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 신앙과 마리아 공경
‘신앙(信仰)’. 믿고 받든다는 뜻이다. 누군가를 믿고, 누군가에게 경의에 찬 눈빛을 보내며 그를 우러르며 받드는 일 그것이 신앙이다. 믿는다는 말처럼 우리 일상에서 쉽게 쓰는 말이 없으며, 누군가를 우러러 보거나 받들어 모시는 일도 사회 속에서 흔히 겪는 일이다. 문제는 누구를 믿고, 누구를 내 삶을 지탱해줄 분으로 받드느냐의 문제이다.
그리스도 신앙은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신앙을 말한다. 하지만 예수가 누구이기에 그를 그리스도, 구원자, 메시아로 고백한다는 말인가? 2천년전 이스라엘의 나자렛이라는 동네에서 태어나 33년간을 살면서 자신을 하느님의 아들로, 세상의 죄를 대신하여 바쳐질 하느님의 어린양임을 선포하고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예수를 우리가 구원자, 그리스도로 고백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런 물음을 던지기에 앞서서 먼저 우리들 자신에게 물어보자. 나는 살면서 누구를 믿고 살아왔는지, 또 나는 무엇을 믿고 살아왔는지 말이다. 함석헌씨의 싯구처럼 온 세상이 나를 버려 마음이 외로울 때에도 “그래도 너 만은”하며 내가 믿음을 선사할 수 있는 사람을 진정 가졌는지 물어보자. 그가 내 남편, 내 아내, 내 가족인가? 혹은 내가 가장 사랑하고 믿는 친구나 동료인가? 내가 그를 믿을만하다고 생각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혹시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다는 말처럼 그들이 내 믿음을 저버린 적은 없는가?
우리는 세상 속에서 누군가에 대한 확실한 믿음을 찾는다. 설령 그 믿음이 인간적인 결함으로 인해 상처를 받는다하더라도 믿음 없이는 단 한순간도 살 수 없는 것이 우리 인생이기 때문이다. 살다보면 믿고 싶은 사람도 많지만, 상대방이 미더워도 믿음을 내가 주지 않고서는 살아갈 수 없는 경우도 많다. 상호 간의 신뢰와 약속, 굳이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마음 깊은 곳에서 받는 믿음의 위로. 결정적인 순간에 나를 지켜주고, 내가 지켜줘야 할 사람에 대한 인간적인 애정이 우리에게 필요하다. 그것이 우리가 살아갈 수 있는 힘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 신앙은 이런 믿음에서 출발한다. 예수님의 첫 번째 제자들은 우리들이 하느님을 향한 믿음에서 어떤 과정을 거쳐 믿음의 단련이 필요한지를 보여주었다. 그들은 예수님의 매력적인 모습에 반해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났지만, 결국 자신들이 찾은 헛된 망상으로 인해 자괴감에 빠졌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들의 그런 나약함 속에서도 굳건하게 설 수 있는 믿음의 뿌리를 다시 세워주신다. 그들은 예수님과 함께 걸었던 자신들의 여정 속에서 믿음에는 시련이 필요하다는 것을, 때로 의혹과 두려움을 넘어서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마침내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 오순절 성령강림을 통해 그들 마음속에는 흔들리지 않는 주님께 대한 믿음과 열정이 자라난 셈이다.
이런 믿음의 여정을 인류의 누구보다 가장 가깝게 살아가신 분은 바로 성모님이시다. 마리아는 천사로부터 성령으로 말미암아 아이를 갖게 될 것이라는 뜻밖의 전갈을 받고 당혹스러워한다. 하지만 마리아는 자신의 마음에서 일어나는 의혹과 믿음의 양 갈래에서 하느님의 뜻을 곰곰이 새기고, 마음에 깊이 간직했다. 마리아라고 자신에게 닥친 시련의 순간들이 두렵지 않았겠는가? 하지만 마리아의 위대함은 자신의 전 생애를 섭리하시는 분이 누구신지를 확신했다는 점이다. 그래서 구약의 예언자들이 그랬듯이 자신을 ‘주님의 종’으로, 하느님의 뜻이 “그대로 이루어지소서.”라고 기도할 수 있었다.
“행복하십니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리라고 믿으신 분!”(루카 1, 45). 사촌 엘리사벳의 고백은 우리가 왜 성모님을 공경해야하는 지 묻게 한다. 성모님은 예수님과 함께 사시면서 자신이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생길 때마다 묵묵히 하느님의 뜻에 모든 것을 맡기셨다. 예수를 성전에 바칠 때, 성전에서 잃었던 예수를 찾았을 때, 사람들이 예수를 미쳤다고 떠들어댈 때에도, 심지어는 십자가의 그 참혹한 고통의 순간과 모든 것이 끝나버린 죽은 아들을 가슴에 안고 있는 비통의 순간에도 성모님은 이 모든 이해할 수 없는 일들 가운데에서도 하느님이 뜻하신 바가 있음을 신뢰하셨다. 그리고 마침내 제자들이 성령을 받고 예수를 그리스도로 선포하는 다락방 공동체에서 성모님은 하느님의 구원 계획의 중심에 서계셨다.
성모님을 공경한다는 것은 성모님의 걸으신 삶과 믿음의 여정을 단순히 본받는 정도에 그치지 않고 받들고 우러른다는 뜻이다. 그분을 바라보면 하느님을 향해 살아야 하는 인간의 원형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송용민 신부
(인천교구 삼산동 성당 주임/
인천가톨릭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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