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ring/떠나고 싶어서

때론 선비처럼, 때론 시인처럼

ohjulia 2005. 11. 14. 01:59

[여행]때론 선비처럼, 때론 시인처럼

뉴스메이커 633호



여행코스

안동간고등어 공장→오천유적지→도산서원→이육사문학관→숙박→병산서원→하회마을→옥연정→부용대


소설가 최인호씨가 ‘유림’이라는 소설을 집필했다는 기사를 접했다. 기사에 이퇴계선생과 이율곡선생이 등장했다. 갑자기 안동지방으로 여행을 떠나고 싶다는 생각에 길을 나섰다. 그러나 장마철. 만종분기점에서부터 쏟아지기 시작한 비는 죽령터널을 빠져나가서도 계속됐다. 도산서원을 답사하고 하회마을을 돌아보려던 계획을 수정해야만 한다. 이렇게 비가 주룩주룩 내릴 때는 실내에서 사람을 만나는 것이 어울린다.

안동의 특산품이 무엇인가. 바로 안동간고등어다. 간잽이 이동삼씨에게 연락을 취한 다음 그가 일하는 공장을 찾아간다. 중앙고속도로 남안동나들목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그의 일터가 있다. 처음 만나는 사이인데도 친숙하게만 느껴진다. 그가 이미 매스컴에 널리 알려진 인물이고 홈쇼핑에서도 얼굴을 내밀었던 장인이기 때문일까.

국내 최고의 간잽이답게 그는 무명 바지저고리에 패랭이를 썼다. 짚신 대신 신은 장화만 아니었다면 조선 말기 경북 지방을 떠도는 부보상이나 저잣거리를 찾아다니는 장돌뱅이로 봐도 크게 틀리지 않았을 것이다. 이동삼씨는 열다섯 살부터 고등어 비린내로 온몸을 적셔가며 어물전에서 심부름을 한 인물. 곁눈질로 고등어에 소금을 뿌리는 간잽이 일을 익혔다. 그게 벌써 50년의 세월로 이어졌다.

“집안이 찢어지게 가난했고 초등학교도 못 들어간 일자무식이라 이 일만 했소. 그렇게 고생한 보람이 있는지 이제는 전국 각지에서 솜씨를 인정해주는기라.”

그를 따라다니며 부산 어시장에서 들여온 고등어가 간고등어로 탄생하는 전 과정을 구경한다. 현재 이씨는 공장장이란 직책을 맡고 있어 모든 고등어에 직접 소금 간을 하진 않는다. 안동간고등어가 유명해지다 보니 비슷한 업체가 10개 정도 생겼고 고속도로 휴게소는 물론 기차 안에서도 판매된다. 그의 손을 거친 간고등어 포장지에는 그의 사인과 얼굴 사진이 인쇄되어 있다.

이동삼씨와 헤어지고 점심은 국도변 남안동휴게소에서 간고등어를 곁들인 백반으로 먹는다. 그리 짜지 않으면서도 고소한 간고등어 맛이 무더위와 장마철 습기로 달아난 입맛을 살려준다. 이제 안동의 문화유산들을 만나볼 차례다. 안동시내를 지나 도산서원으로 향한다. 봉화군으로 이어지는 35번 국도변에는 노란 국화과 꽃들이 줄지어 피었다. 어느 휴양림에선가, 그곳 직원에게서 들은 바로는 꽃이름이 ‘블랙 아이즈 수전’이었다. 그러나 동행한 후배는 ‘루드베키아’라고 말한다. 어느 이름이 맞는지 알 수는 없지만 88올림픽에 맞춰 국내에 들여온 외래종인 것만은 분명하다. 이 꽃은 특히 강원도 길가에 많다.

와룡면 소재지를 지난 뒤 오천유적지부터 들른다. 안동시의 명소 치고는 그리 널리 알려지지 않은 곳이라 안내문 일부를 옮겨 적는다.

‘이곳은 조선시대 초기부터 광산 김씨 예안파가 약 20대에 걸쳐 600여년 동안 세거해온 마을로 세칭 오천군자리라 불리는 유적지다. 이곳 건물들은 1974년 안동댐 건설로 수몰지역에 있는 문화재를 구예안면 오천리에서 집단 이전하여 원형 그대로 보존한 것이다.’

