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Lord/† 聖人들의 삶을 통해서

성 폴리카르포 (2월 23일) 요한의 제자, 주교, 순교자

ohjulia 2007. 2. 23. 07:00
 성 폴리카르포
 

    성 폴리카르포 (Saint Polycarp)

    요한의 제자, 주교, 순교자

    성인의 활동지역 : 스미르나(Smyrna) 성인의 활동연도 : 69-155년경 성인과 같은이름 : 뽈리까르뽀, 뽈리까르뿌스, 폴리까르뽀, 폴리까르뿌스,
    폴리카르푸스 사도 성요한의 제자였던 성 폴리카르포는 스미르나 교회의 주교로서 정통교리의 열렬한 수호자로, 또한 마르치온과 발렌티니아노 이단의 격렬한 반대자로 손꼽히는 인물이다. 그는 자신의 편지인 필립비인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마르치온을 "사탄의 맏이" 라고 부르며 그의 거짓 가르침을 반대하도록 역설하였다. 그후 그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의 박해를 피하지 못해 체포되어 로마로 이송된 후에 처형되었다. 그는 2세기 크리스찬의 뛰어난 저술가들 사이를 이어주는 중요한 고리 역할을 했고, 순교를 적극적으로 수용하여 했던 정열적인 신앙인으로 기억된다. 스미르나 교회의 이름으로 기록된 "폴리카르포의 순교" 는 목격증인의 글로서 매우 귀중한 자료로 평가받는다. (성바오로딸수도회홈에서) 스미르나(오늘날 터키의 아지미르)의 주교인 폴리카르포는 사도 요한의 제자이며 안티오키아의 이냐시오와는 친구로서 2세기 전반기 동안 그리스도 교회의
    존경받는 지도자였다. 성이냐시오는 순교하러 로마에 가는 도중에 스미르나의 폴리카르포를 방문했으며, 나중에 트로아스에서도 만났고 개인적인 편지도 썼다. 소아시아의 교회들은 폴리카르포의 영도력을 인정하고 초대교회의 문제인
    부활 축일의 날짜를 논의하기 위해 교황 아니체토에게 파견하는 대표로 그를
    선출하기도 했다. 폴리카르포가 쓴 많은 편지들 가운데 필립비인들(마케도니아의 필립비교회)에게
    보낸 편지 한 통만이 보존되어 있다. 폴리카르포는 86세에 스미르나의 경기장에 모인 군중들 앞에 끌려 나와 산 채로 화형당하였다. 폴리카르포의 순교 행적은 아주 일찍부터 잘 보존되어 있었으므로 그리스도인다운 순교자적 죽음을 잘 알 수 있게 해주었다. 폴리카르포는 소아시아의 모든 그리스도인들로부터 그들의 지도자로 인정되었다.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그의 깊은 신앙심과 충성심은 두드러졌다. 그의 강한 힘 그 자체는 하느님께 대한 그의 신뢰에 있었는데 때로는 이 신뢰에 반대되는 것 같은 상황도 있었다. 이방인들 사이에서도, 새로운 종교를 적들로 여기는 정권 밑에서도 그는 자기 양떼를 돌보고 인도했다. 그는 착한 목자처럼 자기 양떼를 위하여 자신의 목숨을 바쳤으며, 스미르나의 가혹한 박해에서 그들을 보호했다. 그는 죽기 전에 하느님께 대한 자신의 신뢰를 이렇게 요약했다. "하느님 아버지.나로 하여금 하루, 한 시간을 가치 있는 존재로 만들어 주셨으니 당신을 찬미하나이다."(순교록,14장) "그러므로 이러한 행동을 굳게 지키고 주님의 표양을 따르시오,'신앙으로 견고하여져 흔들리지 말 것이며 형제애로써 서로서로 사랑하고 진리 안에 일치하는 것입니다.’주님의 온유하심에 따라 서로 서로 도와 주며 아무도 경멸하지 마시오." -폴리카르포’필립비인들에게 보낸 편지’10장 (성바오로수도회홈에서) 불에 가까울수록 그 열도 심하다. 그렇게 생각하면 불과 같은 신앙을 가지 사도들의 제자들이 다른 사람들보다 열렬한 신앙을 가지고 있다는 것도 기이한 일이 아니다. 앞에서 말한 성 바오로의 애제자인, 성 디모테오도 그 한 예이지만, 이제 말하려고 하는 성 폴리카르포도 똑같이 주님의 가장 사랑을 받던 성 요한 사도의 제자로 은사의 이름은 부끄럽게 하지 않은 신앙의 용사였다. 성 폴리카르포의 출생이나 그의 소년 시절에 대해서는 전해지지 않고 다만 전해 내려오는 것은 그가 사도 성 요한의 축복을 받고 스미르나의 주교로 임명된 후부터이다. 