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istance/▲ 사랑하는 이들의 글

작은 나눔으로 더 큰것을 받았습니다

ohjulia 2006. 9. 18. 13:20

약 1년 하고 반 정도가 된것 같다.

2년 정도 되었나??? 싶기도 하고...

교도소에 의지할 곳 없는 장기수들에게 편지봉사 하는일.

 

이곳에서도 내가 뭔가 뜻있는 일을 할게 없을까 생각하던 중에

조안나님의 소개로 편지 봉사하는 단체를 알게 되었다.

틈 내어서 할 수 있는 일이라 생각 했기에 선뜻 시작을 했었고 이젠 제법 시간이 흘렀다.

 

막상 시작하고 보니 생각처럼 쉽지 않았던건

어쩌면 무섭게만 생각하던 그런 사람과 직접 사연을 나누며 듣는다는게

마음이 많이 아프기도 했고, 무겁기도 했고

표현하기가 힘들 정도로 잠깐의 몸살도 앓았으니...

지금은 막연한 생각으로 대충 시작했던 내 마음이

조금은 현실을 직시하며 바라보는것 같다.

 

처음에 무기징역을 받았다가 감형 되어서 약 삼십년을 감옥에서 살아야 하는

젊은 형제님과 서신 교환을 하고 있는데

그 형제님은 약 6년정도 교도소 생활을 했고

아직도 남은 기간은 헤아리기 싫은 숫자로 남아있다.

 

때로는 사치스러운 방황으로 내 정신은 더 고급스러운 향유를 찾아 헤매이고 있을 때

형제님과의 서신교환은 세상을 향한 내 눈을 뜨게 해 주었고

현실의 아픈곳과 어두운 곳들을 더 많이 볼 수 있게 해 주었다.

어쩌면 봉사가 아니라 내가 그 형제님께 봉사를 받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오늘 성모 대축일에 조금 멀리...야외 미사를 다녀왔다.

형제님을 위해서 미사봉헌 봉투를 준비 하고서도

조금 늦게 도착해서 봉헌하지 못하고 다음주로 미루고 보니

쯧쯧!  내가 한심한 생각이 든다.

 

며칠 전에 형제님께 보낸 편지 붙여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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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국용 형제님께.

 

한국에서 온 조카가 만 2개월을 머물다가 얻그제 돌아갔습니다.

대학교 2학년의 덩치 큰 남자 한 사람이 함께 뒹굴며 지내다가 빠져 나가니

뭔가 하나가 비어있는듯 썰렁함에 머물던 이층방을 자꾸 올려다 보게 되네요.

든 자리보다 난 자리가 훨씬 크다고 하더니 맞는 말인것 같습니다.

 

방학 끝머리에 조카 데리고 자동차로 엘로스톤 이라는 곳을 목적지로 하여 8박9일의 여행을 다녀왔어요.

아이들과 함께하는 여행을 위해 긴 시간 회사일을 맏겨두고 시간을 만든 남편 덕분이기도 하지만

그렇게 긴 시간 가족이라는 개념을 다시한 번 느끼는 계기가 되기도 해서 저는 너무도 좋았답니다.

 

첫날은 아침부터 저녁 늦은 시간까지 달리는 일만 했어요.

거리를 따져보니 서울에서 부산까지 왕복을 하고도 대전까지 간 거리가 나오더군요.

남편과 아들과 제가 비슷하게 나눠서 운전을 하니 크게 부담스럽지는 않았지만

달리면서 느끼는 건 미국이란 땅 덩어리가 정말로 넓기는 넓다는 것과

사람이 살던, 살지않던 도로 하나는 일품이라는 것이 부럽기까지 했답니다.

어떤날은 밤 새워 꼬박 달리는 일만 한 날도 있네요.

조카가 하는 말이 일생에 가장 지겨웠던 순간이 될것 같다고 했지만

저는 그 순간이 가장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거라며 무엇이든 힘든 순간들이

더 좋은 거름이 될 거라 믿는다 말 했어요.

어느 곳에선 360도를 돌아봐도 끝없는 지평선에 놀라 대 자연의 방대함에 고개 숙이기도 했답니다.

미국 지도를 펼치고 사선을 그어서 다녀온 흔적을 보며 오랜시간의 운전에 힘들기도 했지만

많은걸 얻었던 귀한 시간이었음에 감사하고 있어요.

조카는 남편 회사에서 아르바이트도 해서 용돈도 벌었고

그걸로 저의 큰 아이랑 둘이서 뉴욕으로 배낭여행도 다녀왔으니

알찬 시간 보내고 돌아간것 같아서 마음이 든든하기도 하답니다.

고등학교 1학년때 보고는 이제야 청년이 다 된 모습으로 만나서

새롭게 정을 쌓으며 더 깊은 혈육의 정을 느낀것 같아 감사했어요.

 

죄송한 생각이 많이 듭니다.

제한된 공간에서 자신과의 싸움을 매일매일 하며 삶을 키우고 있는 형제님께

좋은 말벗도 되어주지 못하고 아주 가끔 들려드릴 수 있는 말들이 이런것들이라

정말 미안한 생각이 많이 들어요.

형제님 편지 속에 힘들다 느껴졌을 때 달콤한 위로는 드리지 못했지만

형제님을 위한 기도는 잊지 않고 있답니다.

조금 안정된 마음으로 열심히 살아가시는 모습을 느낄 때면 감사하고 있어요.

이젠 날씨가 많이 좋아졌지요.

이곳도 가을냄새가 점점 짙어지고 있답니다.

너무 아름다워서 짧은건지...아쉽게 곧 지나가버릴 이 계절에

형제님도 좋은 시간 느끼시기를 바라겠습니다.

새롭게 시작하시는 공부가 매일매일 활력의 시간이 되어서

형제님께 기쁨이 되기를 진심으로 기도하는 마음입니다.

 

저는 요즘 작은 봉사를 시작했어요.

봉사라기 보다는 제가 받은것에 일부를 돌려준다는게 맞는거겠죠.

저희들에게 영어를 가르켜 주시는 할머니 선생님 두 분께 그림지도를 하고 있답니다.

일주일에 두 시간...작은 나눔에도 너무 감사하며 기뻐하시는 할머니들의 모습에

오히려 제가 곱절로 행복을 선물받고 있는것 같아요.

능력은 없지만 주님께 도와달라고 청하며 한걸음씩 시작하고 있어요.

 

영어 공부도 열심히 하지 못하고 별로 나아진것도 없지만

이 먼곳, 미국땅에서도 저의 작은 달란트가 쓰임 받으니 참으로 감사할 일이지요.

조금씩 더 나누며 살았으면 하는게 제 소망이지만

부지런하지 못하니 자신이 없네요.

건강도 자신없고, 능력도 자신없고...ㅎㅎ 하지만 주님 믿으며 의탁하니 힘이 생깁니다.

 

믿음생활에도 게으른 제 모습을 오늘도 콩콩! 꿀밤으로 깨우치며

아이들 학교생활도 정상으로 시작되고 어느정도 일과도 안정 되었으니

조금 더 부지런해지기로 마음먹어 봅니다.

항상 건강하시기를...언제나 희망 잃지 않기를 기도합니다.

형제님을 위해서 미사봉헌 하겠습니다.

형제님께 작은 저의 선물이 되기를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