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을 재촉하는 비가 내린다.
유난히 길고 더웠던 여름도 이렇게 막을 내리나 보다. 비가 그치면 맑고 푸른 하늘에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고, 길가에는 코스모스가
흐드러지게 피어 바람에 살랑거릴 것이다. 가을바람에 가녀린 몸을 떨며 살살거리는 꽃, '살사리꽃'-. 그 이름을
아는가.
'살사리꽃'은 코스모스를 이르는 정겨운 우리말이다. 어릴 적 학교를 오가는 길에 길가에 늘어서 살랑거리며 우리를
맞아주던 꽃이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향수를 자아내는 신비로움이 있다. 바람이 불 때마다 살살거리는 모습에서 '살사리(살살이→살사리)꽃'이란
우리말 이름이 붙은 것으로 보인다.
코스모스(cosmos)는 멕시코가 원산지로 우리나라에는 개화기 때 외국 선교사가 들여와 파종한
뒤 널리 퍼졌다고 한다. 우리에게 너무나 친숙해져 있어 원래부터 이 땅에서 자라난 우리 꽃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살사리꽃'은 이처럼 바람에 살랑거리며 오가는 사람을 반갑게 맞이하는 모습까지 담고 있는 정겨운 말이다. '코스모스'란 단순한
이름에 비할 바 못 된다. 그러나 이 말이 널리 쓰이지 못하고 있는 것은 사전 때문이다. 표준국어대사전에는 '살사리꽃=코스모스의 잘못'이라고
간단하게 적혀 있다. 쓰지 말라는 얘기다.
나로서는 학문적 깊이가 없어 '살사리꽃'을 사투리도 아니고 간단히 코스모스의 잘못이라
올린 이유를 모른다. 하지만 이런 식이라면 '해바라기'는 선플라워(sunflower), '토끼풀'은 클로버(clover)로만 불러야 한다. 우리
정서가 고스란히 담긴 '살사리꽃'이 쓰이지 못할 이유가 없다.
오래도록 써 온 순수 우리말인 '알타리무(알무)'도
생명력을 잃었다는 이유를 들어 '총각(總角)무'로 표준어를 정해 사용하지 못하게 한 것도 비슷한 경우다. 외래어나 한자어에 밀려 순수
우리말이 하나 둘 사라지고 있는 현실에서 가능하면 우리말을 살려 쓰기는커녕 거꾸로 가는 예다.
'살사리꽃'-. 얼마나 정겨운
이름인가. 살려 쓸 수 있는 우리말은 찾아서 써야 한다. 이런 점에서 순 우리말을 살려 쓰고자 노력하는 문인들이 존경스럽다. 시를 하나
소개한다.
살사리꽃
-정소슬-
가을이 오면,
가슴속까지 을씨년스런
가을 저녁볕이 파고들면
가슴엔 온통 써늘한 황혼이 내리고,
작은 이슬방울 하나에도
소스라쳐 우는 풀벌레 소리처럼
서러움에 싹이 돋아
여름 내 비린 습기에 젖어 있던
가슴 곳곳에
천형의 비늘이 일어선다. 그러나
정작 그리움은
차마 겉으로 내
보이질 못하고
속으로만 타서
속으로만 타서
잎사귀가 말리고, 꽃잎마저 말리어
톨까지 가시 낱으로
까맣게
토라져 눕는
서정아 서정아, 가을 서정아
설운
가시ㅅ톨 살사리야!
배상복 기자 sbbae@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