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독서 이사야 26,7-9.12.16-19
7 의인의 길은 올바릅니다. 당신께서 닦아 주신 의인의 행로는 올곧습니다. 8 당신의 판결에 따라 걷는 길에서도, 주님, 저희는 당신께 희망을 겁니다. 당신 이름 부르며 당신을 기억하는 것이 이 영혼의 소원입니다.
9 저의 영혼이 밤에 당신을 열망하며, 저의 넋이 제 속에서 당신을 갈망합니다. 당신의 판결들이 이 땅에 미치면, 누리의 주민들이 정의를 배우겠기 때문입니다.
12 주님, 당신께서는 저희에게 평화를 베푸십니다. 저희가 한 모든 일도 당신께서 저희를 위하여 이루신 것입니다.
16 주님, 사람들이 곤경 중에 당신을 찾고, 당신의 징벌이 내렸을 때 그들은 기도를 쏟아 놓았습니다. 17 임신한 여인이 해산할 때가 닥쳐와 고통으로 몸부림치며 소리 지르듯, 주님, 저희도 당신 앞에서 그러하였습니다.
18 저희가 임신하여 몸부림치며 해산하였지만, 나온 것은 바람뿐. 저희는 이 땅에 구원을 이루지도 못하고, 누리의 주민들을 출산하지도 못합니다.
19 당신의 죽은 이들이 살아나리이다. 그들의 주검이 일어서리이다. 먼지 속 주민들아, 깨어나 환호하여라. 당신의 이슬은 빛의 이슬이기에, 땅은 그림자들을 다시 살려 출산하리이다.
복음 마태오 11,28-30
그때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28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 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 그러면 너희가 안식을 얻을 것이다. 30 정녕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
오늘 새벽 일어나는데 너무 힘들었습니다. 사실 어제 할 일이 있어서 조금 늦게 잠들었거든요. 그리고 새벽 4시에 일어나 묵상을 하는데 영 죽을 맛입니다. 복음 말씀과 독서의 말씀이 머릿속에 떠올려지지 않고, 다시 침대로 돌아가서 잠을 자면 정말로 좋겠다는 생각뿐입니다. 그러면서 힘들게 묵상을 했고 그 내용을 노트에 적었습니다.
이제는 컴퓨터에 타이핑을 할 시간입니다. 타이핑 전 이메일 함을 열었습니다. 그런데 낯익은 이메일 한통을 보게 됩니다. 이분이 누군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제 글에 대한 부정적인 말을 자주 하시는 분입니다. 그리고 그 내용 역시 제 글에 대한 부정적인 내용이었습니다.
기분이 무척이나 나빴습니다. 이렇게 이른 시간에 일어나 묵상하고 글을 쓰는 것 자체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10년 동안 글을 써왔는데 이제는 그만 써도 되지 않을까 라는 생각도 해봅니다.
하지만 이 모든 생각들이 인간적인 생각이었음을 반성하게 됩니다. 이 새벽 묵상 글의 처음 시작도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함이 아니라, 묵상한 것들을 진솔하게 사람들과 나누기 위함이었임을 잊지 않는다면 사람들의 부정적인 판단이 문제될 수는 없는 것이지요. 즉, 주님께 내 자신이 충실할 수 있다면, 다른 사람이 무슨 말을 해도 절대로 문제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저는 사람의 관점으로 생각하고 판단했으며, 또한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받기만을 원하는 욕심으로 가득했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님의 말씀을 묵상하면서도 이 새벽에 화를 낼 수밖에 없었던 것이지요.
주님께 온전히 매달리는 사람은 세상의 바람에 절대로 흔들리지 않습니다. 더군다나 주님께서는 당신이 어떤 분인지를 오늘 복음에서 이렇게 설명하시지요.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 그러면 너희가 안식을 얻을 것이다.”
저만 부정적인 판단을 받은 것이 아닙니다. 주님께서는 더 큰 부정적인 판단을 받으셨고, 심지어 십자가의 죽음까지도 당하셔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온유함과 겸손함으로 그 모든 것들을 이기시고 하느님 아버지의 뜻에 맞게 생활하십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이러한 당신을 배우라고, 그래야 편안한 안식을 얻을 수 있다고 하십니다.
이제는 저처럼 세상의 부정적인 판단에 흔들려서는 안 됩니다. 그래야 올바른 의인의 길을 갈 수 있으며, 주님께 온전히 희망을 거는 사람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때 오늘 제1독서 이사야 예언자의 말씀대로 깨어나 환호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다른 이들의 삶에 빛을 가져다주는 이는 자신도 그 빛으로 밝아진다(제임스 매튜 베리).
아흔 살의 소년이여(‘행복한 동행’ 중에서)
조지 다우슨은 1898년 1월 18일에 태어났다. 그는 여덟 살 때부터 일을 시작했다. 열두 살이 되었을 때 그의 아버지는 어린 아들을 백인 가정에 일을 보냈다. 조지의 남동생과 여동생들은 최소한의 학교 교육을 받았지만, 8남매의 장남으로 일찌감치 돈을 벌어야 했던 조지는 교육을 받을 수가 없었다. 그는 1926년 결혼했고, 이듬해인 1927년에 한 아이의 아버지가 되었다.
조지는 나무패기, 목재소 일, 제방 쌓기 등 온갖 궂은일을 하며 98세의 나이까지 문맹으로 살았다. 그는 다른 사람이 지불해주는 임금을 그대로 받았고, 아내가 읽어주는 세금계산서를 그대로 믿었다.
1996년, 98세가 되었을 때 고기잡이에 싫증이 난 조지는 글 읽는 법을 배우겠다는 결심을 했다. 선생이 여섯 개의 문자부터 교육을 시작하려고 하자 그는 선생을 가로막으며 말했다.
“나는 모든 문자를 다 배우고 싶다네.”
그렇게 조지는 하루하고도 반나절 만에 알파벳을 전부 익혔다. 한 달이 지날 무렵에는 자기 이름을 쓸 수 있게 되었으며, 2년이 지난 뒤에는 3학년 정도의 책을 읽게 되었다. 또한 교회에서 큰 소리로 성경을 봉독할 수도 있게 되었다. 이제 그는 백 살이 넘었다. 그런데도 여전히 그는 인생에 흥미를 가지고 배우기를 게을리 하지 않는다.
여든 살이나 아흔 살의 ‘소년’들이여, 배우기를 멈추지 마라. 우리가 조지 다우슨에게 얻을 수 있는 교훈은 바로 이것이다.
계속해서 배워라! 그로 인해 인생이라는 여행길에서 당신은 더 많은 재미를 맛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