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ily/★ 빠다킹 신부님과 새벽을..

결정이나 판단을 내리기에 앞서 주님께 기도합시다.

ohjulia 2006. 9. 12. 05:34
2006년 9월 12일 연중 제23주간 화요일

제1독서
코린토 1서 6,1-11
형제 여러분, 1 여러분 가운데 누가 다른 사람과 문제가 있을 때, 어찌 성도들에게 가지 않고 이교도들에게 가서 심판을 받으려고 한다는 말입니까? 2 여러분은 성도들이 이 세상을 심판하리라는 것을 모릅니까? 세상이 여러분에게 심판을 받아야 할 터인데, 여러분은 아주 사소한 송사도 처리할 능력이 없다는 말입니까?
3 우리가 천사들을 심판하리라는 것을 모릅니까? 하물며 일상의 일이야 더 말할 나위가 없지 않습니까? 4 그런데 이런 일상의 송사가 일어날 경우에도, 여러분은 교회에서 업신여기는 자들을 재판관으로 앉힌다는 말입니까?
5 나는 여러분을 부끄럽게 하려고 이 말을 합니다. 여러분 가운데에는 형제들 사이에서 시비를 가려 줄 만큼 지혜로운 이가 하나도 없습니까? 6 그래서 형제가 형제에게, 그것도 불신자들 앞에서 재판을 겁니까?
7 그러므로 여러분이 서로 고소한다는 것부터가 이미 그릇된 일입니다. 왜 차라리 불의를 그냥 받아들이지 않습니까? 왜 차라리 그냥 속아 주지 않습니까? 8 여러분은 도리어 스스로 불의를 저지르고 또 속입니다. 그것도 형제들을 말입니다.
9 불의한 자들은 하느님의 나라를 차지하지 못하리라는 것을 모릅니까? 착각하지 마십시오. 불륜을 저지르는 자도 우상 숭배자도 간음하는 자도 남창도 비역하는 자도, 10 도둑도 탐욕을 부리는 자도 주정꾼도 중상꾼도 강도도 하느님의 나라를 차지하지 못합니다.
11 여러분 가운데에도 이런 자들이 더러 있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느님의 영으로 깨끗이 씻겨졌습니다. 그리고 거룩하게 되었고 또 의롭게 되었습니다.


복음 루카 6,12-19
12 그 무렵에 예수님께서는 기도하시려고 산으로 나가시어, 밤을 새우며 하느님께 기도하셨다.
13 그리고 날이 새자 제자들을 부르시어 그들 가운데에서 열둘을 뽑으셨다.
그들을 사도라고도 부르셨는데, 14 그들은 베드로라고 이름을 지어 주신 시몬, 그의 동생 안드레아, 그리고 야고보, 요한, 필립보, 바르톨로메오, 15 마태오, 토마스,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열혈당원이라고 불리는 시몬, 16 야고보의 아들 유다, 또 배신자가 된 유다 이스카리옷이다.
17 예수님께서 그들과 함께 산에서 내려가 평지에 서시니, 그분의 제자들이 많은 군중을 이루고, 온 유다와 예루살렘, 그리고 티로와 시돈의 해안 지방에서 온 백성이 큰 무리를 이루고 있었다. 18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도 듣고 질병도 고치려고 온 사람들이었다. 그리하여 더러운 영들에게 시달리는 이들도 낫게 되었다.
19 군중은 모두 예수님께 손을 대려고 애를 썼다. 그분에게서 힘이 나와 모든 사람을 고쳐 주었기 때문이다.




제가 오늘 새벽 ‘단 1초의 말 한 마디’라는 글을 하나 보게 되었는데, 우리가 한번쯤 생각해볼 수 있는 내용이라 여러분에게 소개해드릴까 합니다.

“처음 뵙겠습니다.” 1초 동안 할 수 있는 이 짧은 말로, 인생의 순간을 느낄 때가 있다.

“고마워요.” 1초 동안 할 수 있는 이 짧은 말로, 사람의 따뜻함을 알 때가 있다.

“힘내세요.” 1초 동안 할 수 있는 이 짧은 말로, 용기가 되살아날 때가 있다.

“축하해요.” 1초 동안 할 수 있는 이 짧은 말로, 행복이 넘치는 때가 있다.

“용서하세요.” 1초 동안 할 수 있는 짧은 말에서, 인간의 약한 모습을 볼 때가 있다.

“안녕.” 1초 동안 할 수 있는 짧은 말이, 일생 동안의 이별을 가져올 때가 있다.

1초라는 시간. ‘똑딱’하면 지나가는 시간이고, 그래서 분명히 짧은 시간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1초라는 시간이 나의 인생을 뒤바꾸어 놓을 수도 있는 가장 긴 시간도 될 수 있다는 것을 이 짧은 글에서는 이야기해주고 있습니다. 따라서 어떤 선택의 순간에서 우리가 얼마나 신중해야 하는 지, 또 아무리 짧은 시간이라 할지라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하느님의 외아드님이신 예수님께서도 얼마나 신중하셨는지를 오늘 복음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당시의 전지전능하신 능력으로써 쉽게 선택하실 수 있을 것 같은데, 간단하게 선택하지 않습니다. 성서는 이렇게 말하고 있지요.

“예수님께서는 기도하시려고 산으로 나가시어, 밤을 새우며 하느님께 기도하셨다. 그리고 날이 새자 제자들을 부르시어 그들 가운데에서 열둘을 뽑으셨다.”

우리들은 과연 어떤 선택의 순간에서 얼마나 신중했으며, 올바른 선택을 위해서 하느님께 얼마나 기도했나요? 혹시 자기 자신만의 1초의 짧은 생각으로 내 이웃에게 많은 상처와 아픔을 가져다주었던 것은 아니었을까요?

많은 사람들이 기도를 소홀하게 생각합니다. 나약하고 부족한 인간이 어떻게 완벽할 수가 있겠습니까? 따라서 자신의 그 부족한 부분을 기도를 통해서 채울 수가 있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자기만의 생각으로 판단하고 결정했으면서도 불구하고,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신중하게 생각했어.”

아닙니다. 기도하지 않았다는 것은 자신의 부족한 면으로만 판단한 것이기 때문에 결코 신중한 것이라고 말할 수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어떠한 결정을 위해서는 밤을 새우시면서 까지 기도하셨습니다. 따라서 이제는 쉽게 말하고 쉽게 판단하는 우리들의 못된 행동들을 이제는 버렸으면 합니다. 그때 짧아 보이는 1초라는 시간도 내게 있어서 가장 중요하고 가장 의미 있는 시간으로 만들 수가 있을 것입니다.


결정이나 판단을 내리기에 앞서 주님께 기도합시다.



행복한 부부들의 공통점('좋은 글' 중에서)

행복한 부부들의 공통점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열등 의식이 없습니다.

2) 부부 사이에 열린 대화가 있습니다.

3) 꾸준히 성숙을 위하여 노력합니다.

4) 부부를 서로를 잘 이해하려 노력합니다.

5) 삶을 즐길 줄 압니다.

6) 서로를 향해 정직합니다.

7) 부부간의 에절을 지킵니다.

8) 삶의 의미를 항상 느끼려고 노력합니다.

9) 남편(아내)의 목표를 돕는 동반자가 됩니다.

10) 신앙관이 일치해 가도록 서로 신앙을 교류합니다.

여러분은 이 10가지 사항 중 몇 가지를 실천하며 살아가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