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ily/☆ 류 해욱신부님의 향기

사랑에는 경계가 없다.

ohjulia 2008. 8. 9. 07:13
사랑에는 경계가 없다.



  벤슨 선생님은 이 지구별을 걸었던 가장 친절하고, 상냥하고 아름다운 여성이었다.

나의 초등학교 담임선생님이었다. 나는 내가 어른이 되면 선생님과 결혼하겠다고 생각했다.

물론 선생님이 나를 기다려 준다면 말이다. 나는 아침 내내 내 손이 올라가는 것을 자제하느라고

몸부림치면서 앉아 있었다. 나는 수업이 끝나서 교실을 떠나 선생님을 볼 수 없는 순간이

다가오면 안타까운 마음을 주체하기 힘들었다.

  벤슨 선생님이 칠판을 지우거나, 지우개를 밖에 나가서 털고 오거나, 과제물을 나누어 주거나

걷어서 선생님의 넓은 책상으로 가져올 자원자를 찾으실 때, 나는 언제나 가장 먼저 손을

들었다. 내가 선택이 되면 그 때가 내게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다. 그렇게 할 때, 다른 급우들을

제치고 내가 선생님께 가장 가까이 다가갈 수 있기 때문이었다. 나는 시간을 오래 끌기 위해서

몇 번이고 다시 정리를 한 후에 그 과제물들을 선생님의 책상으로 가져갔다.

  새 학기가 시작되면서 나는 어머니가 점심 도시락을 더 많이 싸주시도록 평소에 식사량을

늘려 놓았다. 나는 계속 어머니에게 사과나 복숭아나 자두 등을 더 많이 싸달라고 졸랐다.

한 개는 선생님을 위해서 가지고 간다고 말할 용기는 없었다. 선생님에게 직접 과일을 전해

드릴 용기도 없었다. 나는 수업이 시작되기 전에 몇 번이고 닦아서 반들반들하게 윤이 나는

사과나 다른 맛있는 과일들을 아무도 모르게 선생님의 책상 구석에 놓았다.

다른 아이들에게 들키지 않게 하기 위해서 매일 아침, 일찍 등교했다.

벤슨 선생님의 반응은 항상 똑같았다. 선생님은 교실에 들어오셔서 선생님의 책상 앞에

앉으셨다.

  “애들아, 안녕?”

  “안녕하세요? 선생님.”

  선생님은 그날 내가 몰래 책상 구석에 놓아둔 과일이나 다른 선물을 집어 들고 교실을 둘러

보셨다.

  “아, 아주 맛있게 생겼다! 아주 사려 깊은 아이가 이것을 가져다 놓았구나.

이것 가져온 아이가 누군지 손들어 볼래?”

  손을 드는 아이는 아무도 없었다. 물론 나도 가만히 있었다.

고개를 아래로 향하고 내 책상만 바라보았다.

  선생님은 확신에 가득 찬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누군가 나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음에 틀림없다. 그런데 그게 누굴까?”

  나도 모르게 얼굴이 붉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모두가 나를 빤히 쳐다보는 것 같았다.

선생님이 그 과일을 책상 서랍 속에 넣고 수업을 시작해서야 드디어 안도의 숨을 쉬곤 했다.

  나는 항상 선생님께 문제를 일으키곤 했다. 그것이 세상에서 내가 가장 원하지 않는 것인데도

불구하고 늘 일은 그렇게 꼬였다. 나는 수업에 주의를 집중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내 생각에 몰입하여 수업 시간 중 대부분의 시간을 창문 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우리, 즉, 나와 선생님이 숲 속에 서 있었다. 내 팔은 선생님의 허리를 껴안고 있었다.

갑자기 정글에서 육중한 코끼리 한 마리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달려들었다.

코끼리의 작고 붉은 눈은 심술궂게 번득이면서 우리를 노려봤다. 마치 고속 열차처럼 빠르게

우리를 향해 돌진했다. 나는 침착하게 코끼리를 잡는 장총을 조준하여 급소인 눈 사이의 미간을

정통으로 맞추었다. 코끼리는 우리 앞에 쓰러졌다. 무릎이 꺾이고 천천히 옆으로 누웠다.

힘없이 꺾인 코끼리 다리 하나가 벤슨 선생님의 깨끗한 구두 끝에 걸쳐졌다.

  선생님은 그 사랑스러운 팔로 나를 으스러지게 끌어안았다.

  “폴, 너는 나의 영웅이야. 네가 내 물고기를 구해 주었구나!”

  나는 내 영웅이 내 책상 옆으로 다가와서 내 어깨를 칠 때, 꿈에서 깨어났다.

  “폴, 내가 물고기 철자가 어떻게 되느냐고 물었지? 차라리 꿈의 철자가 어떻게 되느냐고

물어야 할 걸 그랬구나!”

  모든 아이들이 킥킥거리고 웃었다. 나는 부끄러움으로 얼굴이 빨개졌다. 방과 후 나는 학교에

남아서 선생님이 칠판에 쓰셨던 문장을 25 번이나 써서 내야 했다. 그 문장은 ‘저는 백일몽을

꾸지 않겠습니다.’ 였다.

