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Lord/† 聖人들의 삶을 통해서

안티오키아의 성 이냐시오 (10월 17일) 주교 , 순교자 , 저술가

ohjulia 2005. 10. 17. 00:56
고향으로 ,  안티오키아의 성 이냐시오
  

    안티오키아의 성 이냐시오 (St. IGNATIUS) 주교 , 순교자 , 저술가

    축일 : 10월 17일 성인의 활동지역 : 안티오키아(Antiochia) 성인의 활동연도 : +107년 성인과 같은이름 : 이그나티오, 이그나티우스, 이냐시우스 초창기의 교부이자 순교자로 일명 ‘테오포로스’(Theophoros, bearer of God)라고도 불리는 성 이냐시오의 생애는 별로 알려진 것이 없다. 아마도 그는 시리아 출신인 듯하며, 성 요한(Joannes)의 제자였음이 분명하고 개종자이다. 그는 사도 베드로(Petrus)에 의하여 안티오키아 교회의 제2대 혹은 제3대 주교로 임명되어 축성되었다. 전설에 의하면 이냐시오는 40년 동안 교회를 다스리다가 트라야누스 황제의 그리스도교 박해 때에 체포되어 로마(Rome)로 이송되었다. 그를 호송하던 배는 소아시아 연안을 거쳐 그리스를 통과하여 마침내 로마에 당도하였다. 그의 배가 정박하는 곳마다 그리스도인들의 환영을 받았으나 호송 책임자는 그를 아주 잔인하게 대하였다고 한다. 그는 그 당시 어느 공식 경기의 마지막 날인 12월 20일 로마의 원형 극장에서 사자의 밥이 되어 장렬하게 순교하였다. 그는 로마로 끌려오는 동안에 여러 통의 편지를 썼고, 스미르나(Smyrna, 오늘날 터키의 이즈미르, Izmir)에 잠시 머무는 동안에서 성 폴리카르푸스(Polycarpus)에게도 서한을 보내어 그리스도교 신앙을 보전하라고 권고하였다. 또 교회, 결혼, 삼위일체, 강생, 구속 그리고 성체성사에 관한 그의 교육적인 편지들은 초기 그리스도교 저서 가운데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역사적 문헌들이다. ********************************************************************************** 안티오키아의 주교, 초기 교회의 신학자. 시리아 출생으로 110년경 로마에서 순교하였다. 축일은 로마 전례력에서는 10월 17일. 희랍 정교회에서는 12월 20일. 그의 전반생은 알려져 있지 않은 데 안티오키아에서 개종한 뒤 그리스도 교인이란 명목으로 체포되어 사형언도를 받고 로마로 호송되었다. 호송 도중 스미르나에서 폴리카르포의 환영을 받았고 인근 교회에서도 문안자를 보내왔다. 이에 대한 답례로, 그는 스미르나에서 에페소, 마녜시아, 트랄레스교회 및 로마 교회로, 트로아스에서 필라델피아와 스미르나 교회, 폴리카르포에서 서간을 써 보냈다. 그의 서간은 7개의 진본이 전해진다. 로마인들에게 보낸 그의 편지는 사랑을 실천하고 있는 로마 교회에 대한 찬양이었고, 순교에 대한 갈망의 표현이었습니다. 성인은 순교를 그리스도에 대한 복종과 사랑에 의한 희생의 연장으로 봄으로써 순교자의 복음적 개념을 이루었습니다. 서간에서 가현설을 반박하여 그리스도의 참된 인성을 강조했고, 주교직에서 교회의 일치를 구체화 하였으며 그의 지역에서 군주제적 주교직을 관철시켰음을 알 수 있다. 그리스도가 아버지에게 했듯이 주교를 따르라고 했으며, 예수 그리스도가 있는 곳에 카톨릭 교회가 있는 것처럼 주교가 있는 곳에 교회가 있어야 한다고 하였다. 여기서 `카톨릭’이란 용어가 처음 사용되었다. 그는 사도 전통을 계승하는데는 실패했으나 사도 교부들 중 바울로의 사상과 요한의 사상을 결합하여 조화있게 발전시킨 독특한 실천 신학자로 평가된다. *가톨릭대사전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