그 후의 감탄할 만한 그의 언행에 대해서는 그의 제자인 성 이레네오의 말씀 중에도, 또 그의 친구며 107년에 순교한 안티오키아의 주교 성 이냐시오가 죽기 직전 그에게 보내어 그의 완덕을 칭찬한 이별의 편지에도, 또한 스미르나에 있어서의 그리스도교 신자의 순교록에도 상당히 자세하게 기재되어 있다. 후에 리용의 주교가 된 성 이레네오가 저술한 은사추상기(恩師追想記)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나는 소년 시절, 소아시아에 있으면서 가끔 성 폴리카르포 선생의 슬하에서 배운 일이 있다. 나는 지금도 선생께서 앉아 계시던 곳, 그 가르치는 모습이나 가르치는 말씀, 그 걸어다니던 모습이나 용모 등이 뚜렷이 상기(想起)된다. 그리고 선생께서 성 요한과 기타 주님을 친히 뵌 이들과 교제하던 말씀이나, 주님에 대해서와 주님의 성덕, 그의 가르치심에 대해 그러한 사람들한테 전해 들은 이야기 등은 아직 나의 귀에 여전히 남아 있다..." 서산에 넘어가려고 하는 태양을 한 번 더 밝게 세상을 비추고 그 여광(餘光)으로 만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것과 같이, 성 폴리카르포는 순교를 당하는 날 자기 덕행을 발해 모든 사람들에게 깊은 감명을 주었다. 네로 황제나 도미시아노 황제 시대에 로마 제국에는 그리스도교에 대한 증오감으로 가득 찼었고, 특히 소아시아의 백성들은 마치 악마에 붙잡힌 사람처럼 정신없이 신자를 박해, 압박하며 많은 생명을 빼앗았을 뿐 아니라, 156년 2월말 스미르나에서도 12명의 신자가 체포되어 그 중에 한 사람의 배교자를 제외하고는 모두 맹수에게 잡아 먹혀 순교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흥분된 군중들은 그러한 희생을 보고도 만족치 않고, "폴리카르포도 같이 죽여라"하고 이구동성으로 절규하자 백성의 마음을 가장 두려워했던 법관 니게다스와 그의 아들 헤로데는 즉시 수명의 병사들을 보내어 성 폴리카르포를 끌어오도록 했다. 미리부터 이런 일이 있을 것을 각오하고 있던 성 폴리카르포는 조금도 놀라는 기색이 없이 과일까지 대접한 다음, 순교할 준비로 잠깐 기도가 하고 싶으니 여유를 달라고 청했다. 그 침착한 태도와 온화하고 예의 바르고 여유있는 행동거지에 감탄한 병사들의
    대장인 백부장은 기꺼이 그의 청을 수락한 후, 성인의 기도를 올리는 그 존엄한
    용모를 보고서는 ’이사람이야말로 참으로 신과 같은 사람’이라며 다시 감동되어,
    결국 특별한 조치로 그의 체포를 다음날 아침까지 연기한다는 것을 통보해 왔다. 성인은 대단히 감사하며 그 날 밤을 하느님께 최후의 헌신을 맹세하며 지냈다. 이튿날 아침 약속한 대로 병사가 와서 그를 철사로 결박해 끌고 가는 도중,
    재판관 니게다스와 헤로데는 일부러 마중 나와 마차에 같이 탔다. 그것은 동정심으로써가 아니라 도리어 성인을 감동케 해 신앙을 버리게 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아무리 달래고 위협해도 효과가 없자, 그들은 본심을 드러내 무참하게도 마차 위에서 노(老)성인을 차버리고, 그가 부상을 당했어도 아무것도 느끼는 바가 없었다. 원형극장에 도착하자 재판관은 군중 앞에서 장엄하게 "예수 그리스도를 저주하고 신성한 황제 폐하를 조배하라! 그렇게 하면 석방해 줄것이다."하고 폴리카르포에게 명했다. 성인은 이것을 듣고 용모를 단정히 하고 나서, "나는 오늘까지 80여년간 예수 그리스도를 공경해 왔습니다만, 주님께서는 무엇하나 나에게 불의를 가르치신 일이 없고, 도리어 많은 은혜를 내려주셨습니다. 이와 같은 대 은인이신 주님을 어떻게 저주할 수가 있겠습니까!"하고 용감하게 대답했다. 재판관은 더 거친 말로써 "황제 폐하를 조배하라"고 강요했지만, 성스러운 노인은 조금도 겁내지 않고 "나는 그리스도교 신자입니다. 원컨대 잠시 여유를 주시어, 내가 말하는 그리스도교의 신조를 한 번 들어보시오’ 하며 교리의 설명을 시작하자, 법관은 "그러한 것은 백성에게 들려주는 것이 좋을 것이다. 