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Lord/† 聖人들의 삶을 통해서

성녀 히야친타 마리스코티 (1월 30일) 동정녀 , 3회원

ohjulia 2007. 1. 30. 13:34
 성녀 히야친타 마리스코티
 

    성녀 히야친타 마리스코티 (St.Hyacintha Mariscotti) 동정녀, 3회원

    성인의 활동지역 : 비테르보(Viterbo) 성인의 활동연도 : +1585-1640년 성인과 같은이름 : 마리스코티, 히야낀따, 히야친따, 히야킨따, 히야킨타 이탈리아 비테르보(Viterbo) 인근 비냐렐로(Vignarello)의 귀족 가문에서 태어난 성녀 히야친타 마리스코티는 비테르보의 작은 형제회 수도원에서 교육을 받고 그곳의 작은 형제회 율수 3회에 입회하였다. 이때 그녀는 히야친타라는 이름을 받고 서원하였다. 특히 그녀의 애덕은 수도원이란 한계를 뛰어넘을 만큼 위대하였다. 그녀는 병자와 노인, 가난한 이들에게 헌신적인 사랑을 보였다. 그녀는 55세 때에 운명하였다. 1807년 교황 비오 7세(Pius VII)에 의해 시성되었는데, 이때 시성 선언문에 이런 말이 나온다. “그녀의 고행은 자신의 삶 전체가 하나의 지속적인 기적임을 보여주고, 그녀의 사랑의 사도직은 수많은 설교보다도 영혼들을 하느님께 인도하는데 유익하였다.” (성바오로수도회홈에서) [변화] 우리가 원치 않는 일을 하도록 강요당할 때, 두 가지로 반응할 수 있다. 하나는 힘껏 저항해서 자신과 주위 사람들을 곤란하게 만드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일단 그것을 받아들인 후 최선의 상황으로 바꾸어 가는 것이다. 성녀 히야친타는 전자를 선택했다. 그는 막내 여동생이 자기보다 먼저 결혼한 것을 끝내 받아들이지 못했다. 보다 못한 가족들이 그를 프란치스코 수녀원에 강제로 입회시켰는데, 그는 그곳에서도 제멋대로 생활함으로써 주위 사람들에게 크나큰 어려움을 주었다. 그렇게 지낸 지 10년쯤 되던 해에 히야친타는 심각한 질병을 앓게 되었는데, 이를 계기로 자신의 모습을 되돌아보게 되었고, 그의 방법을 바꾸어 마침내는 자기 수련과 자선가의 모델이 되었다. 성녀 히야친타는 ‘아무리 늦어도 변화는 가능하다.’라는 것을 보여 주었다. 변화는 결코 쉽지 않다. 철저한 자기 성찰이 선행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영혼을 깊이 들여다보면 그 안에 이기심, 교만, 탐욕처럼 온갖 부정적인 것들이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그러나 그런 것들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가장하기보다는 억지로라도 그것들을 직시해야 한다. 자신의 어두운 면을 인정하는 것이야말로 변화의 첫 단계다. 성녀 히야친타처럼 그것을 직시하고 인정할 때, 우리의 어두운 내면에 진리와 희망, 그리고 사랑의 빛이 채워질 수 있다. 나는 변화를 두려워하는가? 변화하지 않고 이대로 산다면 어떻게 될까? 자신을 정직하게 성찰하자. (까리따스수녀회홈에서) 이탈리아 비테르보(Viterbo) 인근 비냐렐로(Vignarello)의 귀족 가문에서 태어난 성녀 히야친타 마리스코티(Hyacintha de Mariscottis)는 비테르보의 성 베르나르디누스 수녀원에서 교육을 받았고, 자신과 혼담이 오가던 한 후작이 그녀의 여동생과 결혼하게 된 사건으로 크게 충격을 받았다. 이를 계기로 성 베르나르디누스 수녀원에 입회한 그녀는 히야친타라는 수도명을 받았다. 그녀는 수도생활 초기 10여 년간 여전히 사치스럽고 개인적 생활로 수녀회에 나쁜 영향을 끼쳤다. 그러다가 어느 날 중병에 걸려 고해성사를 하면서 과거를 참회하고 진정한 수도자의 삶을 살게 되었다. 성녀 히야친타의 가장 큰 덕은 애덕으로 수도원이란 한계를 뛰어넘을 만큼 위대하였다. 그녀는 병자와 노인, 가난한 이들에게 헌신적인 사랑을 보였다. 비테르보 지역에 전염병이 돌았을 때 그녀는 병자 간호에 헌신하였고 두 개의 자선 단체도 설립하였다. 그러다가 1640년 1월 30일 비테르보에서 세상을 떠났다. 성녀 히야친타는 1726년 9월 1일 교황 베네딕투스 13세(Benedictus XIII)에 의해 시복되었고, 1807년 5월 24일 교황 비오 7세(Pius VII)에 의해 시성되었다. 이때 시성 선언문에 이런 말이 나온다. “그녀의 고행은 자신의 삶 전체가 하나의 지속적인 기적임을 보여주었고, 그녀의 사랑의 사도직은 수많은 설교보다도 영혼들을 하느님께 인도하는데 유익하였다.” (가톨릭홈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