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Lord/† 영성의 향기

십자가의 성 요한의 생애와 영성-5

ohjulia 2006. 10. 15. 08:46

4.2. 감각의 수동적 정화

하느님께서 베푸시는 참된 은총의 특징은 자신을 높이고 돋보이게 하는 모든 것에 혐오를 느끼게 하고, 반대로 자신을 없신여기고 낮추는 일에는 쉽게 어울어지게 한다. 잠언 319.
인간의 감각을 근본적으로 정화하는 데는 하느님의 능력이 앞서 작용한다. 이것은 어린이가 커감에 따라 부드러운 사랑을 감추면서 응석을 받아 주지 않고 달디 단 젖에 쓰디 쓴 노회 즙을 발라 아기를 품에서 내려 놓고 제 발로 걷게 하는 것과 같다. 밤 1권 1장, 2.
마찬가지로 하느님께서도 ‘초심자’에게 지혜라는 은혜를 베푸시고 초심자가 어느정도 영적 성숙을 이룩하면 좀 더 나은 성숙을 촉구하시려고 감각에 깃들어 있는 자양분과 즐거움을 떼어 버리고 아무 것도 없는 아주 삭막한 쪽으로 밀어 버리신다. 호안 가렡드, 『십자가의 성 요한의 영성』, 서울 가르멜 여자 수도원 역, 서울, 가톨릭출판사, 1994, p.73.

4.2.1. 감각의 수동적 정화의 표징
십자가의 성 요한은 감각의 수동적 밤에 나아감을 알 수 있는 세가지 표징을 다음과 같이 든다.
첫째, 하느님의 일들에서 맛과 위로를 얻지 못하는 것처럼 피조물에서도 아무런 낙을 못얻는 그것이다.
둘째, 하느님의 일에서 맛을 못느끼더라도 자기가 하느님을 섬기지 않아서 퇴보함이라고 믿고 행여 하느님을 잊을세라 애타게 찾음이다.
셋째, 아무리 자기 편에서 할 일을 다 해도 그 전처럼 상상의 감각으로 묵상이나 추리를 도무지 할 수 없는 그것이다.
여기서 메마름과 맛없음은 새로 지은 죄나 결점, 우울증, 해이와 미온에서 올 수도 있다. 그러나 정화적인 메마름은 하느님을 섬기지 못함에 대한 걱정 및 시름과 함께 열심히 따르는 것이 보통이다. 밤 1권 9장 참조.

4.2.2. 영혼이 취해야 할 태도
하느님께서는 이미 그들을 첫 번째 길과는 아주 다른 길, 즉 관상으로 인도하시기 때문인데 말하자면 하나는 묵상과 추리요, 다른 하나는 상상과 추리에 들지 않는 것이다.
이러한 상태에 있는 사람들은 걱정할 것 없이 끝까지 인내하면서 스스로를 위로하는 것이 좋고, 순박한 마음으로 다신을 찾는 사람들을 버리지 않으시는 하느님을 신뢰할 일이니, 당신은 그들을 그저 맑고 밝은 사랑의 빛으로 인도하시기까지 갈 길에 필요한 것을 꼭 주실 것이고, 그들이 하느님 은혜를 받을 만큼 자격을 얻으면 영의 어둔밤을 통하여 저 빛을 주실 것이다. 관상이란 다른 게 아니라 하느님은 은밀하고 평화롭고 사랑겨운 내리심인 까닭이다. 밤 1권 10장 참조.
이처럼 감각의 수동적 정화는 하느님의 작용이고, ‘감각을 위해서는 어둡고 메마른 관상’에 기인한다. 확실히 감각적이고 피상적인 것을 초월한 사람은 기도의 사람이라 할 수 있다. 여기서 말하는 기도를 안정성이 있는 건조라고 표현해야 될지 모르겠으나 그런 기도는 보다 더 깊이 있는 새 삶을 이룩하기 위한 배경으로 필요한 것이며 온전히 하느님께서 무상의 은혜로 인간에게 주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현대처럼 감각적인 것이나 기계화된 것에 파묻힌 피로에 지친 시대에는 사람들이 좀 더 관상적 기도를 하고 싶어 하는 생생한 소망을 품게 되는 것은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4.2.3. 감각의 수동적 정화의 결과
첫째, 자기와 자기 비참에 대하 지견이다.
둘째, 하느님의 비추심으로 얻게 된 비참한 실상의 자아 인식을 바탕으로 하느님의 위대하심과 초월하심에 대한 인식이 나오게 된다.
셋째, 자기와 자기 비참에 대한 지견으로 영성적 겸손을 얻게 된다. 이 영성적 겸손으로 인하여 감성의 오만, 마침내는 영성의 교만에 딸린 일체의 악습들이 씻겨져서 영성의 길에 순종하는 사람으로 만든다.

4.3. 중간단계 - 조명의 길

하느님께서 앞으로 이끄실 영혼은 감각의 첫 번째 정화와 밤의 메마름과 고생을 벗어나자 즉시 이 영의 밤에 드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오랜 시간, 오랜 햇수가 걸리기가 일쑤여서 그동안 영혼은 초심자의 영역을 벗어나 나아간 사람들의 위치에서 공부를 닦는 것이다. 밤 2권 1장, 1.
감각의 밤을 설명한 후 요한은 정신이 더 강해지는 ‘중간 시기’에 대해 설명하면서 이 단계를 ‘정신의 밤’에 들어가지 전의 체험의 단계라고 한다.
십자가의 성 요한이 이와 같이 ‘중간 단계’를 구분한 것은 전통적인 영성 생활의 세 단계인 ‘정화-조명-일치’의 도식을 따르려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는 한 사람 한 사람의 내적 시기의 상태를 보시고 각자의 회개의 때를 기다리시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시간의 흐름이 필요한데 어떤 사람에게는 길고 어떤 사람에게는 짧다. 왜냐하면 하느님께서는 그 사람의 상태에 따라 당신의 업적을 이룩하시기 때문이다.
이 중간 시기에 영혼은 ‘관상’을 체험하고 하느님과 좀 더 친밀해 지는데 그것은 감각의 정화에 들어 가지 전에는 경험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와 동시에 새로운 ‘조임’도 드러나는데 그것은 지금까지 보다 훨씬 엄한 정신과 메마름과 어둔밤이 다가 오는 것을 말하며, 바로 이 점이 다가 올 ‘영의 어둔 밤’의 전조이다. 호안 가렡드, 『십자가의 성 요한의 영성』, 서울 가르멜 여자 수도원 역, 서울, 가톨릭출판사, 1994, pp.100-101 참조.

 

**에밀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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