돋보기 영성 5 - 11월호 원고
마리아, 하늘로 불러올림 받은 분
8월 15일이면 우리 민족의 광복절이자 해방의 기쁨을 기억하는 날이지만, 교회력으로는 성모님의 승천을 기념하는 대축일이기도 하다. 승천(昇天). 하늘로 오른다는 것은 현대인의 관점에서 보면 신화(神話)에나 나올 법한 이야기이다. 예수님의 승천은 그분이 구세주 그리스도로 영광을 드러내시는 신적인 현현(顯顯)이라고 할 수 있지만, 한 인간이었던 마리아가 하늘로 올라갔다는 사실은 믿음이 없는 사람은 그렇다 치고 성모님을 공경하는 가톨릭 신자들에게도 그다지 믿음이 가지 않는 이야기처럼 들린다.
만일 성모님의 승천교리를 신화적 사건으로 이해하는 사람이라면 가톨릭 교리도 예수님의 부활처럼 그저 믿을 교리이지 우리가 납득할 수 있는 이야기는 아닌 것으로 생각할 수 있겠다. 분명한 사실은 성모님의 원죄 없는 잉태 교리(1854년)와 마찬가지로 성모님의 승천 교리(1950년)는 최근에 와서야 믿을 교의로 결정된 점에 주목해야 한다. 이 말은 성모승천 교리 안에 분명히 오늘을 살고 있는 신앙인들에게 던져주는 강력한 메시지가 있음을 알려준다.
과거에는 성모님의 승천을 예수님의 승천과는 달리 피승천(被昇天, Assumption) 혹은 몽소(蒙召) 승천이라고 불렀다. 예수님은 당신이 하느님과 본질이 동일하시기 때문에 스스로 하늘로 오르시는 신성을 드러내시지만, 마리아는 한 인간으로서 하늘로 불러올림 받았다는 사실을 구분해서 말하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이런 구분 없이 성모승천이란 표현을 그냥 쓴다. 여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을 듯싶다.
우리 시대는 더 이상 신화적 사유 방식을 갖고 있지 않다. 신화(神話)란 말 그대로 “신들의 이야기”, 즉 인간이 갈망하고 희망하는 초월의 세계에 대한 신들에 관한 이야기를 말한다. 그리고 신화는 실제 신들의 역사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동경하는 신적인 존재들을 통해 인간이 겪는 생노병사의 비밀을 풀어내고자 한 것이다. 한 마디로 인간은 신적 존재들의 영향 속에서 살고 있고, 인간들의 나약함과 죄악은 신들의 도움 없이는 극복될 수 없다는 종교적 표현이 신화 속에 나타난다.
하지만 오늘날 현대인은 이런 신화를 믿지 않는다. 기술 과학이 인류의 정신문화를 지배하면서부터 인간은 계몽이란 이름으로 신(神)의 영역을 침범하기 시작했고, 신성을 철저하게 세상에서 벗어버리는 탈신화화(脫神話化) 과정을 거쳤다. 한마디로 우리는 신 없는 세상, 신의 도움 없이 인간의 기술과 과학혁명으로 모든 것을 해결해내는 세상을 이루고자 했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이러한 서구의 지적 교만은 두 차례에 걸친 세계 대전을 통해 얼마나 어리석은 것이었는지를 깨닫게 되었다. 하늘을 날 수 있는 비행기를 만드는 기술이 하늘 위에서 폭탄을 떨어뜨려 수없이 많은 사람들의 한 순간에 사라지게 하는 공포와 불안의 원인이 되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하늘은 철저하게 탈신화화 되었고, 과거 하늘을 향해 기도하고, 바라보던 인간의 종교적 신념은 무너졌다. 그리고 인간은 땅만을 바라보며, 땅을 차지하기 위해, 땅을 더 지배하고, 약탈하기 위해 온갖 기술과 탐욕을 땅에 쏟아 부었다. 그 결과 오늘날 대지는 몸살을 앓고 있고, 생태계의 파괴는 인간의 삶과 공존 자체를 위협하는 요소가 되었다. 오늘날에도 땅을 차지하기 위한 전쟁과 약탈이 자행되고, 땅을 빼앗기지 않기 위한 인간의 탐욕과 이기적인 사랑은 퍼져간다.
