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Lord/† 聖人들의 삶을 통해서

성녀 체칠리아 (11월 22일) 동정 순교자

ohjulia 2005. 11. 22. 09:58
고향으로 ,  성녀 체칠리아
  

    성녀 체칠리아 (St.Cecilia) 동정 순교자

    축일 : 11월 22일 성인의 활동지역 : 로마(Rome) 성인의 활동연도 : c.117(230?) 성인과 같은이름 : 세실리아, 쎄실리아, 카이킬리아, 케킬리아 귀족 가문 태생으로 체칠리라고도 알려진 성녀 체칠리아(Caecilia)는 로마(Rome)에서 태어났으며 그리스도인으로 교육을 받으며 성장하였다. 그녀는 자신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성 발레리아누스(Valerianus)와 결혼하였으나, 남편으로 하여금 자신의 동정을 존중해 주도록 확신시켰고 마침내는 그리스도인으로 개종시켰다. 또한 남편의 형제인 성 티부르티우스(Tibrutius)를 개종시키는 놀라운 열성을 보였다. 발레리아누스와 티부르티우스는 그때부터 늘 자선 활동에 전념하다가 순교하였다. 그들이 행정관인 알마키우스(Almachius) 앞으로 끌려가 이교도 신전에 희생 제물을 바치라는 강요를 거절하자, 심한 매질을 당하고 로마 근교 파구스 트리피오에서 성 막시무스(Maximus)와 함께 참수형을 받아 순교하였다. 막시무스는 발레리아누스와 티부르티우스가 보여준 그리스도께 대한 굳은 신앙을 보고 감화를 받아 그리스도인이 되었다가 순교한 것이다. 체칠리아(Caecilia)는 이 세 명의 순교자들(축일 4월 14일)을 장례지낸 다음 체포되었다. 그녀는 용감하게 알마키우스와 논쟁하였으며, 행정관은 도저히 체칠리아의 신앙을 꺾을 수 없다고 생각하자 사형을 언도하였다. 질식사시키려던 그녀의 사형 집행이 기적적으로 중단되었을 때, 한 군인이 그녀의 목을 베도록 선발되었다. 그가 맡은 일을 서투르게 처리해서 그녀는 3일 동안이나 누워 있다가 9월 16일에 운명하였다. 성녀 체칠리아에 대한 공경은 수세기를 통하여 교회 안에서 보편화되었고, 그녀의 행적들이 수많은 전설이 되어 전해 내려오고 있다. 그러나 그녀의 순교 연대는 정확하지 않다. 티부르티우스를 비롯한 다른 성인들은 세베루스 알렉산데르(Severus Alexander, 225-235년 재위) 황제 치하에서 순교하였다고 로마 순교록에 기록되어 있으므로 어느 정도 추정할 수는 있다. 체칠리아는 음악과 음악인들의 수호성인이다. 그 이유는 그녀의 결혼식 때 그녀는 결혼 음악과 환호하는 소리들을 듣지 못하였고, 오히려 그녀의 내심으로만 하느님을 찬양하는 노래를 불렀다고 생각하기 때문인 듯하다. 그녀의 문장은 오르간이다. 체칠리아는 로마의 순교자들 가운데서 가장 유명한 사람 중 하나이지만 그녀에 대한 이야기들이 정확한 자료에 근거하지 않는다는 것은 분명하다. 초대 교회가 그녀에게 바친 영예에 대한 흔적은 아무것도 없다. 4세기 후반의 단편적인 기록이 그녀의 이름을 딴 교회를 언급하고 있고 그녀의 축일은 적어도 545년에 와서 경축되었다. 전설에 따르면, 체칠리아는 발레리아노라는 로마인과 약혼한 높은 신분의 젊은 그리스도인이었다고 한다. 그녀의 영향으로 발레리아노도 개종하고 그의 형제와 함께 순교했다. 체칠리아의 죽음에 관한 전설은 칼로 그녀의 목을 세 번이나 친 뒤에도 3일 동안이나 살아 있다가 교황에게 자기 집을 교회로 바꾸어 주기를 청하고 죽었다고 한다. 문예 부흥기 이후 그녀는 흔히 비올라나 작은 오르간을 연주하는 모습으로 묘사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