  그 벌은 차라리 내게 순전한 기쁨이 되었다. 우리 둘만 교실에 남아 있으니까 말이다.

벤슨 선생님은 당신의 책상에서 바쁘게 일을 하시고 나는 되도록 천천히 벌로 받은 그 문장을

썼다. 

 

  어느 가을 날 우리 학급은 흥분으로 들끓었다. 누군가가 다음 날이 선생님의 생신이라는 것을

알아냈기 때문이다. 모두가 선생님께 선물 드리기를 원했다.

내 가슴은 기쁨으로 터질 것 같았다. 적어도 이번에는 공개적으로 선생님께 선물을 드릴 수

었기 때문이다. 그날 오후 나는 산으로 들로 다니면서 야생화를 꺾어서 멋진 꽃다발을

만들려고 했다. 그런데 공교롭게 꽃이 피는 시기가 아니었다. 그러나 나는 덤불 속에서 여러

가지 야생 열매들과 마른 엉겅퀴의 관모 등을 발견했고, 멋있게 생긴 붉은 잎사귀도 찾았다.

나는 이것들을 엮어서 야생 식물로 된 월계관 모습의 다발을 만들었다.

  아침에 급우들이 줄을 서서 선생님께 선물을 드릴 때, 나는 맨 뒷줄에 섰다.

마침내 나는 앞으로 나가서 선생님께 그 야생 식물 다발을 드렸다.

선생님은 그 다발을 받으시더니 탄성을 지르시고, 한참 동안이나 뺨에 대고 계시다가 머리에

쓰셨다. 미소를 지으시고 머리에 쓰시는 것으로 나는 큰 상을 받은 기분이었다.

더 큰 상은 벤슨 선생님이 화병에 그 다발을 꽂으시는 동안 내가 화병을 받쳐 들고 있도록

해 주신 것이었다. 그날은 금요일이었다. 오후가 되자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애들아, 오늘 선생님은 너희들에게 아주 좋은 선물을 많이 받았다. 그러니 우리 함께 파티를

열기로 하자.”

  교과서는 옆으로 치우고 모두 선생님의 이야기에 빠져 들었다. 조금 지나자 관리 아저씨가

교실에 들어오더니 커다란 종이봉투와 상자를 선생님께 드리고 갔다. 선생님은 우리를

바라보시면 미소를 지으셨다.

  “내가 존슨 씨에게 과자와 아이스크림을 사다 달라고 부탁했단다. 누가 나를 도와서 이것을

나누어 주겠니?”

  나는 선생님의 말씀이 채 끝나기도 전에 손을 번쩍 들고, 파도치듯이 흔들어 댔다.

  “좋아. 폴. 나오너라. 나는 과자 접시를 돌릴 테니 너는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나누어

주려무나.”

  그날 오후는 너무 빨리 지나갔다. 결국 우리는 수업이 모두 끝나는 종소리를 듣고 가방을

챙겼다.

  그 다음 주 월요일에 벤슨 선생님이 결근을 하셨다. 그래서 다른 선생님이 대리로 들어오셨다.

오전이 거의 반이 지날 무렵, 나는 교장실로 오라는 호출을 받았다. 내가 교장실에 불려갔을 때,

어머니가 교장 선생님 앞 의자에 앉아 계셔서 나는 무척 놀랐다.

  내가 교장실에 들어가자, 교장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폴아, 앉아라.”

  탁자 위에는 내가 만든 야생 식물 다발이 놓여 있었다. 교장 선생님은 탁자를 향해 손을 흔들며

말씀하셨다.

  “이것이 벤슨 선생님께 네가 드린 다발이냐?”

  “예, 교장 선생님.”

  “네가 신중하게 생각하고 그 다발을 드렸냐?”

  내가 대답했다.

  “예, 그렇습니다. 선생님.”

  교장 선생님은 눈 꼬리를 치켜들었다.

  “네가 이 잎을 따서 고의로 선생님께 드렸단 말이지?”

  “저는 그것을 선생님의 생신 선물로 드렸습니다.”

  교장 선생님이 물었다.

  “너, 선생님이 오늘 어디에 계시는지 아느냐?”

  내가 대답했다.

  “모릅니다. 오늘 학교에 나오시지 않은 것만 압니다.”

  교장 선생님은 아주 천천히 분명하게 말씀하셨다.

  “벤슨 선생님은 병원에 계시고, 바로 너 때문이다.”

  나는 충격을 받았다.

  “네가 선생님께 무엇을 드렸는지 아느냐?”

  내가 고개를 끄떡이면서 대답했다.

  “머루, 달래, 등의 야생 열매들과 엉겅퀴 관모와 그리고 예쁜 빨간 색 잎 등입니다.”

  “저 빨간 색 잎이 바로 독이 들어 있는 담쟁이다.”

  그의 목소리는 매우 격앙되어 있고, 단단히 화가 나 있었다.

  “너는 그 담쟁이 잎을 뜯고 어떻게 아프지 않느냐? 장갑을 끼었었니?”

  나는 고개를 가로로 저었다.

  “저는 그냥 뜯었어요. 장갑 같은 것 끼지 않았는데요. 저는 그것이 독이 있는 식물인지

몰랐어요.”

