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ily/★ 빠다킹 신부님과 새벽을..

시간 되시는 분들은 ..................잘 마칠 수 있도록 기도해주세요

ohjulia 2005. 10. 26. 06:09
2005년 10월 26일 연중 제30주간 수요일

제1독서 로마서 8,26-30
형제 여러분, 26 성령께서는 연약한 우리를 도와주십니다. 어떻게 기도해야 할지도 모르는 우리를 대신해서 말로 다 할 수 없을 만큼 깊이 탄식하시며 하느님께 간구해 주십니다. 27 이렇게 성령께서는 하느님의 뜻을 따라 성도들을 대신해서 간구해 주십니다. 그리고 마음속까지도 꿰뚫어 보시는 하느님께서는 그러한 성령의 생각을 잘 아십니다.
28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들 곧 하느님의 계획에 따라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에게는 모든 일이 서로 작용해서 좋은 결과를 이룬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29 하느님께서는 이미 오래전에 택하신 사람들이 당신의 아들과 같은 모습을 가지도록 미리 정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께서는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셨습니다. 30 하느님께서는 미리 정하신 사람들을 불러 주시고 부르신 사람들을 당신과 올바른 관계에 놓아 주시고, 당신과 올바른 관계를 가진 사람들을 영광스럽게 해 주셨습니다.


복음 루가 13,22-30
그때에 22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길에 여러 동네와 마을에 들러서 가르치셨다.
23 그런데 어떤 사람이 “선생님, 구원받을 사람은 얼마 안 되겠지요?” 하고 물었다.
예수께서 사람들에게 이렇게 대답하셨다. 24 “사실 많은 사람들이 구원의 문으로 들어가려고 하겠지만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그러니 좁은 문으로 들어가도록 있는 힘을 다하여라.
25 집주인이 일어나서 문을 닫아 버린 뒤에는 너희가 밖에 서서 문을 두드리며 ‘주인님, 문을 열어 주십시오.' 하고 아무리 졸라도 주인은 ‘너희가 어디서 온 사람들인지 나는 모른다.'고 할 것이다.
26 그래서 너희가 ‘저희가 먹고 마실 때에 주인님도 같이 계시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우리 동네에서 가르치시지 않았습니까?' 해도 27 주인은 ‘너희가 어디서 온 사람들인지 나는 모른다. 악을 일삼는 자들아, 모두 물러가라.' 하고 대답할 것이다.
28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야곱과 모든 예언자들은 다 하느님 나라에 있는데 너희만 밖에 쫓겨나 있는 것을 보게 되면 거기서 가슴을 치며 통곡할 것이다.
29 그러나 사방에서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어 하느님 나라의 잔치에 참석할 것이다. 30 지금은 꼴찌지만 첫째가 되고 지금은 첫째지만 꼴찌가 될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한 부부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남편은 매일 새벽 3시가 넘어서야 겨우 집에 들어오는 것이었어요. 하루도 아니고 매일같이 새벽에 들어오는 남편의 모습을 보다 못한 아내가 남편에게 바가지를 긁기 시작했습니다. 남편은 아내가 아무리 화를 내고, 앙탈을 부려 봐도 아무 대답도 하지를 않는 것입니다.

이렇게 아예 답하지 않는 남편 때문에 더 화가 머리끝까지 난 아내가 소리치면서 말합니다.

“당신 정말 너무 하는 거 아니에요? 왜 매일 3시가 넘어서야 꾸역꾸역 집에 기어 들어오는지 그 이유나 좀 말해 보세요!”

그러자 묵묵히 아내의 말을 듣고 있던 남편이 귀찮다는 듯이 이렇게 말합니다.

“지금 이 시간에 문 여는 데는 이 집밖에 없어서 들어온다. 왜~”

여러분이 생각하는 가정이 혹시 이 남편이 생각하는 것처럼 어쩔 수 없이 들어가는 가정은 아니겠지요? 그런데 우리들의 삶 안에서 이렇게 이기적인 마음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는 것입니다. 하긴 저 역시 그런 생각과 행동을 할 때가 많더군요.

