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Lord/† 聖人들의 삶을 통해서

성녀 로살리아 (9월 4일) 동정

ohjulia 2005. 9. 4. 02:25
고향으로 , 성녀 로살리아
  

    성녀 로살리아 (St. Rosalia) 동정

    축일 : 9월 4일 성인의 활동지역 : 성인의 활동연도 : +1160년? 성인과 같은이름 : 로사리아, 로쌀리아 13세기부터 시칠리아(Sicilia)에서는 성녀 로살리아에 대한 공경이 보편화되었으나, 옛 순교록에는 그녀의 생애가 기록되어 있지 않다. 스틸팅 신부의 연구에 따르면 성녀 로살리아는 젊어서 고향을 떠나 시칠리아의 비보나 교외 몬테 코스키나의 어느 동굴에서 은수자로 살았다. 후일 그녀는 팔레르모(Palermo)에서 3마일 가량 떨어진 몬테 펠레그리노의 어느 움막에서 살다가 운명하였다. 그런데 스틸팅 신부는 코스키나의 동굴 속에서 다음의 글을 발견했다고 한다. “퀴스퀴나(Quisquina)의 영주인 시니발디(Sinibaldi) 백작과 로사의 딸인 나 로살리아는 주 예수께 대한 사랑 때문에 이 동굴에서 살기로 결심하였다.” 또 다른 유물에는 그녀가 베네딕토회 수녀로 되어 있다. 팔레르모에 페스트가 유행했을 때 그녀가 이 도시의 주민을 구했기 때문에, 팔레르모 주민들은 그녀를 자신들의 수호성인으로 공경하며 그녀의 은둔소 위에 큰 성당을 세웠다. ***************************************************************************** 1624년 이탈리아의 팔레르모 시에는 무서운 페스트가 발생하여 어떠한 치료 수단도 효과 없이 희생자가 속출했으며 사람들도 매우 불안했다. 사람들은 하느님의 도우심 외에는 구할 길이 없다하여 모든 성인의 호칭 기도를 외우며 시가행진을 했는데, 이상하게도 마치 주님의 묵시나 받은 듯이 제각기 다른 길로 열지어 가는 성가대원들이 성녀 로살리아의 이름을 호칭 기도문에 덧붙여 노래했다. 더구나 이상한 것은 이 행렬이 끝나자 그처럼 맹위를 떨치던 열병도 즉각 멈추었다는 것이다. 로살리아는 어렸을 때에 부친과 같이 팔레르모에 와서 부친이 왕궁에서 근무하는 동안, 그녀는 왕비 마르가리타의 총애를 받아 그 감독 하에 좋은 교육을 받았다. 성년이 되어 어떤 귀족에게 출가시키려는 무렵 로살리아는 돌연 종적을 감추었다. 그녀는 우선 어떤 수녀원에 숨었다가 곧 인기척 없는 동굴 속에서 살았다. 그 소재지를 안 사람을 왕비 마르가리타 뿐이었으며, 그녀는 더 조용한 장소를 로살리아에게 택하여 주며 일생을 그 곳에서 지내도록 했다. 로살리아는 기도와 묵상으로 세월을 보냈다. 비바람을 가릴 만한 집이 페레그리노 산 위에 있었는데, 때때로 한 신부가 찾아와 그곳에서 미사를 지내 주었다. 로살리아가 아무도 모르는 이런 산중에서 일생을 마쳤으므로 그녀의 죽음과 묘지를 안 사람도 극히 드물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그녀의 묘소와 그녀의 이름을 세상에 알리셨다. 팔레르모에서 시가행렬이 끝난 후였다. 성녀는 어떤 노인에게 나타나서 "페레그리노 산에 가 보세요, 거기에 내 무덤이 있습니다"했다. 노인이 가보니 과연 가르쳐 준 장소에 무덤이 하나 있었다. 그래서 무덤을 헤쳐보니 한 부인의 시체가 나왔다. 생전의 모습 그대로였다. 그러나 과연 성녀 로살리아의 시체인가? 이런 의문을 둘러싸고 의사와 신부들이 면밀한 조사를 한 결과 거의 틀림없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는데, 여기서 새로운 증거가 나타났다. 즉 묘지의 동굴 속에서 발견된 돌 한개에는 성녀 자신이 새겼는지 혹은 다른 사람이 새겼는지 다음과 같은 글이 기록되어 있었다. "퀴스퀴나 및 로제스의 영주 시니발도의 영양 로살리아는 하느님의 사랑을 위해 동굴에 거처하기로 정했다." 팔레르모 시민들은 즉시 그녀를 주보 성녀로 결정했다. 성녀가 살던 곳에는 아름다운 성당을 건립하고, 주교좌 성당 옆에는 조그마한 성당을 세워 그곳에 성녀의 유해를 안치했다. 성녀 로살리아는 팔레르모 시민의 신뢰를 어기지 않고 주보로서의 임무를 다했다. 우선 전술한 페스트 종식을 시작으로 1693년의 대지진 때에도 구원의 손을 뻗쳐 다른 도시 촌락에서는 수많은 사상자가 났었지만 팔레르모 시민만은 그 참화를 면했다. 그 뒤 성녀 로살리아에게 대한 흠모는 각국에까지 퍼졌고, 특히 페스트와 지진에 대한 구원의 성녀로 공경을 받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