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10월 9일 연중 제27주간 월요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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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독서 갈라티아서 1,6-12 형제 여러분, 6 그리스도의 은총 안에서 여러분을 불러 주신 분을 여러분이 그토록 빨리 버리고 다른 복음으로 돌아서다니,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7 실제로 다른 복음은 있지도 않습니다. 그런데도 여러분을 교란시켜 그리스도의 복음을 왜곡하려는 자들이 있습니다. 8 우리는 물론이고 하늘에서 온 천사라도 우리가 여러분에게 전한 것과 다른 복음을 전한다면, 저주를 받아 마땅합니다. 9 우리가 전에도 말한 바 있지만 이제 내가 다시 한 번 말합니다. 누가 여러분이 받은 것과 다른 복음을 전한다면, 그는 저주를 받아 마땅합니다. 10 내가 지금 사람들의 지지를 얻으려고 하는 것입니까? 하느님의 지지를 얻으려고 하는 것입니까? 아니면, 사람들의 비위를 맞추려고 하는 것입니까? 내가 아직도 사람들의 비위를 맞추려고 하는 것이라면, 나는 더 이상 그리스도의 종이 아닐 것입니다. 11 형제 여러분, 여러분에게 분명히 밝혀 둡니다. 내가 전한 복음은 사람에게서 비롯된 것이 아닙니다. 12 그 복음은 내가 어떤 사람에게서 받은 것도 아니고 배운 것도 아닙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를 통하여 받은 것입니다. 복음 루카 10,25-37 그때에 25 어떤 율법 교사가 일어서서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말하였다. “스승님, 제가 무엇을 해야 영원한 생명을 받을 수 있습니까?” 26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율법에 무엇이라고 쓰여 있느냐? 너는 어떻게 읽었느냐?” 27 그가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힘을 다하고 네 정신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하였습니다.” 하고 대답하자, 28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옳게 대답하였다. 그렇게 하여라. 그러면 네가 살 것이다.” 29 그 율법 교사는 자기가 정당함을 드러내고 싶어서 예수님께, “그러면 누가 저의 이웃입니까?” 하고 물었다. 30 예수님께서 응답하셨다.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예리코로 내려가다가 강도들을 만났다. 강도들은 그의 옷을 벗기고 그를 때려 초주검으로 만들어 놓고 가 버렸다. 31 마침 어떤 사제가 그 길로 내려가다가 그를 보고서는, 길 반대쪽으로 지나가 버렸다. 32 레위인도 마찬가지로 그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서는, 길 반대쪽으로 지나가 버렸다. 33 그런데 여행을 하던 어떤 사마리아인은 그가 있는 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서는, 가엾은 마음이 들었다. 34 그래서 그에게 다가가 상처에 기름과 포도주를 붓고 싸맨 다음, 자기 노새에 태워 여관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었다. 35 이튿날 그는 두 데나리온을 꺼내 여관 주인에게 주면서, ‘저 사람을 돌보아 주십시오. 비용이 더 들면 제가 돌아올 때에 갚아 드리겠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36 너는 이 세 사람 가운데에서 누가 강도를 만난 사람에게 이웃이 되어 주었다고 생각하느냐?” 37 율법 교사가 “그에게 자비를 베푼 사람입니다.” 하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가서 너도 그렇게 하여라.”
초등학교, 중고등학교, 그리고 신학교에서의 생활. 총 24년의 시간입니다. 이렇게 보니까 상당히 긴 시간이네요. 그런데 이 24년의 시간 중에서 제가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았던 시간은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솔직히 저는 무엇 하나 잘 하는 것이 없었거든요. 공부, 운동, 그 밖의 많은 것들에 있어서 내세울 것이 하나도 없는 한심한 저의 모습이었습니다.
특히 학창 시절에는 여자들에게 인기 있는 남학생들을 보면 얼마나 부러웠는지 모릅니다. 여자 앞에만 서면 한없이 작아지는 제 모습이 얼마나 초라해 보이던지요. 저도 인기 많은 친구처럼, 여학생들을 재미있게 하는 말과 감동시키는 노래를 하고 싶었습니다. 또한 멋진 춤을 춰서 사람들의 환호성을 듣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자신이 생각한다고 그대로 되는 것은 아니잖아요. 저의 바램과 달리 인기 없는 생활의 연속이었습니다.
