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ily/★ 빠다킹 신부님과 새벽을..

세례 받았을 때의 다짐을 다시금 떠올려 봅시다.

ohjulia 2007. 1. 8. 05:56
2007년 1월 8일 주님 세례 축일

제1독서
이사야 42,1-4.6-7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1 “여기에 나의 종이 있다. 그는 내가 붙들어 주는 이, 내가 선택한 이, 내 마음에 드는 이다. 내가 그에게 나의 영을 주었으니 그는 민족들에게 공정을 펴리라. 2 그는 외치지도 않고 목소리를 높이지도 않으며, 그 소리가 거리에서 들리게 하지도 않으리라. 3 그는 부러진 갈대를 꺾지 않고, 꺼져 가는 심지를 끄지 않으리라.
그는 성실하게 공정을 펴리라. 4 그는 지치지 않고 기가 꺾이는 일 없이 마침내 세상에 공정을 세우리니, 섬들도 그의 가르침을 고대하리라.
6 주님인 내가 의로움으로 너를 부르고 네 손을 붙잡아 주었다. 내가 너를 빚어 만들어 백성을 위한 계약이 되고 민족들의 빛이 되게 하였으니, 7 보지 못하는 눈을 뜨게 하고, 갇힌 이들을 감옥에서, 어둠 속에 앉아 있는 이들을 감방에서 풀어 주기 위함이다.”


복음 루카 3,15-16.21-22
그때에 15 백성은 기대에 차 있었으므로, 모두 마음속으로 요한이 메시아가 아닐까 하고 생각하였다. 16 그래서 요한은 모든 사람에게 말하였다. “나는 너희에게 물로 세례를 준다. 그러나 나보다 더 큰 능력을 지니신 분이 오신다. 나는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릴 자격조차 없다. 그분께서는 너희에게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실 것이다.”
21 온 백성이 세례를 받은 뒤에 예수님께서도 세례를 받으시고 기도를 하시는데, 하늘이 열리며 22 성령께서 비둘기 같은 형체로 그분 위에 내리시고, 하늘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




어떤 성당의 신부님께서 강론을 하다가 이런 질문을 던졌습니다.

“여러분 중에 미워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으신 분은 손들어 보세요.”

신자들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습니다. 신부님께서는 다시 힘주어서 질문을 던졌습니다.

“아무도 없나요? 만약 미워하는 사람이 정말로 있다면 손을 들어보세요.”

바로 그 순간, 어떤 할아버지께서 손을 번쩍 드시는 것입니다. 신부님께서는 미워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는 사람은 없다고 생각했지요. 그런데 그 할아버지께서 자신 있게 손을 드신 것입니다. 신부님은 감격스러워하며 말씀하셨어요.

“할아버지, 어떻게 하면 그렇게 될 수 있지요? 그 방법을 우리에게 말씀해주시겠어요?”

그러자 할아버지는 힘없는 목소리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응……. 있었는데……. 다 죽었어!”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미워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는 사람이 있을까요? 아마 성인 성녀가 아닌 다음이야 이렇게 미움을 하나 없이 살아간다는 것이 쉽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만약 정말로 그런 방법이 있다면, 앞선 할아버지처럼 미워했던 사람이 모두 하늘나라에 가는 경우가 아닐까 싶네요. 하지만 그렇게 미워하는 사람이 모두 사라진다고 한들 내가 행복할까요? 그래서 미움을 하나도 간직하고 있지 않은들 내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요?

나와 반대되는 사람만 사라지면 행복할 것 같습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아무런 무리 없이 편하게 살 것 같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그런 일은 절대로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내가 그 사람 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낮아지면 낮아질수록, 그 사람으로 인해서 내 자신이 더욱 더 성장하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들은 주님 세례 축일을 기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왜 세례를 받으실까요?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실 그분께서 왜 물로 세례를 받으셨을까요? 분명히 전지전능하신 하느님께서 왜 그런 모습을 보였을까요? 바로 그 대답을 세례 받은 후 하늘에서 들린 목소리를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

바로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해서 교만에 차서 사람들을 지배하는 모습이 아니라, 한없이 낮아져서 오히려 사람을 섬기려는 겸손함이 바로 하느님의 뜻이라는 것입니다.

지금 나는 얼마나 낮아지고 있을까요? 그래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용서하고 받아들이려고 노력하고 있을까요? 과연 지금의 내 모습이 주님께서 사랑하는 아들의 모습, 주님의 마음에 드는 아들의 모습일까요?


세례 받았을 때의 다짐을 다시금 떠올려 봅시다.



용서('좋은 생각' 중에서)


용서란, 누군가가 만든 잘못이나 상처를 묻어버리고 잊어버리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을 드러내 씨앗으로 삼고 새로운 이름의 꽃을 피우는 것입니다.

용서란, 그를 위해 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위해 희망의 씨앗을 삼는 것입니다.

나와 타인에 대한 용서가 없이는 한 발짝도 나갈 수 없습니다. 분노를 가지고는 아무 말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차가운 곳에서는 어떤 꽃도 피지 않습니다.

꽃은 따뜻함을 먹고 피고 우리는 용서의 눈물을 먹고 성숙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