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때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허리에 띠를 띠고 등불들 켜 놓고 준비하고 있어라. 마치 혼인 잔치에서
돌아오는 주인이 문을 두드리면 곧 열어 주려고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처럼 되어라.
주인이 돌아왔을 때 깨어 있다가 주인을 맞이하는 종들은 행복하다.
그 주인은 띠를 띠고 그들을 식탁에 앉히고 곁에 와서 시중을 들어 줄 것이다.
주인이 밤중에 오든 새벽녘에 오든 준비하고 있다가 주인을 맞이하는 종들은
얼마나 행복하겠느냐?"
(루가 12,35-38)
≪기도는 기다림... ≫
하느님의 축복은 한정되어 있는 것일까?
이사악이 야곱에게 준 축복을 에사오에게는 나누어줄 수 없었던 것처럼.(창세 27,'37)
그러고 보면 세상만사는 평형저울의 원리란 말인가?
승자의 영광 뒤에는 반드시 패자의 눈물이 있듯이.
얼마 전 말기암으로 투병중인 한 젊은 엄마의 치유를 위해 여기저기 기도를 청한 일이
있다. 공교롭게도 기도 부탁을 받은 할머니 한 분은 그 다음날로 발가락에 금이 가서
꼼짝도 못하고 깁스를 하고 있다면서 전화로 환자의 병세부터 묻는 게 아닌가.
그런데 희한하게도 환자는 조금 차도가 있어 산책까지 하고 왔다는 소식이다.
그렇구나, 누군가의 행복을 위해서는 다른 누군가의 희생이 필요하구나.
인간에게는 귀소본능이나 절대의존 감정 외에도 수평유지 본능이 있다고 한다.
누군가 부를 누릴 때 다른 누군가는 굶주려야 하며, 많이 배운 사람이 있으면 못 배운
한을 안고 사는 사람이 있으며, 누군가의 웃음 뒤에 누군가의 슬픔이 있으며, 누군가의
행복을 위해 그 누군가는 불행을 짊어져야 한다는 말인가?
빛이 있으면 그림자가 따르는 게 필연이듯이.
그렇다면 지금이라도 수평을 유지하기 위해서 건강한 이는 병약한 이를 위해,
부유한 이는 빈한한 이를 위해, 명예를 누리는 이는 무력한 이를 위해 헌신하지 않으면
안 된다. 반대로 강자가 약자를 짓누르고 유식한 자가 무능한 자를 배척하는 일은
없어져야 한다. 오히려 그들을 존경하고 감사하며 나누는 게 순리인 것 같다.
누구든 많이 주신 사람에게는 많이 요구하실 것이고, 많이 맡기신 사람에게는 더욱더
청할 것이라는 주님 말씀의 의미를 깨달을 은혜를 구해야겠다.
미사 때마다 주님을 모시는 우리는 과연 어떠한 자세로 그분을 맞이하고 있습니까?
우리는 언젠가 그분 앞에 서게 될 것입니다.
그분께서 언제 어떻게 오실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를 구원하러 오시는 주님을 맞을 준비를 하며 늘 깨어 있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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