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ily/★ 빠다킹 신부님과 새벽을..

나만 옳다고 주장하지 맙시다.

ohjulia 2007. 1. 16. 05:52
2007년 1월 16일 연중 제2주간 화요일

제1독서
히브리서 6,10-20
형제 여러분, 10 하느님은 불의한 분이 아니시므로, 여러분이 성도들에게 봉사하였고 지금도 봉사하면서 당신의 이름을 위하여 보여 준 행위와 사랑을 잊지 않으십니다. 11 여러분 각자가 희망이 실현되도록 끝까지 같은 열성을 보여 주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12 그리하여 게으른 사람이 되지 말고, 약속된 것을 믿음과 인내로 상속받는 이들을 본받는 사람이 되라는 것입니다.
13 하느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실 때, 당신보다 높은 분이 없어 그러한 분을 두고 맹세하실 수 없었으므로, 당신 자신을 두고 맹세하시면서, 14 “정녕코 나는 너에게 한껏 복을 내리고 너를 한껏 번성하게 해 주겠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15 그리하여 아브라함은 끈기 있게 기다린 끝에 약속된 것을 받았습니다. 16 사람들은 자기보다 높은 이를 두고 맹세합니다. 그리고 그 맹세는 모든 논쟁을 그치게 하는 보증이 됩니다.
17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약속하신 것을 상속받을 이들에게 당신의 뜻이 변하지 않음을 더욱 분명히 보여 주시려고, 맹세로 보장해 주셨습니다. 18 하느님께서 이 두 가지 변하지 않는 사실에 관하여 거짓말을 하신다는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이 두 가지로, 당신께 몸을 피한 우리가 앞에 놓인 희망을 굳게 붙잡도록 힘찬 격려를 받게 하셨습니다. 19 이 희망은 우리에게 영혼의 닻과 같아, 안전하고 견고하며 또 저 휘장 안에까지 들어가게 해 줍니다.
20 예수님께서는 멜키체덱과 같은 영원한 대사제가 되시어, 우리를 위하여 선구자로 그곳에 들어가셨습니다.


복음 마르코 2,23-28
23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밀밭 사이를 질러가시게 되었다. 그런데 그분의 제자들이 길을 내고 가면서 밀 이삭을 뜯기 시작하였다. 24 바리사이들이 예수님께 말하였다. “보십시오, 저들은 어째서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합니까?”
25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다윗과 그 일행이 먹을 것이 없어 배가 고팠을 때, 다윗이 어떻게 하였는지 너희는 읽어 본 적이 없느냐? 26 에브야타르 대사제 때에 그가 하느님의 집에 들어가, 사제가 아니면 먹어서는 안 되는 제사 빵을 먹고 함께 있는 이들에게도 주지 않았느냐?”
27 이어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생긴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생긴 것은 아니다. 28 그러므로 사람의 아들은 또한 안식일의 주인이다.”




장님 다섯 명이 코끼리 구경을 하게 되었습니다. 첫 번째 장님이 코끼리의 배를 만져봅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합니다.

“코끼리는 바람벽처럼 생겼는데?”

두 번째 장님은 코끼리의 코를 만집니다.
“아니야. 코끼리는 구렁이같이 생겼는걸!”

세 번째 장님이 코끼리의 다리를 안아봅니다.

“코끼리는 나무통처럼 생겼는걸!”

네 번째 장님은 코끼리의 귀를 한참 만져봅니다.

“아, 코끼리는 부채처럼 생겼어.”

마지막 다섯 번째 장님은 코끼리의 꼬리를 만져봅니다.

“코끼리는 밧줄처럼 생겼구나.”

똑같은 것이라도 보는 관점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말해주는 글이 아닌가 싶습니다. 사실 우리들은 자신의 관점만이 옳다고 주장할 때가 참으로 많습니다. 그러면서 자신의 관점과 다르게 말하고 있는 이들에게는 절대로 그렇지 않다고 힘주어 말합니다. 때로는 그 사람을 어떻게든 깔아뭉개는 극단적인 행동까지 하면서 말이지요. 하지만 그러한 모습은 자신을 오류의 구렁텅이로 스스로 빠트리는 것이 되고 말 것입니다. 코끼리의 어느 부분을 만지느냐에 따라서 서로 다른 모습을 이야기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의 삶은 코끼리의 모습보다도 더 크고 다양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에서도 이렇게 다양한 모습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바리사이들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법을 앞세워서 안식일에 밀 이삭을 뜯는 제자들을 고발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고발할 차원의 성격인가라고 생각하실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사람들이 하느님의 뜻대로 살 수 있도록 만든 율법을 자신의 뜻대로 확대 해석했던 것입니다. 즉, 밀 이삭을 뜯었다는 것은 추수라고 생각했던 것이고, 겨 안에 있는 밀을 먹기 위해서는 손으로 비벼야 하는데 이를 타작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따라서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될 일을 했다는 것이지요.

바로 이렇게 확대 해석하는 그들의 완고한 마음. 그래서 하느님의 아드님이신 예수님이 틀렸다고 말하는 바리사이들의 오류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의 우리들도 그러한 것이 아닐까요?

다른 사람들의 다양한 모습을 인정하지 못한다면, 또한 자신의 판단만 옳고 다른 사람들의 판단은 그르다고 말하는데 익숙하다면, 우리 역시 예수님을 단죄하는 큰 잘못을 범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인간의 부족함을 잊지 말았으면 합니다. 따라서 내가 판단하는 것이 언제나 참된 것만은 아님을 잊지 않았으면 합니다. 그때 우리들은 다양하게 다가오시는 주님을 느끼고, 그 주님과 언제나 함께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나만 옳다고 주장하지 맙시다.



길(신경림)


사람들은 자기들이 길을 만든 줄 알지만
길은 순순히 사람들의 뜻을 좇지 않는다

사람을 끌고 가다가 문득 벼랑 앞에 세워 낭패시키는가 하면
큰 물에 우정 허리를 동강내어
사람이 부득이 저를 버리게 만든다

사람들은 이것이 다 사람이 만든 길이
거꾸로 사람들한테 세상 사는
슬기를 가르치는 거라고 말한다

길이 사람을 밖으로 불러내어
온갖 사람살이를 구경시키는 것도
세상 사는 이치를 가르치기 위해서라고 말한다

그래서 길의 뜻이 거기 있는 줄로만 알지
길이 사람을 밖에서 안으로 끌고 들어가
스스로를 깊이 들여다보게 한다는 것은 모른다

길이 밖으로가 아니라 안으로 나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에게만 길은 고분고분해서
꽃으로 제 몸을 수놓아 향기를 더하기도 하고
그것을 알고 나서야 사람들은 비로소
자기들이 길을 만들었다고 말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