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ily/★ 빠다킹 신부님과 새벽을..

‘나는 못해’라는 말을 .......하나도 없습니다.

ohjulia 2006. 9. 2. 09:10
2006년 9월 2일 연중 제21주간 토요일

제1독서
코린토 1서 1,26-31
26 형제 여러분, 여러분이 부르심을 받았을 때를 생각해 보십시오. 속된 기준으로 보아 지혜로운 이가 많지 않았고 유력한 이도 많지 않았으며 가문이 좋은 사람도 많지 않았습니다.
27 그런데 하느님께서는 지혜로운 자들을 부끄럽게 하시려고 이 세상의 어리석은 것을 선택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강한 것을 부끄럽게 하시려고 이 세상의 약한 것을 선택하셨습니다.
28 하느님께서는 있는 것을 무력하게 만드시려고, 이 세상의 비천한 것과 천대받는 것 곧 없는 것을 선택하셨습니다. 29 그리하여 어떠한 인간도 하느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30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여러분을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살게 해 주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에게 하느님에게서 오는 지혜가 되시고, 의로움과 거룩함과 속량이 되셨습니다. 31 그래서 성경에도 “자랑하려는 자는 주님 안에서 자랑하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복음 마태오 25,14-30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런 비유를 들어 말씀하셨다.
14 “하늘 나라는 어떤 사람이 여행을 떠나면서 종들을 불러 재산을 맡기는 것과 같다. 15 그는 각자의 능력에 따라 한 사람에게는 다섯 탈렌트, 다른 사람에게는 두 탈렌트, 또 다른 사람에게는 한 탈렌트를 주고 여행을 떠났다.
16 다섯 탈렌트를 받은 이는 곧 가서 그 돈을 활용하여 다섯 탈렌트를 더 벌었다. 17 두 탈렌트를 받은 이도 그렇게 하여 두 탈렌트를 더 벌었다. 18 그러나 한 탈렌트를 받은 이는 물러가서 땅을 파고 주인의 그 돈을 숨겼다.
19 오랜 뒤에 종들의 주인이 와서 그들과 셈을 하게 되었다.
20 다섯 탈렌트를 받은 이가 나아가서 다섯 탈렌트를 더 바치며, ‘주인님, 저에게 다섯 탈렌트를 맡기셨는데, 보십시오, 다섯 탈렌트를 더 벌었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21 그러자 주인이 그에게 일렀다. ‘잘하였다, 착하고 성실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성실하였으니 이제 내가 너에게 많은 일을 맡기겠다. 와서 네 주인과 함께 기쁨을 나누어라.’
22 두 탈렌트를 받은 이도 나아가서, ‘주인님, 저에게 두 탈렌트를 맡기셨는데, 보십시오, 두 탈렌트를 더 벌었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23 그러자 주인이 그에게 일렀다. ‘잘하였다, 착하고 성실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성실하였으니 이제 내가 너에게 많은 일을 맡기겠다. 와서 네 주인과 함께 기쁨을 나누어라.’
24 그런데 한 탈렌트를 받은 이는 나아가서 이렇게 말하였다. ‘주인님, 저는 주인님께서 모진 분이시어서, 심지 않은 데에서 거두시고 뿌리지 않은 데에서 모으신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25 그래서 두려운 나머지 물러가서 주인님의 탈렌트를 땅에 숨겨 두었습니다.
보십시오, 주인님의 것을 도로 받으십시오.’
26 그러자 주인이 그에게 대답하였다. ‘이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내가 심지 않은 데에서 거두고 뿌리지 않은 데에서 모으는 줄로 알고 있었다는 말이냐? 27 그렇다면 내 돈을 대금업자들에게 맡겼어야지. 그리하였으면 내가 돌아왔을 때에 내 돈에 이자를 붙여 돌려받았을 것이다.
28 저자에게서 그 한 탈렌트를 빼앗아 열 탈렌트를 가진 이에게 주어라. 29 누구든지 가진 자는 더 받아 넉넉해지고, 가진 것이 없는 자는 가진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
30 그리고 저 쓸모없는 종은 바깥 어둠 속으로 내던져 버려라. 거기에서 그는 울며 이를 갈 것이다.’”




