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실의 계절 가을, 청명한 햇살이 눈부신 9월의 끝자락에 ‘이 시대의 큰 어른’ 김수환 추기경을 만났다. 우리 사회가 위기에 맞서 있을 때마다 김 추기경은 그것을 헤쳐 나갈 하느님의 지혜를 우리에게 전해주곤 했다. 종교계를 비롯한 시민단체들과 뜻있는 이들이 배아의 생명권에 대한 침해와 복제 인간의 우려 등으로 배아줄기세포 연구에 반대했지만, 질병 치료와 과학 발전, 국가 경쟁력 강화 등을 이유로 황우석 박사의 배아줄기세포 연구 성과에 대해 많은 이들이 지지와 관심을 표명해왔다. 학자로서 생명윤리를 전공하고 주교회의에서 다양한 생명운동을 이끌었던 가톨릭신문사 사장 이창영 신부가 생명의 위기에 직면한 우리 사회의 나아갈 길을 묻고자 김추기경을 만났다. “돌이켜보면, 어렵고 힘들었지만 혼자서 기사 쓰고 외신 번역하며 열정적으로 일했던 그 때가 참으로 가장 큰 보람을 느꼈고, 결코 잊을 수 없는 시절이었다”고 말했다. 불리우던 황우석 박사 연구팀의 배아줄기세포 연구에 대해 추기경님께서는 어떤 의견을 갖고 계시는지요. 진심으로 경의를 표하고 싶습니다. 우리 사회와 국민들이 그분들의 노고에 크게 힘입고 있는 것을 저는 잘 알고 있습니다. 특히 황우석 박사님은 여러 가지 논란에도 불구하고, 전세계적으로도 유명한, 뛰어난 과학자로 알고 있습니다. 제가 참으로 안타깝게 여기는 부분입니다. 이미 한국교회 안에서는 여러 주교님들과 윤리학자들이 배아줄기세포 연구에 대해 적절한 반대 의견을 많이 주셨고, 공청회나 언론을 통해서도 그러한 의견과 입장들은 누차 알려진 것이니까, 제가 특별히 더 말씀드릴 것은 별로 없을 것입니다. 인간 배아는 명백하게 하나의 존엄한 인간 생명입니다. 따라서, 배아를 파괴하는 배아줄기세포 연구는 올바르지 않으며, 이제 단연코 중단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훗날, 배아줄기세포 연구가 인류의 질병 퇴치를 위한 옳은 길이었음이 밝혀질 것이라고 말합니다. 배아를 생명이라고 말하는 것은 종교적 신념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자연법적 이치에 맞는 일이고, 과학적으로도 타당합니다. 실제로 많은 과학자들은 인간 생명의 시작은 정자와 난자의 수정 순간부터라고 말합니다. 교회는 살인하지 말라고 가르칩니다. 낙태도 살인이니까 해서는 안된다고 합니다. 그것은 편협한 종교적 입장이 아닙니다. 모든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하느님의 ‘계명’입니다. 인간 배아를 해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은 교리나 종교적 신념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라면 누구나 지켜야 하는 근본적이고 보편적인 윤리 도덕에 속합니다. 가톨릭 교회와 개신교 교회가 함께 헌법소원을 제출한 상황입니다. 헌법소원의 핵심은 배아줄기세포 연구는 인간 생명을 파괴하는 것이므로 금지돼야 한다는 것입니다. 곧 그 판결이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데, 이 법률에 대한 추기경님의 견해는 어떤 것인지요. 하지만 법이 잘못됐다면 고쳐야 하겠지요. 앞서 말한대로, 이 법률이 인간 배아 연구를 허용하고 있다면, 그것은 원래의 법 취지와는 많은 거리가 있을 것입니다. 만약 어떤 법이 인권 중에서도 가장 근본적인 권리, 즉 인간의 생명권을 침해한다면, 그 법은 아주 결정적인 잘못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과제로 놓여있습니다. 추기경님께서는 현재 우리 사회에 생명윤리와 관련해 어떤 문제들이 가장 시급한 과제로 놓여있다고 생각하시는지요. 낙태만 해도 우리나라는 세계에서도 낙태율이 가장 높은 나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인공수정은 이미 너무나 일반화 되어서 그것이 윤리적으로 문제점을 안고 있다는데 대해 신자들도 잘 알지 못합니다. 저는 그런 지적이 아주 적절하다고 생각합니다. 인간 생명을 가볍게 여길 때, 그 사회는 더 이상 소외된 이들에 대한 관심도,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동정심도, 이웃에 대한 사랑도, 모두 잃어버리고 맙니다. 그것이 가장 시급한 과제입니다. 제가 마산교구장으로 임명되기 직전에 이 분을 알게 됐는데, 원래 개신교 신자였다가 저를 만난 얼마 뒤에 가톨릭 신자로 입교를 했습니다. 자신의 사형 집행이 임박해서, 그 자리에 참석한 모든 이들에게 말하기를, “하느님을 믿으십시오. 나중에 죽어서 진정한 하느님의 한 형제자매로 다시 만납시다”라고 간절하게 호소했습니다. 행동에 깊은 감명을 받았고, 그래서 지금까지 사형폐지 운동에 기꺼이 함께 하게 됐습니다. 한국교회는 지금까지 이러한 소명을 얼마나 열심히 실천해왔는지, 혹시 부족했던 점은 없는지 말씀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모자보건법 폐지, 사형제도 폐지 운동, 가정 살리기, 낙태 반대 운동 등등 교회의 생명운동은 생명이신 그리스도를 따르는 하느님 백성으로서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아쉬움이 있습니다. 교회의 윤리적인 가르침들에 대해 교회안의 신자들까지도 귀를 기울이지 않는 현실은 매우 심각한 것입니다. 우리 신자들 조차 지키지 않는 윤리적 지침들을 어떻게 비신자들에게, 일반 국민들을 향해 얘기할 수 있겠습니까. 아무리 엄청난 것을 준다 하더라도 자기 생명과 맞바꿀 만큼 큰 가치를 가진 것은 없습니다. “온 세상 모든 것을 다 얻는다 해도 자기 생명을 잃으면 무슨 소용이냐”(마르 8, 36~37)고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나의 생명과 다른 이의 생명이 똑같이 소중한 것임을 우리는 결코 잊어서는 안됩니다. 어떻게 그 생명을 실험실 안에서 파괴하는 연구를 계속하는 것이 온당하겠습니까. 옳은 길이 있는데, 왜 굳이 비윤리적이고 반생명적인 길을 걸어가야 합니까. 요즘 들어 성체줄기세포 연구에 대한 관심이 많이 높아지고 있는 것은 매우 바람직한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우리 사회의 가치관이, 생명의 존엄성이 무너져 내리면 그것을 회복하는 것은 매우 어렵습니다. 당장 눈에 보이지 않더라도, 우리 사회가 올바른 사회가 되도록 지탱해주는 생명의 가치를 수호해야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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