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독서 사무엘 하권
6,12ㄴ-15.17-19 그 무렵 12 다윗은 기뻐하며 오벳 에돔의 집에서 다윗 성으로 하느님의 궤를 모시고 올라갔다. 13 주님의 궤를 멘 이들이 여섯
걸음을 옮기자, 다윗은 황소와 살진 송아지를 제물로 바쳤다. 14 다윗은 아마포 에폿을 입고, 온 힘을 다하여 주님 앞에서 춤을 추었다.
15 다윗과 온 이스라엘 집안은 함성을 올리고 나팔을 불며, 주님의 궤를 모시고 올라갔다. 17 그들은 다윗이 미리 쳐 둔 천막
안 제자리에 주님의 궤를 옮겨 놓았다. 그러고 나서 다윗은 주님 앞에 번제물과 친교 제물을 바쳤다. 18 다윗은 번제물과 친교 제물을 다 바친
다음에 만군의 주님의 이름으로 백성에게 축복하였다. 19 그는 온 백성에게, 남녀를 가리지 않고 이스라엘 모든 군중에게 빵 과자 하나와 대추야자
과자 하나, 그리고 건포도 과자 한 뭉치씩을 나누어 주었다. 그 뒤 온 백성은 저마다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
복음 마르코
3,31-35 31
그때에 예수님의 어머니와 형제들이 왔다. 그들은 밖에 서서 사람을 보내어 예수님을 불렀다. 32 그분 둘레에는 군중이 앉아 있었는데, 사람들이
예수님께 “보십시오, 스승님의 어머님과 형제들과 누이들이 밖에서 스승님을 찾고 계십니다.” 하고 말하였다. 33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누가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냐?” 하고 반문하셨다. 34 그리고 당신 주위에 앉은 사람들을 둘러보시며 이르셨다. “이들이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다. 35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바로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
2006년이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저는 현재 불편한 마음을 가지고 있답니다. 사실 얼마 전
어머님 생신이셨음에도 불구하고 찾아뵙고 인사를 할 수가 없었습니다. 또 앞으로 며칠 뒤에는 설날인데, 그 날 역시 집에 가서 세배를 할 수가
없네요. 어쩌면 불효막심한 모습이라고도 말할 수 있겠지요. 그런데 지금 현재 한달 피정 중이기 때문에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즉, 성지에서의
미사를 끝내고 곧바로 신학교로 옮겨서 한 달 피정을 지도하기 때문에 도저히 짬을 낼 수가 없는 상황에 처해진 것입니다. 또한 성지 공사를
시작했기 때문에 더더욱 시간 내기가 힘들어 졌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은 전화와 꽃 배달 서비스를
통해 부족하게나마 저의 마음을 표현하는 것밖에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의 부모님은 저를 이해해 주십니다(약간 서운은 하시겠지요). 집에
관심을 갖는 것도 중요하지만, 교회에 충실한 모습을 더 옳다고 생각하시기 때문입니다.
만약 제게 주어진 교회의 일은 하나도 하지
않고, 부모님께만 충실하다면 어떨까요? 그래서 효도한다고 말을 들을지언정 교회에서 신부답지 않게 산다는 소리를 듣는다면 부모님께서 좋아하실까요?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제가 교회의 신부로 살고 있는 이상, 이 자리에서 더욱 더 충실한 모습으로 성실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원하실 것입니다.
이런 측면에서 오늘 복음 말씀을 이해하여 봅니다. 예수님의 어머니와 그 형제들이 예수님을 찾아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그
이야기를 듣고는 아주 매정한 말씀을 하십니다.
“누가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냐?”
아니 어떻게 이런 말을 할 수
있을까요?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가족을 생각하지 않는, 특히 어머니께서 서운해 하실 말까지도 서슴지 않고 하는 불효자식일까요?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못 박혀 돌아가시는 그 순간에도 어머니를 생각하시는 분이셨습니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매정해 보이는 말씀을 하셨을까요?