지난 주, 부산까지의 자전거 여행을 통해서 얻고자 하는 효과가 하나 있었습니다. 바로 체중 감량이었지요. 제가 생각보다 몸무게가 많이 나가거든요. 강화에서 부산까지 얼마나 멉니까? 따라서 500Km가 넘는 거리를 자전거를 타고서 가면 분명히 체중이 줄어들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과연 자전거 여행을 하고 나서 체중이 얼마나 줄었을까요? 감량이 되기는 했지만, 그 숫자가 너무나 적네요. 500Km가 넘는 거리를 자전거로 탔으면 10Kg이상은 줄어야 하지 않을까요? 하지만 겨우 2Kg 줄었습니다. 너무나 실망했습니다.

사실 체중을 좀 줄이려고 여행 중에도 하루에 2끼만 먹었고, 군것질도 전혀 하지 않았거든요. 하지만 제가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불과 2Kg 감량으로 만족해야 했습니다.

성지로 다시 돌아와서 아침마다 자전거를 타면서 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틀 동안 운동을 한 뒤에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하루에 40Km씩, 이틀 동안 딱 80Km를 달렸는데, 글쎄 2Kg이나 줄어든 것입니다. 즉, 거의 600Km를 가서 2Kg 줄였는데, 80Km만 가도 2Kg을 줄일 수가 있더라는 것입니다.

산술적인 계산속에서 따진다면 분명히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런데 어쩌면 이 세상 안의 것들이 모두 이렇지 않을까요? 산술적인 계산을 뛰어 넘는 일들이 너무나 많다는 것이지요. 하지만 우리들은 항상 이런 산술적인 계산속에서 모든 것을 판단했던 것은 아니었을까요?

이 점은 주님께 대한 것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이렇게 기도했으니 주님께서는 나의 소원을 들어주셔야 해. 내가 이런 선행을 했는데, 내가 저 사람보다 못 된다는 것은 말도 안돼…….’ 그러나 주님의 일은 이런 산술적인 계산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바로 영적인 계산으로 주님께서는 활동하고 계십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탈렌트의 비유 말씀을 하십니다. 어떤 사람이 여행을 떠나면서 종들에게 다섯 탈렌트, 두 탈렌트, 한 탈렌트를 줍니다. 그리고 후에 주인이 돌아와서 종들과 셈을 합니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두 배로 탈렌트를 불리는데, 한 탈렌트 받은 종만은 땅 속에 탈렌트를 숨겨 놓아서 늘리지도 줄이지도 않은 그대로의 한 탈렌트만을 가지고 옵니다.

이 종은 주인을 산술적인 계산으로 판단했던 것입니다. ‘혹시 내가 잘못해서 한 탈렌트를 잃어버리면 어떻게 하지?’라는 불안한 산술적인 계산으로 그는 아무 것도 하지 않았던 것이지요.

인간적인 산술적인 계산은 우리들이 반드시 피해야 할 것입니다. 이 산술적인 계산에서 벗어났을 때,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그 탈렌트를 가지고서 마음껏 자신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더군다나 주님께서는 우리들이 할 수 없는 일은 절대로 시키지 않습니다. 대신 자신의 부족한 능력이라도 최선을 다해서 사용하려는 모습을 보시고, 주님께서는 이 자리에 함께 하셔서 우리들을 도와주십니다.

지금도 산술적인 계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까? 주님의 일은 산술적인 계산이 아니라, 영적인 계산으로만 판단이 가능합니다.


‘나는 못해’라는 말을 하지 맙시다. 주님께서 나와 함께 하시는 한 할 수 없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잊지 말아야 할 사실(박성철)

발명왕 에디슨은 담임 선생님의 구제 불능이라는 판단 아래 초등학교도 졸업하지 못하고 학업을 그만둘 수 밖에 없었습니다.

미국의 대통령 루즈벨트는 정치가가 되겠다는 뜻을 친구들에게 이야기했지만 친구들은 한결같이 소아마비에 걸린 사람은 정치가가 될 수 없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작곡가 베토벤은 어린 시절 음악 선생님으로부터 『자네는 음감이 전혀 없어』라며 피아노를 포기하라고 강요 당했습니다.

홈런 왕 베이브 루드는 투수를 포기하고 타자로 전향하는 것은 인생을 포기하겠다는 선언과 다를 바 없다는 사람들의 비난을 들어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각자의 분야에서 최고가 되었습니다.

자신의 마음속에서 「나는 할 수 없다」라는 말을 몰아내고 「나는 할 수 있다」라는 말만을 심어둔 덕택입니다.

당신은 소중한 존재란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적어도 당신이 생각하고 있는 것 보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