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ily/☆ 양 승국 신부님의..

용서,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ohjulia 2006. 8. 17. 01:19


고향으로(그리스도의 향기)
 
    8월 17일 연중 제19주간 목요일-마태오 18장 21-19장 1절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 <용서,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 가운데, ‘하느님 나라는 너희 가운데 있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가끔씩 예수님 말씀이 ‘제대로다!’며 무릎을 ‘탁’ 칠 때가 있습니다. 각양각색의 사람들, 특히 나름대로 한 가닥씩 한다는 사람들이 모여 살아가는 수도 공동체 생활, 때로 본의 아니게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미운 감정이 생겨납니다. 특히 제 내면이 불안정할 때, 제 영적 생활이 엉망일 때 더욱 그렇더군요. 그래도 저희 같은 수도자들은 결혼생활하시는 분들에 비해 훨씬 상황이 나은 편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서로만을 바라보며 살아가시는 분들, 미운감정을 해소하지 못한 채, 끝도 없는 평행선을 달릴 때, 얼마나 고통이 크겠는가, 상상해봅니다. 그 누군가를 향해 미운 감정을 가지기 시작할 때 하나의 과정이 있습니다. 처음에는 그러려니 합니다만, 점점 분노가 쌓입니다. 직접 대면해서 할 말 안 할 말 ‘화끈하게’ 한번 털어놓아버리면 속이라도 시원할 텐데, 그게 또 여의치 않습니다. 혼자서 속으로만 꿍꿍 앓습니다. 성격이라도 대범해서 술 한 잔하고 마음 한번 확 바꿔먹는다든지, 그도 아니라면 적정선에서 포기하면 좋을 텐데, 그게 또 생각 같지 않습니다. 눈만 뜨면 그 사람과의 불편했던 사건이 떠오릅니다. 내게 던진 모욕적인 언사가 생각납니다. 그 사람 생각만 해도 속에서 불길이 확확 타오릅니다. 심장박동수도 빨라집니다. 용서 못하는 상황이 오래 지속되다보면 일도 손에 잡히지 않습니다. 밥을 먹어도 소화가 되지 않습니다. 소화기능이 떨어 지다보니 혈액순환도 안 되고 힘도 없고 무기력증에 빠집니다. 육체가 맛이 가니 정신도 슬슬 맛이 갑니다. 어느덧 미워하는 그 사람이 내 삶의 중심에 떡 버티고 들어앉아 있습니다. 내 삶을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나를 좌지우지합니다. 매사가 부자연스럽고 부담스럽기만 합니다. 결국 살아있어도 살아있지 못한 생활입니다. 지옥이 따로 없습니다. 보십시오. 우리가 그 누군가를 용서하지 못할 때 파생될 수 있는 실제 상황입니다. 용서하지 못할 때 우리의 영적 생활이 받게 될 타격과 육체적, 정신적 고통을 잘 알고 계셨던 예수님이셨기에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 용서 없이 영적생활도 없습니다. 용서 없이 하느님 체험도 없습니다. 용서 없이 참 사랑의 실천도 불가능합니다. 결국 용서만이 우리의 살길이며, 용서만이 구원과 영원한 생명에로 나아가는 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