오늘은 인천교구 신부들이 모여서 바자회를 여는 날입니다. 2년 전에 바자회를 성황리에 마치고, 이번에 제2회 사제단 바자회를 엽니다. 이 바자회의 물건들은 다른 사람들의 물건들이 아닌 신부들 자신이 그동안 간직하고 있는 물건들로, 여기의 모든 수익은 사회의 사각에 위치하고 있는 차상위 계층의 어려운 이웃을 위해서 쓰여 질 것입니다. 그러한 목적을 가지고서 신부들이 물건을 내었고, 저 역시 물건을 내기 위해 집을 이러 저리 뒤지면서 찾아보았습니다. 그런데 이런 마음이 드는 것입니다.

‘이것은 비싼 건데(솔직히 그렇게 비싼 물건도 아닙니다).... 나중에 다시 보고 싶은 책인데(이렇게 말하지만, 예전에 보고서 한 번도 다시 보지 않았습니다)...’

사실 내게 있든, 있지 않든, 전혀 상관없는 물건이건만 선택의 기로에서는 갈등이 생기더라는 것입니다. 이것 역시 하나의 욕심이며 이기적인 마음이 아닐까 싶네요.

앞선 이야기에 등장하는 남편과 저처럼 이기적인 마음을 간직하는 우리들에게 주님께서는 복음을 통해서 힘주어서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구원의 문으로 들어가려고 하겠지만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그러니 좁은 문으로 들어가도록 있는 힘을 다하여라.”

구원으로 들어가는 문은 좁은 문이라고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들어갈 수가 없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어떤 사람이 들어갈 수 있을까요?

겸손하지 못한 이기적인 사람이 들어갈 수 있을까요? 남을 미워하고 판단하는 사람이 들어갈까요? 이 세상의 것만을 추구하면서 그것들을 첫째 자리에 두고 사는 사람이 들어갈까요?

아니지요. 우리들은 어떤 사람이 그 좁은 문에 들어가는지 이미 알고 있습니다. 주님의 계명인 사랑을 철저하게 지키는 사람. 그래서 주님 마음에 쏙 드는 사람만이 그 좁은 문에, 즉 구원의 문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 문 안에 들어가는 사람이 바로 내가 될 수 있도록 오늘도 열심히 살아봅시다.


시간 되시는 분들은 사제단 바자회 가보세요. 시간이 안 되시는 분은 바자회가 잘 마칠 수 있도록 기도해주세요.



큰 돌과 작은 돌('좋은 글' 중에서)

두 여인이 노인 앞에 가르침을 받으러 왔다.

한 여인은 자신이 젊었을 때 남편을 바꾼 일에 대해 괴로워 하면서 스스로를 용서받을 수 없는 큰 죄인으로 여기고 있었다.

그러나, 또 한 여인은 인생을 살아오면서 도덕적으로 큰 죄를 짓지 않았기에 어느 정도 만족하고 있었다.

노인은 한 여인에게는 큰 돌 열 개를 또 다른 한 여인에게는 작은 돌 여러개를 가져오라고 했다.

두 여인이 돌을 가져오자 노인은 들고 왔던 돌을 다시 제자리에 두고 오라고 했다.

큰 돌을 들고왔던 여인은 쉽게 제자리에 갖다 놓았지만, 여러 개의 작은 돌을 주워온 여인은 원래의 자리를 일일이 기억해낼 수가 없었다.

노인은 말했다.

"죄라는 것도 마찬가지요. 크고 무거운 돌은 어디에서 가져 왔는지 기억할 수 있어 제자리에 갖다 놓을 수 있으나, 수 많은 작은 돌들은 원래의 자리를 잊었으므로 다시 가져다 놓을 수가 없는 것이오.

큰 돌을 가져온 당신은 한때 당신이 지은 죄를 기억하고 양심의 가책에 겸허하게 견디어 왔으나, 작은 돌을 가져온 당신은 비록 하찮은 것 같아도 당신이 지은 작은 죄들을 모두 잊고 살아온 것이오.

그리고는 뉘우침도 없이 죄의 나날을 보내는 일에 익숙해졌소.

당신은 다른 사람의 죄는 이것 저것 말하면서 자기가 죄에 더욱 깊이 빠져 있는 것은 모르고 있지요. 인생은 바로 이런 것이라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