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독서 티모테오 2서 1,1-81 하느님의 뜻에 따라, 또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생명의
약속에 따라 그리스도 예수님의 사도가 된 바오로가, 2 사랑하는 아들 티모테오에게 인사합니다. 하느님 아버지와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님에게서
은총과 자비와 평화가 내리기를 빕니다. 3 나는 밤낮으로 기도할 때마다 끊임없이 그대를 생각하면서, 내가 조상들과 마찬가지로 깨끗한
양심으로 섬기는 하느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4 나는 그대의 눈물을 생각하면서 그대를 다시 볼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렇게 된다면 내가
기쁨으로 가득 찰 것입니다. 5 나는 그대 안에 있는 진실한 믿음을 기억합니다. 먼저 그대의 할머니 로이스와 어머니 에우니케에게 깃들어 있던 그
믿음이, 이제는 그대에게도 깃들어 있다고 확신합니다. 6 그러한 까닭에 나는 그대에게 상기시킵니다. 내 안수로 그대가 받은 하느님의
은사를 다시 불태우십시오. 7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비겁함의 영을 주신 것이 아니라, 힘과 사랑과 절제의 영을 주셨습니다. 8 그러므로 그대는
우리 주님을 위하여 증언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말고, 그분 때문에 수인이 된 나를 부끄러워하지 마십시오. 오히려 하느님의 힘에 의지하여 복음을
위한 고난에 동참하십시오.
복음
루카
10,1-9 그때에
1 주님께서는 다른 제자 일흔두 명을 지명하시어, 몸소 가시려는 모든 고을과 고장으로 당신에 앞서 둘씩 보내시며, 2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그러니 수확할 밭의 주인님께 일꾼들을 보내 주십사고 청하여라. 3 가거라. 나는 이제 양들을 이리 떼
가운데로 보내는 것처럼 너희를 보낸다. 4 돈주머니도 여행 보따리도 신발도 지니지 말고, 길에서 아무에게도 인사하지 마라. 5 어떤 집에
들어가거든 먼저 ‘이 집에 평화를 빕니다.’ 하고 말하여라. 6 그 집에 평화를 받을 사람이 있으면 너희의 평화가 그 사람 위에 머무르고,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되돌아올 것이다. 7 같은 집에 머무르면서 주는 것을 먹고 마셔라. 일꾼이 품삯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 이
집 저 집으로 옮겨 다니지 마라. 8 어떤 고을에 들어가든지 너희를 받아들이면 차려 주는 음식을 먹어라. 9 그곳 병자들을 고쳐 주며,
‘하느님의 나라가 여러분에게 가까이 왔습니다.’ 하고 말하여라.”
히틀러의 만행을 규탄하고 전 세계의 결속을 다짐하는 방송을 하기 위하여 처칠은 방송국으로 가야
했습니다. 거리에서 택시를 세운 그는, "BBC 방송국으로 갑시다." 라고 말했지요. 그러자 운전수는 뒤통수를 긁으며 이렇게 대꾸하는
것이었어요.
“죄송합니다. 손님. 다른 차를 이용해 주십시오. 저는 그렇게 멀리는 갈 수 없습니다.”
처칠은 바쁘기도
했지만, 영업을 하지 않으려는 그가 이상해서 물었습니다.
“어째서 그렇지요?”
운전수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예, 보통 때라면 어디까지라도 갑니다만, 오늘만은 안 됩니다. 한 시간 후부터 시작되는 윈스턴 처칠 경의 세계를 향한 방송을
들어야 합니다.”
이 말을 들은 처칠은 너무나 기분이 좋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아무 말 하지 않고 1파운드짜리 지폐를 꺼내서
운전사에게 건네주었지요. 그러자 운전사는 갑자기 표정이 굳어지더니만, 무엇인가를 결심한 듯이 힘차게 말합니다.
“어서 타십시오,
손님, 처칠이고 뭐고 우선 돈부터 벌고 봐야 되겠습니다.”
물론 처칠은 자신을 인정해주고 자신의 말을 경청해주려는 이 운전수가
마음에 들어서 1파운드짜리 지폐를 주려고 했었던 것이지요. 하지만 운전수는 ‘돈을 줄테니 빨리 가자’는 의미로 받아들였던 것입니다.
아무튼 이 모습을 보면서 우리 인간이 물질에 얼마나 쉽게 흔들리는지를 발견할 수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물질을 얻기
위해서는 때로는 자신의 신념까지도 과감하게 버리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그 과정 안에서 남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요? 신념이나 믿음까지도 버리면서
얻은 물질적인 것들이 과연 얼마나 의미 있을까요?
오늘 주님께서는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라고 말씀하십니다. 한번
생각해보세요. 우리 주변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있는지, 그런데도 불구하고 ‘일꾼이 적다’라고 하시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보통
일꾼을 뽑을 때, 아무 사람이나 쉽게 뽑지 않습니다. 주인이 나름대로의 기준을 세우고 그 기준에 딱 맞는 사람을 일꾼으로 채용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주인이신 주님께서 생각하시는 일꾼의 기준은 과연 무엇인가요? 바로 제자들을 세상에 파견하는 모습을 통해서 그 기준을 알 수 있지요.
“돈주머니도 여행 보따리도 신발도 지니고말고....”
일꾼의 기준은 이 세상의 물질적인 것들을 쫓지 않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진정한 평화를 세상에 전할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이러한 기준에서 우리들 가운데 ‘일꾼이 적다’라는 주님의 말씀이
비로소 이해될 수 있습니다. 비록 이 세상 안에 사람은 많을 지라도 세속적인 것들을 버리고서 당신을 따르려고 하는 사람이 그렇게 많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나는 과연 주님의 일꾼이 될 수 있을까요? 나 역시 주님의 사명을 받아서 세상에 평화를 전하기 위해서
파견되는 영광을 누릴 수 있을까요?
괜히 얼굴이 붉어지게 하는 질문들이네요…….
돈 이야기를 하지 말아봅시다.
찌빙글리와 염소('좋은
글' 중에서) 스위스의 훌륭한 학자요 지도자인 쯔빙글리는 어렸을 때 본 염소에게서 큰 교훈을 얻었습니다.
어느 날 쯔빙글리는 스위스의 산 위를 산보하고 있었습니다. 낭떠러지 위의 좁은 산길에 두 염소가 한 마리는 위로 올라가려 하고,
다른 한 마리는 아래로 내려가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워낙 좁은 길이라 서로 비켜 갈 수가 없어 뿔로 상대편 염소를 받아 밀어내려고 싸우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두 염소는 모두 낭떠러지 밑으로 떨어져버렸습니다.
얼마 후 쯔빙글리는 산보를 하다가 또 염소 두 마리가 같은
곳에서 마주치는 것을 보았습니다. 쯔빙글리는 이번에도 싸우다 떨어지면 어쩌나 걱정을 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번에는 싸우지 않았습니다. 한
염소가 그 자리에 엎드리자 다른 염소가 그 위를 밟고 넘어갔습니다. 그러자 엎드렸던 염소가 일어나 산 위로 올라갔습니다. 쯔빙글리는 이 염소들을
보고 크게 깨달았습니다.
"나도 저렇게 남에게 양보하자!"
지혜롭게 양보함으로써 서로를 돕는 기쁨을 알게 되었습니다.
평생 양보하며 살아간 쯔빙글리는 모든 사람에게 존경받는 훌륭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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