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양은 정자문화가 가장 발달한 곳이다. 소쇄원을 비롯해 면앙정, 식영정, 송강정, 명옥헌, 독수정 등 수많은 정자가 남아 있다. 땅이 기름진 탓에 부유한 지주들이 많았는데 이들이 사화를 겪으면서 고향에 돌아와 정자와 원림을 지었다. 정자 둘레엔 100여 년 수령의 배롱나무 수십 그루가 울창한데, 한창 만개할 때는 정자는 안 보이고 오로지 불그레한 꽃잎만 장관을 이룬다. 소쇄원과 더불어 아름다운 민간 원림으로 꼽히는 이곳은 오희도(1583∼1623)가 자연을 벗삼아 살던 곳으로, 아들 오이정(1619∼1655)이 명옥헌이라 이름지었다. 명옥헌은 배롱나무가 아름답다. 계곡수가 청아하게 부딪치는 소리를 내는 정자라 하여 명옥헌(鳴玉軒)이다. 청아한 선비들은 왜 한여름 내내 붉은 꽃을, 마음 산란하게 하는 꽃을, 주위에 그토록 심어 놓았는지. 왜 절집의 스님들도 석탑 옆에 하안거 선방 뜨락에 그 붉은 나무들을 심어 놓았는지. 붉어서 아픈 마음 인두로 다시 지지는 고행인지. 죽은 이의 무덤가에는 왜 붉은 꽃을 심어 놓은 것인지.
“피어서 열흘 아름다운 꽃이 없고/ 살면서 끝없이 사랑 받는 사람 없다고/ 사람들은 그렇게 말을 하는데// 한여름부터 초가을까지/ 석달 열흘을 피어 있는 꽃도 있고/ 살면서 늘 사랑스러운 사람도 없는 게 아니어// 함께 있다 돌아서면/ 돌아서며 다시 그리워지는 꽃 같은 사람 없는 게 아니어”(도종환, ‘목백일홍’ 부분)
“그 여름 나무 백일홍은 무사하였습니다 한차례 폭풍에도 그 다음 폭풍에도 쓰러지지 않아 쏟아지는 우박처럼 붉은 꽃들을 매달았습니다.// 그 여름 나는 폭풍의 한가운데 있었습니다 그 여름 나의 절망은 장난처럼 붉은 꽃들을 매달았지만 여러 차례 폭풍에도 쓰러지지 않았습니다.// 넘어지면 매달리고 타올라 불을 뿜는 나무 백일홍 억센 꽃들이 두어 평 좁은 마당을 피로 덮을 때, 장난처럼 나의 절망은 끝났습니다.”(이성복, ‘그 여름의 끝’ 전문)
“자기 살을 자기 손으로 떼어내며/ 백일홍이 지고 있다// 백일홍은 왜/ 자기 연민도 자기에 대한 증오도 없이/ 자신한테 버럭 소리 한번 지르지도 않고/ 뚝뚝, 지고 마는가// 여름 한낮, 몸속에 흐르던 강물을/ 울컥울컥 토해내면서/ 한 마리 혼절한 짐승같이 웅크리고 있는 나무여// 나 아직도 너에게 기대어/ 내 몸을 마구 비벼보고 싶은데/ 혼자서 피가 뜨거워지는 일은/ 얼마나 두렵고 쓸쓸한 일이냐/ 女中生들이 몰래 칠한 립스틱처럼/ 꽃잎을 받아먹은/ 지구의 입술이 붉다// 그 어떤 고백도 맹세도 없이/ 또 한 여자를 사랑해야 하는 날이 오느냐”(안도현, ‘20세기가 간다’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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