돋보기 영성 3 - 9월호 원고
마리아, 평생 동정이신 분
주일 미사 때마다 함께 고백하는 사도 신경에는 예수 그리스도가 “성령으로 인하여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잉태되어 나셨음”을 고백한다. 복음서에서도 예수님이 동정녀 마리아로부터 출생하셨다는 증언이 나온다(마태 1, 23; 루카 1, 34-35). 복음서에 따르면 예수님은 “남자의 관여 없이 성령으로” 잉태되셨고, 이 점이 우리와 같은 인간으로 오신 예수님이 참으로 하느님의 아들이시라는 징표가 되었음을 전해준다. 가톨릭 교리서(497항)는 동정 잉태가 “모든 인간적 이해력과 가능성을 초월하는 하느님의 업적”이며, 하느님께서 예언자 이사야를 통해 하신 약속 곧 “동정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라.(이사 7. 14)”는 말씀이 성취된 것이라고 가르친다.
하지만 정말로 예수님이 동정녀로부터 잉태되었느냐는 것은 과학적으로 입증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오히려 동정녀 잉태와 출산은 ‘성령으로 인하여’ 이루어진 신앙의 사건이며, 예수를 하느님의 아들이요 그리스도임을 고백하는 신앙 속에서만 이해될 수 있는 것이다. 중요한 점은 왜 가톨릭 신앙은 마리아의 동정 잉태에 대한 신앙을 강조하고, 이에 대한 신심을 발전시켰는지에 대해 묻는 일이다.
일반적으로 종교적 신념에는 인간의 지성을 초월하는 신비적인 사건들을 기념하는 형태가 많다. 아무리 생각해도 인간의 머리로는 납득이 가지 않는 부분이 존재한다는 것은 인간의 의식 너머에 초자연적인 어떤 현상과 사건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는 신념을 전제한다. 이 신념은 최소한 “하느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다.”(루카 1, 37)는 확신을 가진 사람에게만 가능하다. 하지만 하느님의 이러한 신적 섭리를 믿지 않는 사람에게는 동정녀로부터 예수께서 탄생하셨다는 사실이 이교 신화나 고대 사회의 신화를 빌어 창작된 것이 아니냐는 오해와 불신을 일으키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예수님의 탄생을 이끈 마리아의 동정 잉태와 평생을 동정을 지키며 사셨다는 신념은 예수님의 신성을 강조하기 위해 창작된 신화적 서술이 아니다. 그보다는 훨씬 깊고 심오한 두 가지 신앙적 의미가 담겨 있다.
첫째는 마리아의 동정 잉태는 예수님의 출생과 더불어 하느님의 새로운 창조가 시작되었음을 드러내는 표지였다. 이미 구약 성경의 창세기에는 인류가 태초에 하느님과 맺은 신뢰의 관계가 아담과 하와의 범죄로 인해 단절되었음을 전한다. 특히 범죄의 결과로 하와에게는 피할 수 없는 두 가지 고통의 현실이 주어졌다. 하나는 출산의 고통이고, 다른 하나는 남자에게 종속되는 현실이었다. “나는 네가 임신하여 커다란 고통을 겪게 하리라. 너는 괴로움 속에서 자식들을 낳으리라. 너는 네 남편을 갈망하고 그는 너의 주인이 되리라.”(창세 3, 16) 하지만 예수님이 선포하신 하느님 나라의 새로운 질서 속에는 인간에게 내려진 형벌이 축복으로 바뀌는 새로운 창조질서가 시작된다. 한 아이를 잉태하고 출산하는 일은 남녀의 사랑과 신뢰 속에서 하느님의 창조 사업에 협력하는 일이 되며, 남녀는 혼인과 더불어 서로에게 종속되는 것이 아니라 한 가정을 이루면서 신뢰와 사랑 속에서 참된 일치와 평화를 희망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두 번째는 마리아의 동정성이 가진 의미이다. 우리 시대에는 과거처럼 생물학적인 동정을 지킨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닌 게 되었다. 물론 개인적인 신념의 차이는 있겠지만 혼인을 했던 하지 않았던 동정을 지키며 산다는 것은 생물학적 순결을 넘어 영적인 순결을 포괄하는 것을 뜻한다. 즉 동정이란 순수함, 열정, 젊음과 아름다움, 인내를 뜻하는 광범위한 개념에 속한다. 마리아가 동정녀라는 사실은 그녀가 하느님의 섭리를 자신의 생애를 거쳐 마음 속 깊이 간직하면서 하느님의 구원 역사에 적극적으로 협력했음을 표현한다. 그리고 그러한 신념을 하느님은 처녀 잉태로부터 출산과 전 생애를 거쳐 지켜주셨음을 드러낸다. 마리아는 자신 안에서 이루어진 하느님의 섭리가 성령의 업적임을 확신했고,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루카 1, 38)라고 기도할 수 있었다. 마리아는 비록 자신이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다가와도 그 모든 일들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곰곰이 되새기면서(루카 2, 51) 한결 같은 마음으로 하느님의 뜻에 자신을 맡겼다. 한 마디로 마리아가 평생 동정을 지켰다는 점은 마리아가 자발적으로 하느님의 구원 사업에 협력하면서 온전한 한 인격체로서 자신 안에서 드러난 하느님의 의지에 자신의 전 육체까지도 봉헌하는 신앙의 완전한 응답이었다고 볼 수 있다.
우리 시대가 겪고 있는 가장 큰 어려움은 인간의 능력을 넘어서는 하느님의 신비에 대한 경외감을 상실했다는 점과 인간이 하느님 앞에서 자신의 전 존재를 봉헌하는 데 육체적인 수행의 정신을 상실했다는 데 있다고 본다. 날로 세속화되는 세상 속에서 인간은 하느님 창조의 흔적을 지워버리고 인간 스스로 창조주가 되려는 유혹을 받고 있으며, 하느님의 피조물로서 지닌 영적 가치들과 갈망들을 포기하고, 동물적 본능과 육체적 탐욕에 빠지고 있다. 그리스도인은 마리아가 보여준 두 가지 깊은 신앙, 즉 하느님의 뜻에 자신을 종속시키는 거룩함의 체험과 영적 가치를 육체적인 욕망과 탐욕보다 더 소중하게 여기는 영적 봉헌을 되살릴 필요가 있다.
신앙이란 생각이나 느낌에서 머물지 않는다. 하느님께 대한 신앙은 말로만의 고백이 아니라 우리 자신을 하느님께 온전히 내 맡길 수 있는 종교적 수행을 필요로 한다. 마리아의 동정 잉태와 평생 동정녀로서의 삶은 우리 역시 하느님이 놀라운 방식으로 우리를 이끌고 계시다는 확신과 이에 맞게 우리들의 의지를 하느님께 봉헌하는 영적 수행의 삶을 되찾아야 한다는 점을 일깨워준다. 오늘날 동정성은 성직자와 수도자들에게만 주어진 덕행이 아니다. 혼인을 한 사람들도 배우자에게 신뢰를 약속하고 한결 같은 마음으로 평생 서로에 대한 열정과 아름다움을 지켜가는 것도 동정성을 지키는 것에 속한다. 이런 점에서 성모님이 보여주신 깊은 동정녀로서의 신앙은 우리 모두가 본받아 공경해야할 가치 있는 덕목임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송용민 신부
(인천교구 삼산동 성당 주임/인천가톨릭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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