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Lord/† 영성의 향기

나는 누구냐?

ohjulia 2010. 10. 25. 08:38
                      

Awareness: A De Mello Spirituality Conference in His Own Words

나는 누구냐?

위대한 스승들은 우리에게 "나는 누구냐?" 혹은 ""나'란 무엇이냐?"가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물음이라고 말합니다. "나"란 무엇일까요? 자기란 무엇일까요? 세상의 다른 모든 것은 이해했다는 네가 이것은 이해하지 못하느냐? 천문학과 블랙 홀과 항성들을 이해하고 컴퓨터 과학을 일으켰다는 네가

너는 누구인지 모르느냐? 아, 너는 아직도 잠들어 있다. 잠들어 있는 과학자다.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인지 이해했다는 네가 너는 누구인지는 모르느냐? 예수 그리스도를 이해했다는 것은 어떻게 아느냐? 그 이해를 하는 사람은 누구냐? 그걸 먼저 찾아내십시오. 그것이 매사의 기초가 아닙니까? 모든 어리석은 종교 전쟁 - 유태교와 회교, 천주교와 개신교, 그밖의 온갖 어리석은 싸움 - 에 관련된 어리석은 종교인들이 있는 것은 그걸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자기들이 누군인지를 모릅니다. 안다면 그런 전쟁은 없을 겁니다. 어느 소년과 소녀의 대화에서처럼. "네가 속한 교파(denomination) 장로교니?" "아니, 우리가 속한 건 또 다른 혐오(abomination)야!" 그러나 바로 지금 내가 강조하는 싶은 것은 자기 관찰입니다. 여러분은 내 말을 듣고 있지만 그러면서 내 목소리 외의

어떤 다른 소리를 듣고 있습니까? 내 말을 들을 때의 '여러분의' 반응을 자각하고 있습니까? 만일 그렇지 않다면 여러분은 세뇌되는 중입니다. 아니면 전혀 자각하지 못하는 여러분 안의 힘에 영향을 받는 중입니다. 또 나에게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자각하더라도 여러분의 반응이 어디서 나오는지도 동시에 자각하고 있습니까? 어쩌면 내 말을 전혀 듣고 있지 않을 겁니다. 어쩌면 여러분의 부친이 내 말을 듣고 있을 겁니다. 그럴 수도 있나고요? 물론 그럴 수도 있습니다. 나는 내 치료 그룹에서 그 자리에는 없는 사람들을 거듭 만납니다. 그들의 아버지, 그들의 어머니가 거기 있지 그들은 거기 없는 겁니다. 그들 자신은. "지금 내가 사는 건 내가 아니고 내 아버지가 내 안에 사는 거예요." 그래요. 그 말은 절대로, 글자 그대로 참말입니다. 나로서는 상대방을 조각조각 분해해서 물을 수 있을 겁니다. "자, 이 문장의 유래는 아버지, 어머니, 할머니, 할아버지, 누구?" 여러분 안에는 누가 살고 있습니까? 그걸 아시면 매우 소름끼칠 겁니다. 스스로 자유롭다고 생각하지만 아마 여러분 안에는 다른 사람에게서 유래하지 않는 몸짓 / 생각 / 감정 / 태도 / 신념이란 없을 겁니다. 무서운 일 아닙니까? 여러분은 그걸 모르고 있습니다. 여러분 안에 찍혀 들어와 있는 기계적인 삶을 분간해 보십시오. 어떤 것을 매우 강렬히 느낄 때 여러분 자신이 그걸 그렇게 강렬히 느끼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정말 그럴까요? 여러분이 "나"라고 부르는 이것이 어쩌면 단지 과거 환경에 따라

겪은 체험들의 복합임을 이해하려면 많은 깨침이 필요할 것입니다. 깨침은 괴로운 일입니다. 사실 깨어나기 시작하면 많은 고통을 겪습니다. 자신의 환상이 깨어지기 시작하며 자기가 일으켜 세웠다고 생각한

모든 것들이 무너지는 걸 본다는 것은 고통스럽습니다. 그런 것이 회개입니다. 그런 것이 깨어나는 것입니다. 그럼 잠시, 여러분이 바로 지금 앉은 자리에서, 내가 이야기할 때 여러분이 신체적으로 무엇을 감지하고 마음에서는 무엇이 일어나며 정서 상태가 어떠한지 자각해 보면 어떨까요? 눈을 뜬 채 칠판에 대해 자각해 보면 어떨까요? 또 벽지의 색깔과 그 재료에 대해서는? 내 얼굴과 내 얼굴에 대한 여러분의 반응에 관해서는? 자각을 하든 않든 여러분은 어떤 반응을 할 것이고, 그 반응은 아마 여러분의 반응이 아니라 여러분에게 그러도록 조건지어진 것일 겁니다. 그리고 내가 방금 이야기한 것들 중 일부를 자각해 보면 어떠할까요? 이게 그건 기억이지 세상 깨달음은 아닐지라도. 이 방 안의 자기 현존을 자각해 보십시오. 여러분 자신에게 "나는 이 방 안에 있다"라고 말해 보십시오. 마치 자기 바깥에 있는 것처럼 자신을 응시하면서, 방 안의 사물들을 응시하던 때와는 약간 다른 느낌이죠. 나중에 우리는 "그런 응시를 하고 있는 이 사람은 누구냐?"라고

물을 것입니다. "나"는 무엇인가? 또 "내것"이란 무엇인가? 당분간은 "나"가 나를("내것"을) 관찰하는 것으로 족합니다. 그런데 자신을 단죄하거나 칭찬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거든 멈추지 말고, 그 단죄나 판단이나 칭찬을 멈추지 말고 그걸 그저 바라보십시오. 내가 나를 단죄하고 있다. 내가 나를 비난하고 있다. 내가 나를 인정하고 있다. 그저 바라만 보아라. 끝. 바꾸려고 하지 마십시오! "오, 이렇게 해서는 안 된다던데"라고 말하지 마십시오. 무엇이 진행중인지 그저 바라만 보십시오. 이미 말했듯이 자기 관찰이란 살펴보는 것입니다. 여러분 안에서나 곁에서 어떤 일이 진행되고 있더라도 그것이 다른 사람에게 일어나고 있는 것처럼 관찰하는 것입니다.

  안토니 드 멜로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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