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Lord/† 聖人들의 삶을 통해서

원죄없이 잉태되신성모마리아 대축일(12월8일)

ohjulia 2008. 12. 8. 06:01



** 원죄없이 잉태되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 대축일
        (Immaculate Conception of the Blessed Virgin Mary)**
                 

원죄없이 잉태되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 대축일 ,고향으로
      
    하느님께서 당신 아드님의 공로를 미리 입게 하시어 성모 마리아를 원죄에서 
    보호하셨음을 기리고 찬미하는 날입니다.
    마리아의 원죄 없으신 잉태는 구원의 신비를 다시 한번 잘 살도록 준비시키는 
    대림절의 핵심적인 신심입니다.
    교회는 5세기 말부터 예루살렘의 마리아 성당 봉헌일인 9월 8일에 
    복되신 동정 마리아 탄신 축일을 지냈다. 
    8세기경부터는 이날에서 거슬러 계산하여 9개월 전인 12월 8일을 ’원죄 없이 잉태되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 대축일’로 지냈으며, 이것이 9세기경 서방 교회에 전파되었다. 
    1476년 교황 식스토 4세는 이를 로마 전례력에 도입하였고, 교황 비오 9세는 
    1854년 12월 8일에 복되신 동정 마리아께서 원죄 없이 잉태되심을 ’믿을 교리’로 선포하였다.
    한국 교회는 조선대목구장 앵베르 주교의 청원에 따라,  
    1841년 8월 22일, 교황 그레고리오 16세가 본래 수호 성인이시던 성 요셉과 ’성모 무염 시잉 모태’
    (聖母無染始孕母胎, 원죄 없이 잉태되신 성모)를 조선 교회의 공동 수호 성인(Compatroni)으로 
    정한 이래 원죄 없이 잉태되신 성모를 교회의 수호자로 모시고 있다.
    임마꿀라타는 ’나는 원죄없이 잉태되었다’는 뜻을 가진 성모님 다른 이름이다. 
    원죄없으신 성모님은 한국의 수호성인으로 1841년(교황 그레고리오 7세로부터) 
    승인을 받았다.
    원죄없으신 잉태는 하느님의 어머님께 드리는 가장 아름다운 이름이다.
    원죄 없이 잉태
    신학자들은 안나가 마리아를 낳을 때 별로 해산의 고통이 없었으며, 남편과도 
    관계를 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성 벨라도는 출산의 고통이란 원죄에서 오는 것이므로 구세주를 낳으실 원죄 없으신 
    성모님의 탄생에 고통이 없음은 당연하다고 했다.
    성모님은 그의 모친 안나의 태중에 잉태하시는 순간부터 죄에서 수호되시고, 
    은총을 받았기에 원죄가 없으심은 당연하며, 온 교회가 이를 확실히 믿는 것은 당연하며, 
    온 교회가 이를 확실히 믿는 것은 더욱 당연한 일이다. 
    성서상 간접적인 근거는 창세기(3/15)와 루가복음(1/28)이다.
    교황 비오 9세는 1954년 12월 8일, 성모님은 잉태의 순간부터 죄로부터 수호되셨다.
    즉, 죄의 물듦이 없이 잉태되는 은총을 받으셨다는 것을 신조(성모 무염시태)로 
    선언하였다.
    그후 4년 후에는 프랑스의 루르드의 성모님이 발현하셨을 때 성모님은 "나는 원죄 없이 
    잉태 되었다" 라고 말씀하심으로써 그 선포가 참됨을 증명해 주셨다.
    축일은 (12월8일) 1708년 교황 클레멘스 11세가 정하였다.
    성모 신심 
    한국 천주교회와 성모 마리아 
    그리스도의 어머니 성모 마리아에 대한신심은 예전부터 특별한 공경으로 교회 안에 
    전승되어 왔다. 이러한 성모 신심은 직접적으로 우리의 신앙에 영향을주며 자칫 자나치거나 
    굴곡된 성모 신심은 많은 신자들에게 오해와 환상을 일으키는 결과를 주게 되곤 한다.
    1. 한국 천주교회와 성모 마리아
    1838년 12월 1일 제2대 교구장 앵베르 주교는 교황에게 ’원조없이 잉태되신 성모’를 
    조선교구의 수호성인으로 정해줄 것을 요청했고  교황 그레고리오 7세는 1841년 이를 
    허락함으로써 한국교회와 성모 마리아와의 공적인 관계가 시작되었다.
    이에 앞서 1864년 다불리 신부는 고주 수리치골에서 성모성심회라는 신심단체를 조직했는데 
    이것이 한국교회 마리아 신심 단체의 효시를 이룬다.
    이후 1954년 성모의 원죄없으신 잉태 교리선언 1백주년 기념 성모성년 대회에서