예수님께서는 더 중요한 것, 더 시급한 것을 먼저 행하셨던 것입니다. 즉, 어떤 세속적인 혈연이나 친분관계가 더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느님과의 관계가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말씀하시기 위해서, 어쩌면 매정한 말씀, 그래서 서운할 수도 있는 말씀을 하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성모님께서도 이렇게 더 중요한 하느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예수님을 기쁘게 받아주셨을 것입니다.
이제 우리들은 어떤 관계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지 생각해봐요. 혹시 혈연, 학연, 지연 등의 세속적인 관계만을 중요하게 여기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요. 그래서 정작
가장 중요하게 여겨야 하는 하느님과의 관계가 가장 마지막 자리에 놓여 있었던 것은 아닐까요?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바로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이다’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하면서 이제는 세속적인 관계가 아닌, 하느님의 뜻을 가장 먼저 실행함으로써 하나로 뭉쳐지는
우리들이 되었으면 합니다.
지금 내가 해야 할 일의
우선순위를 정해 봅시다.
당신은 어떤
사람입니까?('좋은 글' 중에서) 당근과 달걀 그리고 커피가 있습니다. 물이 담긴 세개의
냄비를 불위에 올려놓습니다. 첫번째 냄비에 당근을 두번째 냄비에는 계란을 넣고 세번째 냄비에는 커피를 넣습니다. 이 3개의
냄비를 15분동안 끓입니다.
이제 우리가 넣은 것들을 꺼내 봅시다. 당근은 들어갈때 딱딱했지만 물컹물컹해졌고 계란은
들어가기전에 부드러웠지만 단단해졌습니다. 그러나 커피는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습니다 대신 물은 색을 갖게 되었고 좋은 향이 납니다.
삶에 대해 생각해 봅시다. 인생은 언제나 쉽지만은 않습니다. 인생이 언제나 편할순 없습니다. 때론 너무 힘들기까지
합니다. 우리가 원하는 대로 일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사람들도 내가 바라는 것처럼 나를 대하지 않습니다. 열심히 일하지만
대가는 항상 작은것 같습니다.
3개의 냄비를 생각해 보세요 끓는 물은 우리 인생의 고난과도 같습니다
우리는
당근 처럼 될수 있습니다. 자신감 넘치고 힘차게 들어가지만 나올 때는 물렁하고 유약해 집니다 너무 힘들어 지치고 희망을
잃고 결국 포기 합니다. 맞서 싸울 투지를 잃게 됩니다. 당근처럼 되지 마십시오.
우리는 달걀처럼 될수도
있습니다. 시작할땐 부드럽고 감성적이지만 결국 무뚝뚝하고 무감각해집니다. 서로를 헐뜯고 우리 자신도 미워하고 감정이
무딘 사람이 됩니다. 따뜻한 감정은 온데간데 없고 결국 인생의 씁슬함만이 남습니다. 달걀처럼 되지 마십시오.
그러나 우리는 커피처럼 될수있습니다. 물은 커피가루를 변화시키지 않습니다. 커피가루가 물을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물은 커피로 인해 변화합니다.
보고.. 향을 맡고.. 마셔 보세요...
뜨거울수록 맛은
더 좋아집니다. 우리는 커피같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겪는 시련을 통해 더 나아질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항상 새로운 것을
배웁니다. 새로운 지식, 새로운 기술, 새로운 능력... 우리는 경험 속에서 성장하는 것입니다.
더 좋은 환경과
성공하기 위해 노력하고 또 노력해야 합니다. 우리가 하는 것에 신념을 가지고 포기하지 않으며 끈기있게 계속 밀고 나가야 합니다.
우리가 겪는 시련은 우리가 더 나아질 수 있는 절호의 기회입니다. 일이 잘 풀리지 않을때 당신은 어떤 사람입니까?
당근입니까 달걀입니까 커피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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