이러한 제가 신부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렇게 인기 없었던 저의 모습을 보면서 재미있다고 말씀하시는 분도 계시고, 또 어떤 분은 저의 능력 많음에 너무나 부럽다는 어처구니없는 말씀도 하십니다. 그리고 상상도 못했던 일들이 제게 일어나고 있는데요. 글쎄 제가 좋다고 쫓아다니는 자매들도 생기더라는 것입니다.
새벽에 세수를 하면서 거울을 쳐다봅니다. 그리고 신부가 된 후, 내 모습에서 바뀐 점이 있나를 곰곰이 바라보았습니다. 다른 점이 없습니다. 여전히 머리카락은 빗자루처럼 뻣뻣하고, 쳐진 눈은 십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습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의 반응은 왜 이렇게 다를까요? 없었던 능력이 갑자기 생긴 것일까요? 그것도 아닙니다. 딱 한 가지 때문입니다. 바로 제가 신부라는 사실이지요.
신부로 살고 있기 때문에 저를 좋게 봐 주시는 것이고, 그러다보니 제가 능력이 많은 것처럼 보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렇게 신부라는 사실 때문에 인정을 받으면서 살다보니 종종 착각 속에 빠지게 되더라는 것입니다. 내가 정말로 능력이 많아서 인정을 받고 있으며, 내가 잘 생겨서 사람들이 쫓아오는 것으로 착각하게 됩니다.
주님께서는 이러한 착각 속에 빠지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자신의 능력이나 지위 자체가 별 의미가 없음을, 오히려 능력도 없고 아주 낮은 자리에 있을지언정 사랑을 적극적으로 실천하는 사람이야말로 하느님 나라를 차지할 것이라고 오늘 복음의 착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를 통해서 이야기하십니다.
이제는 내 안에 있는 착각들을 버려야 하지 않을까요? 그리고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것보다는 주님께 인정받는데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것은 순간이지만, 주님께 인정받는 것은 하느님 나라의 영원한 행복이 따라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인정은 주님께서 가장 강조하셨던 사랑의 실천 안에만 있습니다. 결코 나의 능력이나 재주로써 주님의 인정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착한 사마리아 사람을 생각하면서 착한 일 하기.
두 개의 진실(박성철, '행복한 아침을 여는 101가지 이야기' 중에서)
어부들이 그물로 고기를 낚고 있었습니다. 그물을 던진 지 얼마 안 돼서 그물이 팽팽해지더니 뭔가 묵직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어부들은 고기가 가득 찬 줄 알고 기쁜 표정으로 그물을 힘껏 당겨 올렸습니다. 그러나 그물을 끌어 올리고 보니 고기는 없고 필요 없는 돌만 가득 차 있었습니다.
"이게 뭐야? 묵직하다고 느꼈더니 쓸모없는 것들만 가득하잖아."
"그럼 그렇지. 우리 신세에 무슨……."
어부들의 얼굴에는 이내 실망의 빛이 가득했습니다. 그때 나이 많은 한 어부가 조용히 말했습니다.
"실망할 것 없다네. 슬픔과 기쁨은 형제 같은 것. 우린 미리 기뻐했으니 다음엔 슬플 수밖에 없는 것 아니겠는가?"
기쁨과 슬픔은 동전의 양면과 같은 것이란 생각이 듭니다. 항상 기쁜 일만 있을 수 없고, 항상 슬픈 일만 있는 것도 아니지요. 뉴먼은 기쁨과 슬픔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람의 마음 속에는 두 개의 침실이 있는데 한방에서 기쁨이 깨어 있을 때, 다른 방엔 슬픔이 자고 있다."
일년 내내 내리는 비는 없습니다. 일년 내내 햇볕만 내리쬐는 법도 없습니다.
맑은 날을 보았으면 언젠가는 흐린 날도 보아야 하는법.
우리네 삶 또한 그와 같습니다. 나에게 슬픈 일만 생긴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뉴먼의 말처럼 이제 내 마음의 다른 한방에서 기쁨이 일어나 기지개를 켜고 있다고 믿으십시오.
그 믿음은 반드시 이루어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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