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효경 신부(동항성당 주임)
마르코복음 5,1-20
오늘의 강론을 들으세요
“주님께서 너에게 해 주신 일과 자비를 베풀어 주신 일을 모두 알려라.”
한 주일을 시작하는 평화방송 애청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더러운 영이 들린 사람 을 고쳐주십니다.
더러운 영으로 말미암아 고생하는 사람을 그 영으로부터 구해 주셨다는 이야기입니다.
그 사람이 얼마나 괴로움에 시달렸는지를 오늘 복음은 그 가 무덤에서 살았다고
전해줍니다.
무덤은 산 사람이 사는 곳이 아닙니다.
사실 그의 삶은 살아있어도 산사람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를 지배하던 영의 이름은 ‘군대’였습니다.
군대로 번역된 로마시대의 레지온(Legion), 즉 군단은 그 수가 6,826명이었습니다.
그는 이렇게도 강력하고 많은 영들에게 지배를 당하고 있었기 때문에 밤낮으로
무덤과 산에서 소리를 지르고 돌로 제 몸을 치곤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이런 그를 쇠사슬과 족쇄로 묶어두려고 하는 악순환이
계속되었던 것입니다.
우리 주위에도 이런 사람이 있 다면, 더러운 영 때문에 고생하는 그 사람이나
그를 지켜보며 함께 살아야 하는 우리 모두에게 큰 고통이 아닐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기에 더러운 영으로 고생 하는 사람을 영으로부터 구해주셨다는 이야기는
본인에게나 함께 사는 사람들에게나 구원의 기쁜 소식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구원하심을 체 험한 주위 사람들은 구원보다는 자신의 인간적인
이익을 먼저 생각합니다.
한사람 의 구원을 위해서 무려 2,000마리나 되는 돼지의 손실을 입었기 때문입니다.
고마운 것은 고마운 것이지만 자신이 손해를 보았던 재산상의 불이익 때문에
구원자이신 예수님께 떠나달라고 말을 합니다.
오늘 복음말씀을 묵상하는 우리들에게는 이 해되지 않는 일처럼 보이는 일이지만
이것은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일입니다 .
군종신부, 교포사목, 해외선교 , 본당신부를 하면서 공통적으로 느낀 점을
조금 속된 표현으로 하자면 “남의 밥 그릇에 손대지 말자” 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재산상의 자그마한 손실에는 본당 신부도 하느님도 안 보이는 듯한 모습의
교우들을 많이 보아왔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경우 그에 따르는 처절한 보복이 교우들로부터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오늘복음의 이야기처럼 사람들이 예수님께 “저희 고장을 떠나 주십시오.”라고
공손하게 청한 것은 그들이 예수님의 크신 권능에 압도되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저 개인의 경험으로 보아서 봉변을 당하지 않은 것이 천만다행이라고 여겨집니다 .
그러나 마귀 들렸던 당사자는 틀립니다.
그는 예수님께 같이 있게 해 주십사고 청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말씀하십니다. “집으로 돌아가, 주님께서 너에게
해 주신 일과 자비를 베 풀어 주신 일을 모두에게 알려라.”고 말입니다.
그리고 오늘 복음은 이어서 그의 행적에 대해서 이야기해 주고 있습니다.
“그는 물러가, 예수님께서 자기에게 해 주신 모든 일을 데카폴리스 지방에 선포하기
시작하였다”라고 말입니다.
기쁜 소식의 선포는 제자들의 몫이지만 구원을 체험한 그 사람은 이미 그 몫을
함께 나누고 있다는 것입니다.
신앙은 주님의 은혜에 대한 체 험에서부터 시작합니다.
하느님 은혜에 대해서 감사하는 행위가 우리의 신앙생활이고 그 생활의 구체적인
지향점이 복음선포입니다.
더러운 악령들린 사람은 살아 있으나 산사람이 아닐 정도의 힘든 시련이 있었지만
주님의 구원하심으로 말미암 아 참된 신앙인으로 다시 태어났고 오히려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신앙의 모법이 되었습니다.
우리도 주님의 구원하심을 체험했다면 자신의 이익만을 따질 것이 아니라
주님의 구원하심을 선포하는 참된 복음 선포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