방문객이 드문 곳이기에 조용히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 고가의 분위기에 푹 젖어볼 수 있다. 침락정에서 후조당까지 한 바퀴 돌고 나면 절로 헛기침이 터지고 양반걸음이 나온다. ‘이리 오너라’ 한번 외쳐보고 싶기도 하나 설월당 앞 느티나무 밑에 서면 그 위용에 압도돼 입을 다문다. 광산 김씨 집안 사람들은 나무 밑에 기념동판을 만들어두었다. 이 나무는 나무이면서 역사이며 정신이라고, 그들은 기록하고 있다. 애초 이 나무는 수몰되기 전 옛 마을에 있었으나 마을이 사라지자 옛 집들과 함께 이곳으로 옮겨왔고 다행히도 생명을 부지, 오늘처럼 무성하게 가지를 드리워 여행객들에게 시원한 그늘을 제공한다.

이제 도산서원을 만난다. 해동주자로 추앙받던 퇴계 이황선생이 서당을 짓고 유생들을 가르치던 신성한 공간. 서원 안에서 가장 오래 된 도산서당 마루에 앉는다. 앞에는 연꽃 피어나는 연못이요 뒤는 섬초롱꽃 피어나는 꽃밭이다. 바람 솔솔 불어 이마의 땀을 씻어주고 청명한 개구리 울음소리가 피로를 풀어준다. 전교당에 오르자 한 무리의 사람들이 공부를 하고 있다. 플래카드를 보니 사단법인 도산서원 선비문화수련원에서 주최하는 ‘선비문화 체험연수’다.

마루 끄트머리에 앉아 잠시 강의를 엿듣는다. 강사는 삼보컴퓨터를 창업한 이용태회장. 그러고 보니 이회장은 퇴계선생 집안 사람이다. 체험여행이 날로 주가를 올리는 시대. 선비체험이라면 사찰체험 못지 않게 도시에서 거주하는 성인들에게는 잘 어울리는 프로일 듯싶다.

잠시 잠깐 선비 대열 속에 들어갔다가 서원을 빠져나와 퇴계종택과 이육사문학관으로 향한다. 종택 가는 길에 담배꽃이 만발한 것을 보았다. 나팔꽃처럼 생긴 것들이 무리를 지어 피니 제법 모양이 예쁘다. 꽃은 이리도 아름답거늘 잎 말린 것은 왜 그리도 해로운가. 또 사람들은 뭐가 아쉬워 그런 담배와 인연을 못 끊는가. 이육사 생가터와 문학관에 가서는 ‘청포도’라는 대표작을 다시 감상했다. “내 고장 칠월은 청포도가 익어가는 시절 이 마을 전설이 주저리주저리 열리고….” 그날 밤 물안개가 자욱하게 깔린 안동댐 근방을 찾아가 한번 더 간고등어정식으로 저녁식사를 했다. 안동소주가 곁들여진 밥상이다.

이튿날은 병산서원부터 찾아간다. 서원 앞 낙동강에는 물안개가 자욱해서 신비롭다. 서원 누마루에 올라 심호흡을 하며 서애 유성룡의 생애를 잠시 더듬어본다. 인근 민박집에서 하룻밤을 보낸 부부는 누마루에 올라와 요가인지, 기 수련인지 열심히 몸을 움직인다. 여름이면 빨간 배롱나무꽃(백일홍)이 아름답게 피어나는 병산서원은 도산서원에 비해 훨씬 더 친근한 공간이다. 비포장 길도 달려야 하고 서원이 들어선 자리가 다소 널찍한 탓일까. 아니면 백일홍 때문일까.

이제 하회마을을 볼 차례다. 평일 안동여행에 나섰기에 하회별신굿탈놀이를 볼 수 없다는 점이 못내 아쉽다. 탈놀이는 5월부터 10월 사이에는 매주 토요일과 일요일 오후 3시부터 1시간 정도 공연된다. 그간 하회마을 내부는 여러 차례 걸어봤던 터라 이번에는 강 건너편 부용대에 올라 마을 전경을 감상하기로 한다. 부용대에서 하회마을을 바라볼 때 왼쪽에는 옥연정, 오른쪽에는 겸암정이라는 문화유적지가 있다. 옥연정에서 부용대까지 오르는 길은 짧지만 가파르고 겸암정에서 오르는 길은 완만하지만 길다. 말 그대로 부용대에 올라서면 낙동강 물이 태극 모양으로 하회마을을 휘감아도는 진면목을 감상할 수 있다.

◆여행메모(지역번호 054)

안동시청 관광진흥 담당 851-6393. 하회마을 관리사무소 854-3669. 안동시외버스터미널 857-8298. ㈜안동간고등어 공장 859-0571.
맛집 양반밥상(간고등어정식, 855-9900), 까치구멍집(헛제사밥, 821-1056), 옥류정(헛제사밥, 854-8844), 현대찜닭(854-0137), 유진찜닭(854-6019) 등.
숙박 안동파크관광호텔(859-1500) 등.


글·사진/유연태<여행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