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독서 에스테르기 4,17⑫.17⑭-17?.17-17
그 무렵 17⑫ 에스테르 왕비가 죽음의 공포에 사로잡혀 주님께 피신처를 구하였다.
17⑭ 그러고 나서 이스라엘의 주님께 이렇게 기도드렸다.
“저의 주님, 저희의 임금님, 당신은 유일한 분이십니다. 외로운 저를 도와주소서. 당신 말고는 도와줄 이가 없는데, 17⑮ 이 몸은 위험에 닥쳐 있습니다. 17? 저는 날 때부터 저의 가문에서 들었습니다. 주님, 당신께서 모든 민족들 가운데에서 이스라엘을, 모든 조상들 가운데에서 저희 선조들을 영원한 재산으로 받아들이시고, 약속하신 바를 채워 주셨음을 들었습니다.
17 기억하소서, 주님, 저희 고난의 때에 당신 자신을 알리소서. 저에게 용기를 주소서, 신들의 임금님, 모든 권세의 지배자시여! 17 사자 앞에 나설 때, 잘 조화된 말을 제 입에 담아 주시고, 그의 마음을 저희에게 대적하는 자에 대한 미움으로 바꾸시어, 그 적대자와 동조자들이 끝장나게 하소서.
17 당신 손으로 저희를 구하시고, 주님, 당신밖에 없는 외로운 저를 도우소서. 당신께서는 모든 것을 알고 계십니다.”
복음 마태오 7,7-12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7 “청하여라,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찾아라, 너희가 얻을 것이다. 문을 두드려라, 너희에게 열릴 것이다. 8 누구든지 청하는 이는 받고, 찾는 이는 얻고, 문을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다.
9 너희 가운데 아들이 빵을 청하는데 돌을 줄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 10 생선을 청하는데 뱀을 줄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 11 너희가 악해도 자녀들에게는 좋은 것을 줄 줄 알거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야 당신께 청하는 이들에게 좋은 것을 얼마나 더 많이 주시겠느냐?
12 그러므로 남이 너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희도 남에게 해 주어라. 이것이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다.”
남자 두 명이 서로 논쟁을 벌이고 있었습니다.
“꽃을 주는 사람이 행복할까? 받는 사람이 행복할까?”
그러나 서로 자신의 생각만 주장하다 보니 결론이 나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근처의 꽃집에 갔습니다. 꽃집 주인은 꽃을 많이 팔아보았으니 꽃을 주는 사람이 행복한지 아니면 꽃을 받는 사람이 행복한 지를 잘 알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지요. 꽃집 주인은 웃으면서 이렇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꽃을 판 사람이 제일 행복합니다.”
사실 꽃을 주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 그리고 파는 사람 모두 예외 없이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바로 꽃이라는 매개체가 그렇게 행복하게끔 만든다는 것이지요. 여기서 우리는 한 가지를 더 생각할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주님 안에서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왜냐하면 오늘 복음에 나와 있듯이 우리가 청하는 대로 주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청하여라,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찾아라, 너희가 얻을 것이다. 문을 두드려라. 너희에게 열릴 것이다. 누구든지 청하는 이는 받고, 찾는 이는 얻고, 문을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다.”
이렇게 주님을 통해서 행복을 얻은 우리는 이제 내가 받은 만큼 남에게 베풀어야 할 것을 명하시지요. 왜냐하면 받는 행복과 주는 행복이 함께 이루어질 때 진정으로 완전한 하나의 행복을 만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남이 너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희도 남에게 해 주어라.”
하지만 우리들은 받는 것에 익숙할 뿐 주는 것에는 너무나도 어색해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행복하지 못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받는 행복에만 익숙한 반쪽짜리 행복만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청하기만 하면 무엇이든 다 받을 수 있는 우리, 그리고 내게 해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남에게 해 주는 우리가 될 때 진정으로 행복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어디 까지 만을 원하며 살고 있었을까요? 혹시 받는 것까지만 원하고, 주는 것에 대해서는 여러 조건을 걸어서 거부하려고 했던 것은 아니었을까요?
건망증이 아주 많은 형제님이 계셨습니다. 어느 날, 이 형제님께서 택시를 타셨지요. 한참을 달리고 있는데, 갑자기 이 형제님께서는 어디로 가는 것인지가 기억나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택시 기사님께 여쭤보았지요.
“기사님, 제가 지금 어디 간다고 말씀드렸죠?”
그러자 택시 기사님이 깜짝 놀라며 “아이고 깜짝이야. 그런데 언제 타셨어요?”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형제님뿐만 아니라 택시 기사님 역시 건망증이 심했던 것이지요.
우리 역시 이렇게 건망증이 심한 것은 아닐까요? 우리의 목적지가 하느님 나라라는 것을 잘 알면서도, 그래서 그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주님의 뜻대로 살아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왜 그렇게 살지 못할까요? 바로 잊어버리기 때문이지요.
이제는 다시 정신을 차려서 받는 것만을 이야기하지 말고, 주는 것에 더 큰 관심을 갖도록 합시다. 이 둘이 모두 내 안에서 이루어질 때 완전한 행복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인간이 가장 조심해야 할 것은 자기 안에 있는 두려움이다(토마스 칼라일).
한 사람의 죽음
프랑스의 마르세이유에 무서운 전염병이 유행한 적이 있었다고 합니다. 얼마나 증세가 심했든지 의사들마저도 환자를 만지기만 하면 죽게 되므로, 병의 원인 조차도 알 수 없는 상태에서 계속 사람들은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바로 이때 기용이라는 한 의사가 매우 심각한 어조로 말했습니다.
“내일 아침 날이 밝을 무렵이면 이 병에 걸린 사람을 해부한 기록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이 말을 들은 모든 의사들은 환자를 만져본 사람도 없는데 어떻게 기록을 볼 수 있을 것이라는 말인가 하고서는 의아해들 했습니다. 그러나 그 말을 한 기용 의사는 자신의 처소로 돌아가 밤이 깊도록 주님께 기도를 하고는 한 죽은 환자를 내어놓고 하나하나 해부를 하면서 상세한 기록을 해 나갔습니다.
그 결과 그토록 무서운 전염병의 원인을 규명할 수가 있었으며 그리고 병에 대한 치료가 가능해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일이 가능하게 된 바로 그 순간 이 의사는 죽었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