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ily/★ 빠다킹 신부님과 새벽을..

사랑의 관점에서 사람들을 바라봅시다.

ohjulia 2006. 1. 17. 07:38
2006년 1월 17일 성 안토니오 아빠스 기념일

제1독서
사무엘 상권 16,1-13
그 무렵 1 주님께서 사무엘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언제까지 이렇게 슬퍼하고만 있을 셈이냐? 나는 이미 사울을 이스라엘의 임금 자리에서 밀어냈다. 그러니 기름을 뿔에 채워 가지고 떠나라. 내가 너를 베들레헴 사람 이사이에게 보낸다. 내가 친히 그의 아들 가운데에서 임금이 될 사람을 하나 보아 두었다.” 2 사무엘이 여쭈었다. “제가 어떻게 갑니까? 사울이 그 소식을 들으면 저를 죽이려고 할 것입니다.” 그러자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암송아지 한 마리를 끌고 가서, ‘주님께 제사를 드리러 왔다.’고 하여라. 3 그러면서 이사이를 제사에 초청하여라. 그다음에 네가 할 일을 내가 알려 주겠다. 너는 내가 일러 주는 이에게 나를 위하여 기름을 부어라.”
4 사무엘은 주님께서 이르시는 대로 하였다. 그가 베들레헴에 다다르자 그 성읍의 원로들이 떨면서 그를 맞았다. 그들은 “좋은 일로 오시는 겁니까?” 하고 물었다. 5 사무엘이 대답하였다. “물론 좋은 일이지요. 나는 주님께 제사를 드리러 온 것이오. 그러니 몸을 거룩하게 하고 제사를 드리러 함께 갑시다.” 사무엘은 이사이와 그의 아들들을 거룩하게 한 다음 그들을 제사에 초청하였다.
6 그들이 왔을 때 사무엘은 엘리압을 보고, ‘주님의 기름부음받은이가 바로 주님 앞에 서 있구나.’ 하고 생각하였다. 7 그러나 주님께서는 사무엘에게 말씀하셨다. “겉모습이나 키 큰 것만 보아서는 안 된다. 나는 이미 그를 배척하였다. 나는 사람들처럼 보지 않는다. 사람들은 눈에 들어오는 대로 보지만 주님은 마음을 본다.” 8 다음으로 이사이는 아비나답을 불러 사무엘 앞으로 지나가게 하였다. 그러나 사무엘은 “이 아이도 주님께서 뽑으신 이가 아니오.” 하였다. 9 이사이가 다시 삼마를 지나가게 하였지만, 사무엘은 “이 아이도 주님께서 뽑으신 이가 아니오.” 하였다. 10 이렇게 이사이가 아들 일곱을 사무엘 앞으로 지나가게 하였으나, 사무엘은 이사이에게 “이들 가운데에는 주님께서 뽑으신 이가 없소.” 하였다.
11 사무엘이 이사이에게 “아들들이 다 모인 겁니까?” 하고 묻자, 이사이는 “막내가 아직 남아 있지만, 지금 양을 치고 있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사무엘이 이사이에게 말하였다. “사람을 보내 데려오시오. 그가 여기 올 때까지 우리는 식탁에 앉을 수가 없소.” 12 그래서 이사이는 사람을 보내어 그를 데려왔다. 그는 볼이 불그레하고 눈매가 아름다운 잘생긴 아이였다. 주님께서 “바로 이 아이다. 일어나 이 아이에게 기름을 부어라.” 하고 말씀하셨다. 13 사무엘은 기름이 담긴 뿔을 들고 형들 한가운데에서 그에게 기름을 부었다. 그러자 주님의 영이 다윗에게 들이닥쳐 그날부터 줄곧 그에게 머물렀다. 사무엘은 그곳을 떠나 라마로 갔다.


복음 마르코 2,23-28

23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밀밭 사이를 질러가시게 되었다. 그런데 그분의 제자들이 길을 내고 가면서 밀 이삭을 뜯기 시작하였다. 24 바리사이들이 예수님께 말하였다. “보십시오, 저들은 어째서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합니까?”25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다윗과 그 일행이 먹을 것이 없어 배가 고팠을 때, 다윗이 어떻게 하였는지 너희는 읽어 본 적이 없느냐? 26 에브야타르 대사제 때에 그가 하느님의 집에 들어가, 사제가 아니면 먹어서는 안 되는 제사 빵을 먹고 함께 있는 이들에게도 주지 않았느냐?”
27 이어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생긴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생긴 것은 아니다. 28 그러므로 사람의 아들은 또한 안식일의 주인이다.”





제 방 입구에는 커다란 봉지에 담겨있는 뻥튀기 과자가 있습니다. 그 양이 얼마나 많으냐면 한 달을 내내 그 뻥튀기만 먹어도 될 정도입니다. 저는 이 뻥튀기를 주로 성지에 오시는 분들에게, 그리고 사제관 앞의 탁자에서 쉬시는 분에게 뻥튀기를 제공합니다(지금은 제가 한달 피정 관계로 바빠서 제공하고 있지 못합니다). 그런데 문득 이 뻥튀기 과자를 바라보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 모습은 이렇게 크지만, 이 뻥튀기를 만들기 위해서 필요한 옥수수의 양은 얼마 되지 않을텐데…….’

