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10.04.05)
2010년 4월 5일 부활 팔일 축제 내 월요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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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독서 사도행전 2,14.22-33
14 오순절에 베드로가 열한 사도와 함께 일어나 목소리를 높여 말하였다. “유다인들과 모든 예루살렘 주민 여러분, 여러분은 이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내 말을 귀담아들으십시오. 22 이스라엘인 여러분, 이 말을 들으십시오. 여러분도 알다시피, 나자렛 사람 예수님은 하느님께서 여러 기적과 이적과 표징으로 여러분에게 확인해 주신 분이십니다. 하느님께서 그분을 통하여 여러분 가운데에서 그것들을 일으키셨습니다. 23 하느님께서 미리 정하신 계획과 예지에 따라 여러분에게 넘겨지신 그분을, 여러분은 무법자들의 손을 빌려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습니다. 24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그분을 죽음의 고통에서 풀어 다시 살리셨습니다. 그분께서는 죽음에 사로잡혀 계실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25 그래서 다윗이 그분을 두고 이렇게 말합니다. ‘나 언제나 주님을 내 앞에 모시어, 그분께서 내 오른쪽에 계시니 나는 흔들리지 않는다. 26 그러기에 내 마음은 기뻐하고, 내 혀는 즐거워하였다. 내 육신마저 희망 속에 살리라. 27 당신께서 제 영혼을 저승에 버려두지 않으시고, 당신의 거룩한 이에게 죽음의 나라를 아니 보게 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28 당신은 저에게 생명의 길을 가르쳐 주신 분, 당신 면전에서 저를 기쁨으로 가득 채우실 것입니다.’ 29 형제 여러분, 나는 다윗 조상에 관하여 여러분에게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그는 죽어 묻혔고, 그의 무덤은 오늘날까지 우리 가운데에 남아 있습니다. 30 그는 예언자였고, 또 자기 몸의 소생 가운데에서 한 사람을 자기 왕좌에 앉혀 주시겠다고 하느님께서 맹세하신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31 그래서 그리스도의 부활을 예견하며, ‘그분은 저승에 버려지지 않으시고, 그분의 육신은 죽음의 나라를 보지 않았다.’ 하고 말하였습니다. 32 이 예수님을 하느님께서 다시 살리셨고, 우리는 모두 그 증인입니다. 33 하느님의 오른쪽으로 들어 올려지신 그분께서는 약속된 성령을 아버지에게서 받으신 다음, 여러분이 지금 보고 듣는 것처럼 그 성령을 부어 주셨습니다.”
복음 마태오 28,8-15
그때에 8 여자들은 두려워하면서도 크게 기뻐하며 서둘러 무덤을 떠나, 제자들에게 소식을 전하러 달려갔다. 9 그런데 갑자기 예수님께서 마주 오시면서 그 여자들에게 “평안하냐?” 하고 말씀하셨다. 그들은 다가가 엎드려 그분의 발을 붙잡고 절하였다. 10 그때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두려워하지 마라. 가서 내 형제들에게 갈릴래아로 가라고 전하여라. 그들은 거기에서 나를 보게 될 것이다.” 11 여자들이 돌아가는 동안에 경비병 몇 사람이 도성 안으로 가서, 일어난 일을 모두 수석 사제들에게 알렸다. 12 수석 사제들은 원로들과 함께 모여 의논한 끝에, 군사들에게 많은 돈을 주면서 13 말하였다. “‘예수의 제자들이 밤중에 와서 우리가 잠든 사이에 시체를 훔쳐 갔다.’ 하여라. 14 이 소식이 총독의 귀에 들어가더라도, 우리가 그를 설득하여 너희가 걱정할 필요가 없게 해 주겠다.” 15 경비병들은 돈을 받고 시킨 대로 하였다. 그리하여 이 말이 오늘날까지도 유다인들 사이에 퍼져 있다.
세상에는 세 종류의 바보가 있다고 합니다.
1. 안 될 일을 된다고 믿는 바보.
2. 될 일도 안 된다고 해서 진짜 안 되게 하는 바보.
3. 되는 일도, 안 되는 일도 모르는 바보.
물론 작년 선종하신 김수환 추기경님께서 스스로 ‘바보’라고 칭하셨지만, 이는 겸손의 또 다른 표현이라고도 볼 수 있지요. 그러나 위에 나오는 세 가지 바보의 모습은 우리가 반드시 피해야 할 바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이 바보의 모습에서 그 다지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특히 두 번째인 될 수 있는 일도 안 된다고 하는 그래서 정말로 안 되게 만드는 경우는 너무나도 자주 범하는 우리의 모습입니다.
이천년 전 예수님의 죽음을 목격한 사람들은 모든 것을 포기했습니다. 이제 다 끝났다고, 예수님의 말씀과 행적은 이제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단지 한 순간의 해프닝에 불과했다고 생각하면서 좌절 속에 빠졌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다시금 생각해볼 수 있는 것은 예수님께서는 이미 당신의 수난과 죽음을 세 차례나 미리 예고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당신의 부활에 대해서도 말씀하셨지요.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들은 이제까지 죽었다 살아난 사람이 하나도 없기 때문에 믿지 않았습니다. 이 모습이 바로 앞서 이야기한 ‘바보’의 모습이 아닐까요?
이런 바보의 모습을 끝까지 간직한 사람은 예수님의 부활을 체험해도 기쁠 수가 없습니다. 이를 오늘 복음에서 우리는 쉽게 볼 수가 있지요.
예수님의 무덤을 찾아온 여인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하게 되지요. 그리고 그들은 큰 기쁨을 안고 제자들에게 이 소식을 알려줍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부활을 체험한 사람은 이 여인만이 아니었습니다. 그곳을 지키고 있었던 경비병들도 예수님의 부활을 체험했지요. 그렇다면 그들은 어떠했을까요?
그들은 무덤을 찾아온 여인들과는 달리 기쁨보다 두려움에 떨면서 수석사제들에게 알립니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수석사제들이 시키는 대로 거짓을 세상에 알리는 역할을 담당하게 됩니다. 앞서 이야기한 ‘바보’가 된 것이지요.
우리는 이러한 바보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주님께서 보여주신 그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실제로 이루어짐을 굳게 믿어야 합니다. 그래야 세상에 기쁜 소식을 전달하고 또한 내 자신도 큰 기쁨 속에서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본능은 대개 머리가 생각해내기 한참 전에 무엇을 해야 하는지 말해준다(마이클 버크).
사흘의 비밀
언제나 기쁨으로 얼굴이 빛나는 꽃장수 할머니가 있었다. 늘 그것을 궁금해 하던 한 단골손님이 어느 날 할머니에게 물었다.
"할머니는 걱정 근심이 전혀 없으신가 봐요."
"천만에요. 사람에게 걱정 근심이 없을 수가 있나요. 내게도 역경과 고통이 있답니다."
"그런데 어떻게 그리도 매일 기쁘게 사실 수가 있어요?"
"사흘의 비밀을 가지고 인생을 살아가기 때문이랍니다."
"사흘의 비밀이라니요?"
"사흘의 비밀이란 걱정거리가 생길 때마다 하느님께 기회를 드리고 사흘을 기다리는 것인데, 이는 무덤에서 사흘 만에 부활하신 주님을 믿는 것입니다. 때론 숫자대로 사흘이 아닐 수도 있지만 주님의 부활 원리는 늘 동일하답니다. 그래서 나에게는 어떤 암흑 같은 고난일지라도 광명의 열매로 끝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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