  그가 말했다.

  “네가 머루, 달래 등의 야생 열매 이름과 엉겅퀴 관모까지 알면서 독이 있는 담쟁이를

몰랐다고 주장하면 내가 믿을 것 같으냐?”

  “저는 야생 열매들은 잘 따 먹거든요. 그런 것은 잘 알아요. 그러나 저는 독이 있는 담쟁이는

무엇인지 정말 몰랐어요.”

  교장 선생님은 자리에서 일어서시더니 선언하셨다.

  “나는 너에게 10일 동안 정학처분을 내린다. 그 후에 어떻게 되는지는 다시 학교에 돌아온

후에 네가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달려 있다.”

  교장 선생님은 어머니께로 향해 말씀하셨다.

  “빌리야드 부인, 폴을 데리고 지금 당장 집으로 돌아가세요.”

  나는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훌쩍거렸다. 내가 학교에서 정학을 받았기 때문이 아니라

내가 사랑하는 선생님께 비극을 안겨 드렸기 때문이었다. 어머니는 이 일에 대해 아무런 말씀이

없으셨다. 나는 벤슨 선생님에 대한 걱정과 내가 학교에 돌아 간 후에 일어날 일에 대한

생각 때문에 그날 밤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다음 날 나는 아무런 할 일이 없이 뒷마당을 어슬렁거렸다. 점심을 먹은 후에 나는 숲 속으로

들어가서 독이 있는 담쟁이 잎을 조금 따다가 어머니께 보여 드렸다.

  “엄마, 봐. 나는 선생님을 아프게 할 생각이 아니었다고요.

내가 장갑 같은 것 끼지 않았잖아요.”

  어머니는 담쟁이 잎들을 바라보시더니 말씀하셨다.

  “얘야, 그것을 쓰레기통에 버려라. 그리고 가서 손을 아주 잘 씻어라. 비누칠을 아주 많이

하고.”

  내가 손을 씻고 돌아왔을 때, 어머니는 흔들의자에 앉아 계셨다. 눈이 젖어서 반짝거렸다.

어머니는 팔을 내밀어서 나를 잡고 당신의 무릎에 앉히시더니 꼭 껴안아 주시고 몇 번

흔들의자를 앞뒤로 구르셨다. 한참을 그러시다가 나를 무릎에서 내려놓으시더니 말씀하셨다.

  “우리 파티하자. 너 지금 무엇을 가장 하고 싶니?”

  내가 대답했다.

  “저는 벤슨 선생님을 보고 싶어요.”

  어머니는 고개를 끄떡이시더니 말씀하셨다.

  “좋다. 그럼 내가 너와 함께 가마.”

  어머니께서는 내가 깨끗이 목욕을 하게 하신 다음에 일요일에 입는 정장을 입히시고,

당신도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으셨다. 우리는 전차를 타고 시내에 갔다. 가게에 들려서

아주 좋은 과일 바구니를 사셨다.

  우리가 벤슨 선생님의 병실을 찾아 들어갔을 때, 선생님은 침대에 앉아 계셨다.

얼굴은 온통 붕대로 감아져 있었다. 겨우 눈만 빠끔히 나와 있었다. 양손도 모두 붕대로

싸매져 있었다. 어머니가 내게 과일 바구니를 건네주시고 나는 그것을 선생님께 드렸다.

  “저는 정말 그것이 독이 있는 담쟁이 잎인지 몰랐어요.”

  나는 목이 멘 소리로 말씀드렸다.

  “제가 선생님을 아프게 하려는 것이 아니었어요. 저는 정말 좋은 어떤 것을 ….”

  나는 말을 멈추고 몇 번 어렵게 침을 삼켰다. 내가 침대 옆에 서자, 벤슨 선생님은 나를 유심히

바라보셨다. 어머니께서 나를 도와서 무슨 말씀을 하시려고 하자 선생님은 가만히 어머니의

손을 잡아서 말씀을 막으셨다. 선생님은 나에게서 눈을 떼지 않으셨다.

  “너는 나에게 무엇인가 특별한 것을 주려고 했지? 그렇지? 폴아.”

  나는 고개를 끄떡였다.

  “아침마다 책상에 갖다 놓은 사과나 맛있는 복숭아나 다른 과일들도 모두 네가 준 것이지?”

  나는 다시 고개를 끄떡였다.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내가 이 붕대를 다 풀면, 너를 힘껏 안아 주마.”

  나는 선생님이 나에게 화가 나지 않으신 것을 알고 너무나 행복했다.

선생님은 계속해서 나에게 말씀하셨다.

  “폴아, 내가 큰 비밀을 너에게 말해 줄께. 나는 내년 봄에 결혼하게 된단다. 아들을 낳는다면,

꼭 너처럼 키우고 싶어.”

  어머니께서 나를 병원에서 데리고 나올 때, 선생님의 눈에서 눈물이 나오는 것을 보았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Homily > ☆ 류 해욱신부님의 향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어머니께 봉헌합니다   (0) 2010.02.22
하느님께서 찾아가신 보석  (0) 2008.08.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