바로 뻥튀기 기계에 들어가서 ‘뻥’하면서 터지는 순간, 그 조그마한 옥수수들이 몇 십 배의 크기로 부풀러 지는 것이지요. 그런데 어쩌면 주님의 말씀도 이렇지 않을까요? 사실 주님께서 우리에게 하신 말씀은 아주 간단한 것이었습니다.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

사랑의 계명 뿐 이었던 것이지요. 그런데 인간들은 이 사랑의 계명에 각종 조항을 붙여 놓았습니다. 즉, 옥수수 알갱이와 같은 크고 단단한 주님의 말씀을 뻥튀기 과자처럼 몇 백 개의 조항으로 불려 놓은 것입니다. 그리고 그 뻥튀기 과자와 같이 부풀려진 조항들이 바로 주님의 말씀이라고, 이것 하나라도 어기면 큰 일 난다고 하면서 사람들을 구속하기 시작합니다. 바로 그런 모습이 오늘 복음에서도 그대로 드러나지요.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안식일에 밀 이삭을 뜯어 먹는 제자들의 모습을 보고서는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될 일을 하고 있다고 예수님께 고발합니다. 사실 생각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지나가면서 배가 고파 길에 있는 밀 이삭을 뜯어 먹은 것이 그렇게 큰 죄일까요? 하지만 이들의 생각은 달랐지요. 밀 이삭을 뜯은 것이 바로 추수의 행위이고, 그래서 그들은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될 일을 했다는 것입니다. 사랑의 계명을 확대 해석하고 있는 바리사이파 사람의 모습입니다.

이러한 완고한 모습을 보신 예수님께서는 더 중요한 것은 법 자체가 아니라, 인간을 사랑하는 수단으로 법을 사용해야한다고 말씀하시지요. 그래서 안식일은 사람을 위해서 있는 것이라고 분명하게 밝히십니다.

모든 법의 기본은 ‘사랑’입니다. 이 사랑에 기준에서 보면, 아주 간단해집니다. 하지만 사랑이 아니라 ‘구속’의 관점에서 보면, 아주 복잡해집니다. 그리고 누구나 이 구속의 관점에서 빠져나올 구멍은 하나도 없어 보입니다.

지금 내가 외치고 있는 법의 기준은 무엇일까요? 사랑인가요? 구속인가요?

이제 더 이상 우리들의 잘못된 판단으로 크고 단단한 주님의 말씀이 뻥튀기처럼 알맹이 없이 부풀려지지 않았으면 하네요.


사랑의 관점에서 사람들을 바라봅시다.



남의 말을 들어줄 수 있는 이유(최복현, '세상살이' 중에서)

오리 두 마리와 개구리 한 마리가 어느 연못에서 오순도순 살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여름이 되어 그 연못은 마르기 시작하자 이들은 물이 있는 곳을 찾아 떠나기로 했습니다. 그러나 오리는 날아가면 되지만 개구리는 날아갈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오리 두마리가 막대기 양끝을 물고 개구리는 막대기의 가운데를 물고 가기로 한 것입니다. 그런 모습을 본 어느 농부가 감탄해서 소리쳤습니다.

"야,너희들 참 똑똑하구나!그런데 그 아이디어는 누가 낸 거냐?"

그때,농부의 칭찬을 듣고 있던 개구리는 참지못하고 '내가요'라고 말을 해버렸습니다. 그와 동시에 개구리는 이미 밑으로 떨어지고 있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우리 인간은 말을 듣기보다는 말을 하기를 더 좋아하는 습성이 있는 것 같습니다.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서는 누구나 많은 이야기를 하고 싶어합니다. 그런데 그 자리에서 보면 유독 남의 말은 잘 들으려 하지 않고 자기 말만 하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일수록 남에게 인정받고 칭찬 듣기를 무척 좋아합니다. 그럼에도 누군가가 칭찬을 해주지 않으면 자기 자랑을 늘어놓으려 합니다. 그러다 보면 자찬이 그 정도를 넘어 소위 말하는 뻥이 되고 마는 경우를 보게 됩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내 말을 많이 하기보다는 남의 말을 들어주는 배려와 미덕이 필요합니다.

칭찬 듣기를 즐기기 보다는 자신의 단점을 들추어내는 말을 들어 주려는 겸손함이 필요합니다.

자신의 장점이나 자기 칭찬을 말하고 즐기기보다는 그런 칭찬을 들을수록 말을 오히려 아끼며 칭찬을 듣는 것이 타당한지 스스로 반성하는 신중함을 가져야합니다.

사람들은 대개 겸손한 사람을 환영합니다. 말을 많이 하다 보면 실수가 많아지게 마련이고 자신이 내뱉은 말이 족쇄가 되기도 합니다.

참으로 말 많은 세상을 살면서 스스로 한 말로 족쇄를 차지 않고 말이라는 감옥에 갇혀 혼자 되는 삶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언제 어디서 만나도 부담을 느끼지 않고 환영받을 수 있도록 내가 말을 하기보다는 남의 말을 들어줄 줄 아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정말 너무 외로워서 간절히 말하고 싶지만 말할 상대가 없는 이들을 찾아가 귀기울여 들어줄 수 있는 마음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