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ily/★ 빠다킹 신부님과 새벽을..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라는 말씀을 기억하면서, 얼마나 내

ohjulia 2008. 6. 11. 11:25
2008년 6월 11일 성 바르나바 사도 기념일

제1독서 사도행전 11,21ㄴ-26; 13,1-3

그 무렵 21 많은 수의 사람이 믿고 주님께 돌아섰다. 22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는 그들에 대한 소문을 듣고, 바르나바를 안티오키아로 가라고 보냈다. 23 그곳에 도착한 바르나바는 하느님의 은총이 내린 것을 보고 기뻐하며, 모두 굳센 마음으로 주님께 계속 충실하라고 격려하였다. 24 사실 바르나바는 착한 사람이며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었다. 그리하여 수많은 사람이 주님께 인도되었다.
25 그 뒤에 바르나바는 사울을 찾으려고 타르수스로 가서, 26 그를 만나 안티오키아로 데려왔다. 그들은 만 일 년 동안 그곳 교회 신자들을 만나며 수많은 사람을 가르쳤다. 이 안티오키아에서 제자들이 처음으로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13,1 안티오키아 교회에는 예언자들과 교사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바르나바, 니게르라고 하는 시메온, 키레네 사람 루키오스, 헤로데 영주의 어린 시절 친구 마나엔, 그리고 사울이었다.
2 그들이 주님께 예배를 드리며 단식하고 있을 때에 성령께서 이르셨다. “내가 일을 맡기려고 바르나바와 사울을 불렀으니, 나를 위하여 그 일을 하게 그 사람들을 따로 세워라.” 3 그래서 그들은 단식하며 기도한 뒤 그 두 사람에게 안수하고 나서 떠나보냈다.



복음 마태오 10,7-13

그때에 예수님께서 사도들에게 말씀하셨다.
7 “가서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하고 선포하여라. 8 앓는 이들을 고쳐 주고, 죽은 이들을 일으켜 주어라. 나병 환자들을 깨끗하게 해 주고, 마귀들을 쫓아내어라.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9 전대에 금도 은도 구리 돈도 지니지 마라. 10 여행 보따리도 여벌 옷도 신발도 지팡이도 지니지 마라. 일꾼이 자기 먹을 것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 11 어떤 고을이나 마을에 들어가거든, 그곳에서 마땅한 사람을 찾아내어 떠날 때까지 거기에 머물러라.
12 집에 들어가면 그 집에 평화를 빈다고 인사하여라. 13 그 집이 평화를 누리기에 마땅하면 너희의 평화가 그 집에 내리고, 마땅하지 않으면 그 평화가 너희에게 돌아올 것이다.”




저는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라는 제목을 가지고 있는 E-Mail을 하루에 3천통 이상 발송합니다. 또한 이 글이 인터넷 안에 이곳저곳으로 퍼져서 제가 운영하는 카페에 와서 직접 보는 사람이 500여명, 기타 다른 사이트를 통해서 보시는 분이 천여 명. 이렇게 계산하면 제 글을 보시는 분은 하루 평균 3~4천명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런데 너무나도 감사한 것은 이 중에서 제 글에 대해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분이 없다는 것입니다. 한 단어의 잘못된 선택을 가지고서도 엄청난 반응을 보이는 인터넷 세계를 떠올린다면 저에 대한 평가는 너무나도 좋은 평가라는 것이지요.

그런데 얼마 전, 어떤 분으로부터 부정적인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글쎄 저보고 ‘빨갱이’라는 것입니다. 저의 어떤 글을 보고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너무나 기분이 안 좋았습니다. 내가 이 글을 괜히 쓰는가 싶기도 하고, 때로는 글 쓰는 것이 귀찮게도 느끼는데 이제부터 아예 접을까 라는 생각도 들었지요. 하지만 곧 저에 대한 좋은 평가가 떠올려지더군요. 많은 이들이 저에 대하여 좋은 평가를 해주고 계시는데, 딱 한 명의 부정적 평가만을 머릿속에 담고 있었던 것입니다.

누군가의 부정적 평가에 대해서 무시하고 그냥 흘려버려서도 안 되겠지만, 그렇다고 여기에 온 신경을 씀으로 인해 해야 할 일을 하지 않는 한심한 모습을 간직해서는 안 됩니다. 사실 주님께서는 우리들에게 이미 많은 능력을 주셨지요. 그러나 부정적인 마음으로 인해서 그 능력을 이 세상에서 발휘하지 못한다면, 그것 또한 주님의 뜻에 맞게 살아가는 것이 아닐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사도들을 세상에 파견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시지요.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분명히 내가 가진 모든 것은 주님으로부터 거저 받은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거저 받은 것이니, 세상에 거저 줄 수 있는 넓은 마음이 필요한 것입니다. 하지만 왜 이렇게 욕심이 나는지요. 또한 왜 이렇게 착각 속에 빠져서 내가 잘 나서 그런 것처럼 생각하는지요. 그러다보니 다른 이들의 작은 평가 하나에도 복잡한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 아닐까요?

생각의 전환이 필요할 때입니다. 내가 받은 모든 것은 주님으로부터 거저 받은 것이기에, 주님 뜻에 맞게 거저 줄 수 있어야 한다는 것. 이 사실만 기억하고 있다면 우리들은 다른 이들의 평가에도 흔들리지 않을 수 있으며, 내 안에 있는 쓸데없는 욕심들도 하나씩 내려놓을 수가 있을 것입니다.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라는 말씀을 기억하면서, 얼마나 내 이웃에게 거저 주고 있는지를 묵상해보세요.



상처 주지 않고 사랑하기(이철환, ‘연탄길’ 중에서)

음식점 출입문이 열리더니 여자 아이가 동생들을 데리고 들어왔다. 영철이 주문을 받기 위해 아이들 쪽으로 갔을 때 큰아이가 말했다. “자장면 두 개 주세요.” “언니는 왜 안 먹어?” “응, 점심 먹은 게 체했나 봐.” “언니... 우리도 엄마아빠가 있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저렇게 같이 저녁도 먹구.”

그때 영선이 주방에서 급히 나왔다. “너 혹시 인혜 아니니?” “네, 그런데 누구세요?” “엄마 친구 영선이 아줌마야. 한동네에 살았었는데, 네가 어릴 때라 기억이 안 나는 모양이구나.” 영선은 아이들의 얼굴을 어루만지며 말했다. “인정이도 많이 컸구나.” 그제야 아이들 얼굴에 환한 미소가 번졌다.

영선은 서둘러 주방으로 들어가 자장면 세 그릇과 탕수육 한 접시를 내왔다. “안녕히 계세요.” “그래, 잘 가라. 차 조심하고... 자장면 먹고 싶으면 언제든지 와, 알았지?” “네...” 어두운 길을 총총히 걸어가는 아이들의 뒷모습이 처마 끝에 매달려 제 키를 키워 가는 고드름처럼 힘겨워 보였다.

영철이 물었다. “누구네 애들이지?” “사실은, 모르는 애들이에요. 무턱대로 음식을 그냥 주면 아이들이 상처받을지도 모르잖아요. 엄마 친구라고 하면 아이들이 또 올 수도 있고 해서...” “그런데 아이들 이름은 어떻게 알았어?” “아이들이 말하는 걸 들었어요. 자기는 먹고 싶어도 참으면서 동생들만 시켜 주는 모습이 어찌나 안돼 보이던지...” 영선의 눈에 맺힌 눈물은 금방이라도 흘러내릴 것만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