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독서 코린토 1서 2,1-5 1 형제 여러분, 나는 여러분에게 갔을 때에, 뛰어난 말이나 지혜로 하느님의 신비를 선포하려고 가지
않았습니다. 2 나는 여러분 가운데에 있으면서 예수 그리스도 곧 십자가에 못 박히신 분 외에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기로 결심하였습니다.
3 사실 여러분에게 갔을 때에 나는 약했으며, 두렵고 또 무척 떨렸습니다. 4 나의 말과 나의 복음 선포는 지혜롭고 설득력 있는 언변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성령의 힘을 드러내는 것으로 이루어졌습니다. 5 여러분의 믿음이 인간의 지혜가 아니라 하느님의 힘에 바탕을 두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복음
루카 4,16-30 그때에 16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자라신 나자렛으로
가시어, 안식일에 늘 하시던 대로 회당에 들어가셨다. 그리고 성경을 봉독하려고 일어서시자, 17 이사야 예언자의 두루마리가 그분께
건네졌다. 그분께서는 두루마리를 펴시고 이러한 말씀이 기록된 부분을 찾으셨다. 18 “주님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어 주시니 주님의 영이 내
위에 내리셨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하며, 눈먼 이들을 다시 보게 하고
억압받는 이들을 해방시켜 내보내며 19 주님의 은혜로운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 20 예수님께서 두루마리를 말아 시중드는 이에게
돌려주시고 자리에 앉으시니, 회당에 있던 모든 사람의 눈이 예수님을 주시하였다. 21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기 시작하셨다. “오늘 이
성경 말씀이 너희가 듣는 가운데에서 이루어졌다.” 22 그러자 모두 그분을 좋게 말하며, 그분의 입에서 나오는 은총의 말씀에
놀라워하였다. 그러면서 “저 사람은 요셉의 아들이 아닌가?” 하고 말하였다. 23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는 틀림없이
‘의사야, 네 병이나 고쳐라.’ 하는 속담을 들며, ‘네가 카파르나움에서 하였다고 우리가 들은 그 일들을 여기 네 고향에서도 해 보아라.’ 할
것이다.” 24 그리고 계속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어떠한 예언자도 자기 고향에서는 환영을 받지 못한다. 25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삼 년 육 개월 동안 하늘이 닫혀 온 땅에 큰 기근이 들었던 엘리야 때에, 이스라엘에 과부가 많이 있었다. 26 그러나
엘리야는 그들 가운데 아무에게도 파견되지 않고, 시돈 지방 사렙타의 과부에게만 파견되었다. 27 또 엘리사 예언자 시대에 이스라엘에는
나병 환자가 많이 있었다. 그러나 그들 가운데 아무도 깨끗해지지 않고, 시리아 사람 나아만만 깨끗해졌다.” 28 회당에 있던 모든 사람들은 이
말씀을 듣고 화가 잔뜩 났다. 29 그래서 그들은 들고일어나 예수님을 고을 밖으로 내몰았다. 그 고을은 산 위에 지어져 있었는데, 그들은
예수님을 그 벼랑까지 끌고 가 거기에서 떨어뜨리려고 하였다. 30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들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떠나가셨다.
제가 전에 교구청에 있을 때의 일입니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제가 사실 좀
게으릅니다. 그러다보니 귀찮다 싶으면 아예 하지 않는 모습을 보일 때가 너무나 많아요. 특히 청소가 그렇지요. 제 방은 항상 어수선 그리고
지저분 그 자체입니다. 아무튼 이런 제 모습에서 벗어나기 위한 노력을 수차례 했지만 생각보다 변화되기란 쉽지가 않더군요.
그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제가 아는 분이 아주 예쁜 화분에 담긴 꽃나무를 하나 선물해주셨습니다. 이 꽃나무를 보면서 생각했지요.
‘내가
게을러서 이런 꽃나무 하나 제대로 키우지 못했는데, 이번에 이것만큼은 정말로 잘 키워봐야지.’
사실 이제까지 저의 게으름으로 죽은
꽃나무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게을러서 물을 주지 않았거든요. 따라서 이 꽃나무만큼은 어떠한 일이 있어도 꼭 물을 주자고 다짐했습니다.
일어나자마자 제일 먼저 한 일이 이 꽃나무에 물을 주는 것이었고, 일로 인해서 방에 들어올 수 없는 상황이면 전날에 미리 물을 흠뻑 주었지요.
그런데 이상한 현상이 일어났어요. 처음에 싱싱했던 그 꽃나무가 점점 힘이 없어지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결국 이 꽃나무도 죽고 말았습니다. 저는
너무나 이상했습니다. 이제까지 어떤 꽃나무에도 이런 사랑을 보인 적이 없었는데, 왜 죽고 말았을까요?
얼마 뒤, 그 화분을 주신
분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는 이 이야기를 말씀드렸지요.
“제가 이번만큼은 잘 키워보려고 매일 물을 주었는데도, 이 꽃나무가
죽어버리고 말았어요. 아마 저하고 식물은 잘 맞지 않나봐요. 저 생각해서 주셨는데, 정말 죄송합니다.”
그런데 그분께서는 깜짝
놀라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시네요.
“신부님, 매일 물을 주셨어요? 제가 화분에 메모해서 적어놨는데……. 그 꽃나무는 일주일에 한
번씩만 물을 주는거에요.”
메모는 제가 그냥 휴지조각인줄 알고 버렸던 것이지요. 그리고 매일 물을 줬기 때문에 그 꽃나무는 썩어버린
것이었습니다.
어쩌면 사랑도 이런 것이 아닐까요? 즉 알아야 진정한 사랑을 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내 쪽에서만 사랑한다고 해서
그것이 참된 사랑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들은 내 기준에서 모든 것이 결정될 때가 참으로 많습니다. 그리고는 이렇게 말하지요.
‘내가 이렇게 사랑을 베풀었는데, 어떻게 저럴 수가 있어?’ 자기 기준에서 이루어지는 사랑은 상대방과의 간격을 더욱 더 멀게 만들 뿐입니다.
오늘 복음을 보면 예수님께서 고향을 찾아가십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기분이 몹시 언짢으신 것 같습니다. 왜 그럴까요? 사람들이
자신의 기준으로만 예수님을 바라보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저 사람은 요셉의 아들이 아닌가?”
내가 아는 것이 전부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은 알기 위해서 끊임없이 노력해야 합니다. 그래야 사랑으로 다가오시는 예수님을 제대로 알아 볼 수 있게
됩니다.
남을 섣불리 판단하지
맙시다.
감옥과 수도원(마쓰시다
고노스케) 감옥과 수도원의 공통점은 세상과 단절되어 있다는
것이다.
다른점은 불평을 하느냐 아니면 감사를 하느냐의 차이다.
감옥이라도 감사하는 마음이면 수도원이 될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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