, 비가 싫어, 흐린 것이 싫어, 사람이 싫어……. 그러한 말보다는 태양이 좋아, 비가 좋아, 흐린 것이 좋아, 사람이 너무나 좋아……. 라는 말로써 주님께서 창조하신 이 세상을 기쁘게 받아들이는 우리가 되었으면 합니다. 그때 우리들은 예수님의 고향사람들과는 달리 놀라운 기적을 체험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사랑의 기적 체험을…….


‘싫다’라는 말보다는 ‘좋다’라는 말만 합시다.



삶은 아픔보다 위대하다(‘좋은 생각’ 중에서)

아버지께서는 고기가 잘 안 잡히면 바다를 보면서 '바람이 한번 불어야 할 텐데...'하고 말씀하셨습니다. 태풍이 불어와 바다 속까지 뒤집히면 산소가 풍부해지고 먹이가 많아집니다. 그러면 고기들은 활동을 많이 하게 되고 어부들은 고기를 많이 잡게 되지요.

우리 삶에도 태풍이 불어 올 때가 있습니다. 그때는 무섭기도 하고 불안하기도 하고 아프기도 합니다. 하지만 태풍이 지나가면 하늘이 높고 맑듯이 우리의 마음도 깊어지고 생각이 맑아져 한층 성숙해집니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우리에게 고통이 없다면 무엇으로 만족을 얻겠는가?'라고 물었습니다. 하나의 고통이 열 가지 감사를 알게 하고, 하나의 감사가 열 가지 고통을 이기게 합니다.

좋은 님들에게 고통이 없기를 바라지만, 혹시 지금 어려움 속에 있거나 앞으로 고통이 찾아오면 그것을 통해 얻게 될 새로운 성숙과 감사를 떠올리십시오.

삶은 아픔보다 아름답고 위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