나에게는 필요없는 일이다"했다. 폴리카르포는 "아니오, 이와 같이 정당한 길은 당신과 같은 자일수록 필요합니다. 그것은 당신이 사람들보다 높은 권리를 하느님께 받은 이상, 그 권리에 적합한 존경과 복족을 사람들에게 받으려면 우선 자기를 올바르게 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입니다"하고 대답했다. 재판관은 대단히 분노하여 "명령에 복종하지 않으면 형벌을 가해 사형에 처할 것이다"하며 위협했지만 폴리카르포는 조금도 겁내지 않고 다만 하늘을 쳐다보며 묵묵히 기도에 몰두할 뿐이었다. 그 후 한 관리가 원형극장에 나타나서 "폴리카르포는 그리스도교 신자라는 것을 자백한 이유로 화형에 처한다"고 세번이나 선고문을 소리 높이 읽었다. 군중은 마치 기다리기라도 한 것 처엄 금방 주위에서 장작을 날라다 산더미처럼 쌓아 놓았다. 성 폴리카르포의 순교록에 의하면 당일은 마침 안식일이었으므로 유다교의 율법에는 그 날은 육체적 노동이 절대 금지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유다인들이 그 군중 속에 섞여 요란스러이 장작을 운반했다고 한다. 이것을 보더라도 그들이 얼마나 그리스도의 제자를 미워했는가를 알 수 있다. 불을 지를 장작더미가 모두 마련되자, 폴리카르포는 서서히 의복을 벗고 스스로 그 위에 올라갔다. 병사들은 그가 도망갈까봐 장작더미 가운데 세워진 나무에 그의 몸을 못박으려고 하자 성인은 "아무쪼록 이대로 내버려 주시오. 비록 기둥에 못박지 않는다 하더라도 결코 도망가거나 숨지 않습니다. 화형(火刑)이라는 반가운 순교의 은혜를 주신 하느님께서는 반드시 이 고통을 참을 수 있는 힘까지 주실 것입니다.’하며 간청 했으나 병사들은 아직도 의심하며 그를 기둥에 결박했다. 불은 거세게 타올랐다. 무럭무럭 올라가는 검은 연기, 훨훨 붙은 불꽃의 소리를 들으면서 폴리카르포는 열심히 기도했다. "전능하신 하느님, 사랑하고 찬미하올 성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자신을 계시 (啓示)하신 성부여, 나로 하여금 순교자의 반열에 들게 하시고, 성자의 수난의 잔을 같이 할 수 있는 영광스러운 이 날, 이때를 주신 것에 감사드리며 진심으로 당신을 찬미합니다." 이미 몸과 마음을 주님의 품에 모두 의탁한 그의 마음은 평안했다. 그러나 관중은 갑자기 경탄의 소리를 질렀다. 화염(火焰)이 성인의 몸을 피해 좌우로 갈라져, 오히려 후광(後光)과 같이
    아름답게 그의 몸을 장식했기 때문이다. 이것이 기적이 아니고 무엇이랴! 뜻밖의 사실에 놀란 니게다스는 당황하며 병졸 하나에게 명해 창으로 그의 가슴을 찌르게 하자 폴리카르포도 마침내 영혼을 하느님께 바쳤다. 그의 가슴속에서 피가 나오자 그렇게도 치열하게 붙고 있던 화염도 마치 큰 비를 맞은 듯 꺼져 버렸다. 이것 또한 기적이 아니고 무엇이랴! 신자들이 이 위대한 성인의 유해를 찾으려고 했으나, 유다인들은 니게다스를 통해 총독에게’그리스도교의 신자들이 폴리카르포를 제2의 그리스도로 공경하지 않기 위해 시체를 태워버려 주시오"라고 의뢰했으므로 총독은 한 번 더 이 순교자의 시체를 장작더미 위에 놓고 태워버리게 했다. 그러나 신자들은 끝까지 고생하며 그의 유골을 모아 교회에 보존해 오늘에 이른다. 그의 순교록의 끝장에는 다음과 같은 찬사가 기록되어 있다. "성 폴리카르포의 순교는 실로 이와 같았다. 그는 스미르나에서 필라델피아까지의 순교자 중 12명 째인데,누구보다도 훌륭한 명예를 획득해, 사방 이교인들 사이에까지 그의 이름이 알려지게 되었다. 그는 우수한 교사였을 뿐 아니라 만인에게 모범이 된 위대한 순교자였다. 그는 고통을 감수 인내해 재판관을 이기고 멸의 화관을 획득해, 지금은 사도들과 모든 성인들과 더불어 하느님을 찬미하고, 전능하신 성부의 영광을 노래하며 우리 영혼의 구세주이시고 지도자 이시며 전 세계 교회의 목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찬미하고있다." (대구대교구홈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