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좌우 1.5의 남부럽지 않은 시력을 가지고 있었다. 운전을 할 때 아무도 보지 못한 표지판을 제일 먼저 발견해 읽고 안내 해주면 동승한 이들이 감탄사를 내뱉곤 했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신문의 글씨들이 잘 보이지 않고 깨알 같은 글씨들을 읽으려 고개를 숙여보면 눈이 침침한 것이 이상하였다.
시력이 나빠졌다고 생각하고 안과를 찾아 진단을 받았으나 시력은 여전히 1.5였다.
안심이 되었지만 안과를 나와 근처에 있는 안경점에서 돋보기안경 하나를 구입했다.
글을 읽을 때만 사용할 요량으로 그냥 책상 위에 올려두었다. 며칠 후 컴퓨터로 문서를 검토할 일이 생겨 무심결에 옆에 둔 돋보기안경을 집어 썼다.
조그마한 안경 알 너머로 보이는 세상이 정말 선명했다. 처음 와 본 사람처럼 방 안 이곳저곳을 두리번거리다가 안방으로 갔다.
침대에 누워 곤하게 잠자고 있는 아내 곁으로 다가가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평소에 보이지 않았던 점이 왜 이리 많고 대낮에도 안보이던 흰머리는 언제 이렇게 늘어났는지 마음 한켠이 아렸다.
그래서 나이가 들면 자기 얼굴, 배우자 얼굴의 주름을 보지 말라고 눈도 어두워지는 것일까? 참 고마운 섭리다.
조심스레 방을 나와 이불을 다 걷어차고 잠들어 있는 아들의 방으로 가 사랑스럽게 잠든 아들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오래전에 없어진 줄 만 알았던 솜털이 아직도 얼굴에 보송보송하다. 오동통하게 살이 오른 두 뺨에 눈물 젖은 입맞춤을 해보았다.
그 언젠가 눈이 어두워진 어머니가 싸주신 머리카락이 섞인 도시락을 그리워하던 어떤 효자의 글을 읽으며 흘렸던 굵은 눈물이 아들의 두 뺨 위로 뚝뚝 떨어졌다.
- 방 정 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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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만 관심을 기울이면 가족의 소중함이 보입니다. 슬픔도, 기쁨도, 감동도, 애달픔도... 선명하고 또렷하게 보입니다.
- 마음의 돋보기로 보면 소중함이 보여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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