     한국교회는 다시한번 성모 마리아께 봉헌됐고, 1984년 5월 6일 교황요한 바오로 2세는 
    원죄없이 잉태되신 성모를 주보성인으로 모시고 있는 명동 대성당에서 한민족과 
    한국 교회를 마리아께 봉헌했다.
    한국교회는 이처럼 성모 마리아와 특별한 관계를 맺고 있으며 오늘날의 활발한 마리아 
    신심운동은 바로 이같은 전통과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2. 바른 성모공경을 위해 
    그러나 한국 교회의 적지않을 수가 성모발현과 관련한 기적과 징표만을 찾아 
    예수를 외면한 마리아 중심의 그릇된 심심을 가지을 따르고 있어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마리아 공경은 결코 교회의 성사와 전례에 우선되어서는 안된다.
    일부 신자들이 미사성체와 성체성사보다 마리아 신심을 앞세워 마리아를 신격화하는 
    경향을 올바른 신앙교육을 통하여 마땅히 시정되어야 할 점이다.
    특히 오늘날 교회의 전통적인 가르침에도 불구하고 사목자들의 지시도 받지않은 채
    사적계시를 빌미로 출판물과 개별집회를 통해 마리아에 대한 어긋난 맹목적 유포는 
    반드시 근절되어야 할 것이다.
    성모에 대한 신심의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를 삶의 중심으로 모시는 데에 있다.
    마리아가 교회로부터 공경을 받는 이유는 하느님의 직극히 거룩하신 모친이고 
    그리스도의 신비에 동참하여 아들의 생애와 구원사업에 일치한 어머니이기 때문이며 
    하느님의 은총에 힘입어 높임을 받았기 때문이다.
    교부들은 마리아 공경의 형태를 사랑, 공경, 기도 그리고 모방 등 네가지로 제시하고 있다.
    마리아를 가장 사랑하는 어머니로 모시고 성자 다음으로 모든 것 위에 공경을 드리며 
    전구하고 성덕 전체를 본받는 것이 참된 마리아 공경의 형식인 것이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또한 마리아 신심의 오용과 남용을 막기 위해 사목적 규범들을 명시,
    교회가 인준한 성모 신심의 여러 형태의 질서안에서 ’정통교리의 테두리속에 시대와 
    장소의 조건이나 신도들의 기질과 품성에 따라야 함’을 명백히 하고 있다.
    [가톨릭 교리를 의식적으로 가르치며 동시에 복되신 동정녀 공경, 특히 전례적 공경을 
    충분히 촉진하고,세기를 통하여 교도권이 권장해온 신심 행위의 풍습을 중히 여기며, 
    과거에 그리스도와 복되신 동정녀와 성인들의 성상에 대하여 결정한 것을 엄수하도록
    교회의 모든 자녀들에게 권고]한 공의회 문헌(교회헌장 8장, 22항)는
    성모의 고유한 품위를 존중하는데 있어 마음의 협소함과 아울러 지나친 거짓 과장을 
    피할 것을 강력히 요청했다.
    그리스도인의 참된 마리아 신심은 언제나 확실한 신앙에서 나오고 마리아께 향한 사랑을 
    지니고 그 덕행을 본받는 것을 촉진한다. 결실없이 지나가는 일시적 감정이나 허황된 믿음이 
    마리아 신심을 대변하는 것이 아니며 참된 신앙안에 있다는 것을 알아야함을 공의회는 
    천명하고 있다.
    한국교회에서는 레지오마리애, 푸른군대 등 마리아께 대한 공경을 주제로 한 신심단체가 
    절대적 역할을 하고 있어 올바른 성모 신심행사 비중은 자못 크다.
    환상이나 환영에 빠져 성모 발현과 성모이적의 허황함을 쫓고있는 신자들의 무지와 
    오해를 일깨워 참된 신앙의 터전위에 자녀다운 올바른 성모 심신을 배워 [마리아를 통한 
    그리스도께로]이끄는 사목적 배려와 본당 사목자들의 관심이 촉구된다.
    - (성바오로딸수도회홈에서)
    동방 교회에서는 마리아의 탄생 축일을 4세기경부터 거행하였습니다. 
    그리고 다음 세기에 마리아의 무죄한 잉태 축일이 생겼습니다. 
    서방 교회에서는 1060년경에 처음으로 영국에서 시작되었습니다. 
    1695년 교황 인노첸시오 12세는 모든 교회가 성무일도와 미사 경본에 이 축일을 지내도록 
    하였고, 교황 클레멘스는 1708년부터 의무 축일로 정하였습니다.
     성모 발현과 ‘기적의 메달’ 사건 등으로 성모 신심이 고조되면서 교황 비오 9세는
     1854년 ‘마리아의 무죄한 잉태’ 교의를 선포하였고, 
    로마 전례 개혁에 따라 이 축일은 대축일로 장엄하게 지내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