교회는 이런 시대의 소명에 하나의 종교적 응답을 줄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인간이 궁극적으로 자신을 완성하기 위해 땅만이 아니라 하늘을 바라봐야 한다는 것을 강하게 전달해야 했다. 승천은 이런 의미에서 신화적인 표현이 아니라, 인간이 갈망해야 하는 종교적 신념의 표상이다. 성모님께서 하늘로 오르셨다는 표현은 마리아가 신적 지위를 얻게 되었다는 말이 아니라, 한 인간이 마침내 돌아가야 할 곳은 영원한 하느님의 거처인 하늘이라는 사실을 전하는 것이다.
누가 뭐래도 하늘은 인간 모두에게 가장 강력한 초월성과 영원성, 보편성의 상징이다. 마리아는 자신의 전 생애가 하늘과 만물의 주인이신 하느님의 뜻에 의한 것임을 깨달았다. 그녀는 비록 예수님을 처녀로서 잉태하는 순간부터 자신을 통해 일어날 하느님의 놀라운 구원 섭리를 믿음으로 받아들였고, 예수의 어린 시절부터 공생활은 물론, 수난과 죽음, 부활과 승천에 이르는 파스카의 구원 신비를 몸으로 겪고, 눈으로 보고, 가슴으로 느꼈다. 아마도 세상 사람들 중에서 이토록 강력한 하느님의 구원의 현장을 직접 경험한 인간은 마리아 외에 없었을 것이다.
복음서는 마리아의 인격적인 면모를 자세하게 드러내지 않지만, 사도들과 초기 교부들은 마리아가 겪은 구원의 신비로부터 자라났고, 그분이 들려주시는 이야기를 통해 예수님 안에서 하느님께서 이루신 사랑과 구원을 깨닫게 되었다. 성모님께 대한 공경은 결코 만들어낸 신심이나 역사 안에서 선포된 교리 이야기가 아니라, 그리스도 신자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신앙의 영적 감수성(신앙 감각)으로부터 시작되었다.
가톨릭 교회가 성모님의 승천을 믿을 교리로 선포한 것은 마리아 공경에 대한 가톨릭 교회의 당위성을 드러내면서도, 우리 사회가 하늘 없이 땅만 바라보는 세속화된 세상 속에서 다시 하늘을 향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을 증거 하기 위해서였다. 한 인간이 하느님의 뜻에 따라 살 때 마침내 인간이 갈망하는 영원한 생명과 해방이 완성된다는 것을 마리아를 통해서 보여주고자 한 것이다. 비록 우리가 썩어 없어질 육체로 인해 완전한 자유와 해방을 세상에서 얻지 못하지만,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과 희망 속에서 사는 사람은 하느님의 특별한 은총으로 완전한 인간, 즉 부활할 새로운 육신을 얻고, 하느님을 마주보며 영원히 그분의 사랑 안에 머물 수 있게 된다는 신앙을 선포하고자 한 것이다.
성모 마리아의 승천은 우리들의 승천을 드러내는 예표이다. 우리도 언젠가는 마음의 고향이자 우리 생명의 원천이 하느님의 나라, 하늘로 돌아가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분의 나라에 들어가 하느님을 마주 뵐 수 있는 자격은 땅에 살면서도 하늘을 향해 살아가는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슬픔과 시련 속에서도 하느님께 희망을 거는 사람들, 세상의 가치와 행복보다 하늘의 가치와 행복 속에서 참된 사랑을 사는 사람들에게 있다.
성모님에 관한 교리들은 결코 마리아 자신에 관한 교리가 아니다. 그리스도 신앙 속에서만 이해될 수 있는 가르침에 속한다. 이른바 “진리들의 위계”라는 신학적 명제는 마리아 교리들이 그리스도 신앙의 기본 교리와는 차원이 다른 이야기임을 말해준다. 성모님의 승천 역시 우리들의 마지막 구원을 드러내고자 하는 진리의 또 다른 표현임을 명심해야 한다.
송용민 신부
(인천교구 삼산동 성당 주임/인천가톨릭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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