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ily/★ 빠다킹 신부님과 새벽을..

가족에게 사랑의 말을 전하도록 합시다.

ohjulia 2006. 1. 30. 06:13
2006년 1월 30일 연중 제4주간 월요일

제1독서 사무엘 하권 15,13-14.30; 16,5-13ㄱ

그 무렵 13 전령 하나가 다윗에게 와서 말하였다. “이스라엘 사람들의 마음이 압살롬에게 쏠렸습니다.” 14 다윗은 예루살렘에 있는 모든 신하에게 일렀다. “어서들 달아납시다. 잘못하다가는 우리가 압살롬에게서 빠져나갈 수 없을 것이오. 서둘러 떠나시오. 그러지 않으면 그가 서둘러 우리를 따라잡아 우리에게 재앙을 내리고, 칼날로 이 도성을 칠 것이오.”
30 다윗은 올리브 고개를 오르며 울었다. 그는 머리를 가리고 맨발로 걸었다. 그와 함께 있던 이들도 모두 제 머리를 가리고 울면서 계속 올라갔다.
16,5 다윗 임금이 바후림에 이르렀을 때였다. 사울 집안의 친척 가운데 한 사람이 그곳에서 나왔는데, 그의 이름은 게라의 아들 시므이였다. 그는 나오면서 저주를 퍼부었다. 6 온 백성과 모든 용사가 임금 좌우에 있는데도, 그는 다윗과 다윗 임금의 모든 신하에게 돌을 던졌다.
7 시므이는 이렇게 말하며 저주하였다. “꺼져라, 꺼져! 이 살인자야, 이 무뢰한아! 8 사울의 왕위를 차지한 너에게 주님께서 그 집안의 모든 피에 대한 책임을 돌리시고, 그 왕위를 네 아들 압살롬의 손에 넘겨주셨다. 너는 살인자다. 이제 재앙이 너에게 닥쳤구나.” 9 그때 츠루야의 아들 아비사이가 임금에게 말하였다. “이 죽은 개가 어찌 감히 저의 주군이신 임금님을 저주합니까? 가서 그의 머리를 베어 버리게 해 주십시오.” 10 그러나 임금은 “츠루야의 아들들이여, 그대들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소? 주님께서 다윗을 저주하라고 하시어 저자가 저주하는 것이라면, 어느 누가 ‘어찌하여 네가 그런 짓을 하느냐?’ 하고 말할 수 있겠소?” 11 그러면서 다윗이 아비사이와 모든 신하에게 일렀다. “내 배 속에서 나온 자식도 내 목숨을 노리는데, 하물며 이 벤야민 사람이야 오죽하겠소? 주님께서 그에게 명령하신 것이니 저주하게 내버려 두시오. 12 행여 주님께서 나의 불행을 보시고, 오늘 내리시는 저주를 선으로 갚아 주실지 누가 알겠소?” 13 다윗과 그 부하들이 길을 걸었다.


복음
마르코 5,1-20
그때에 1 예수님과 그분의 제자들은 호수 건너편 게라사인들의 지방으로 갔다. 2 예수님께서 배에서 내리시자마자, 더러운 영이 들린 사람이 무덤에서 나와 그분께 마주 왔다. 3 그는 무덤에서 살았는데, 어느 누구도 더 이상 그를 쇠사슬로 묶어 둘 수가 없었다. 4 이미 여러 번 족쇄와 쇠사슬로 묶어 두었으나, 그는 쇠사슬도 끊고 족쇄도 부수어 버려 아무도 그를 휘어잡을 수가 없었다. 5 그는 밤낮으로 무덤과 산에서 소리를 지르고 돌로 제 몸을 치곤 하였다.
6 그는 멀리서 예수님을 보고 달려와 그 앞에 엎드려 절하며, 7 큰 소리로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의 아들 예수님, 당신께서 저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하느님의 이름으로 당신께 말합니다. 저를 괴롭히지 말아 주십시오.” 하고 외쳤다. 8 예수님께서 그에게 “더러운 영아, 그 사람에게서 나가라.” 하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9 예수님께서 그에게 “네 이름이 무엇이냐?” 하고 물으시자, 그가 “제 이름은 군대입니다. 저희 수가 많기 때문입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10 그러고 나서 예수님께 자기들을 그 지방 밖으로 쫓아내지 말아 달라고 간곡히 청하였다.
11 마침 그곳 산 쪽에는 놓아 기르는 많은 돼지 떼가 있었다. 12 그래서 더러운 영들이 예수님께, “저희를 돼지들에게 보내시어 그 속으로 들어가게 해 주십시오.” 하고 청하였다. 13 예수님께서 허락하시니 더러운 영들이 나와 돼지들 속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이천 마리쯤 되는 돼지 떼가 호수를 향해 비탈을 내리 달려, 호수에 빠져 죽고 말았다.
14 돼지를 치던 이들이 달아나 그 고을과 여러 촌락에 알렸다. 사람들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보려고 왔다. 15 그들은 예수님께 와서 마귀 들렸던 사람, 곧 군대라는 마귀가 들렸던 사람이 옷을 입고 제정신으로 앉아 있는 것을 보고는 그만 겁이 났다. 16 그 일을 본 사람들이 마귀 들렸던 이와 돼지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그들에게 이야기해 주었다.
17 그러자 그들은 예수님께 저희 고장에서 떠나 주십사고 청하기 시작하였다.
18 그리하여 예수님께서 배에 오르시자, 마귀 들렸던 이가 예수님께 같이 있게 해 주십사고 청하였다. 19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허락하지 않으시고 그에게 말씀하셨다. “집으로 가족들에게 돌아가, 주님께서 너에게 해 주신 일과 자비를 베풀어 주신 일을 모두 알려라.” 20 그래서 그는 물러가, 예수님께서 자기에게 해 주신 모든 일을 데카폴리스 지방에 선포하기 시작하였다. 그러자 사람들이 모두 놀랐다.





한 번 이런 상황을 생각해보셨으면 합니다.

아들 내외와 함께 사는 부모님께서 외출을 하셨다가 낮에 집으로 돌아오셨습니다. 그런데 아들이 현관에서 부모에게 ‘쉿’ 하면서 입에 손을 대고 조용하라는 신호를 보내는 것이에요. 부모는 물어보지요. “왜 그러니?” 그러자 아들이 “아내가 지금 마루에서 자고 있어요.”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자, 이런 상황에서 여러분이 부모라면 어떻게 대응하시겠어요? 여러분들의 쉬운 선택을 위해서 객관식으로 문제를 내 드리지요.

1) 며느리가 너무 예쁘다. 미인은 잠꾸러기라고 하지 않던가? 따라서 이렇게 피부 미용하는 며느리가 예쁘지 않을 수가 없다.

2) 세상이 어떻게 이럴 수 있는가? 시부모님이 들어오면 당연히 나와서 맞이해야지. 그것도 모자라서 마루에서 어떻게 퍼질러 잘 수 있단 말인가?

3) 아들이 더 밉다. 부모 품을 떠나면 그만이라고 하더니만, 어떻게 며느리 편을 들 수 있는가? 당연히 깨워서 부모를 맞이할 수 있도록 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4) 아들이 기특하다. 한 남자로서 자신의 아내를 챙기는 그 모습이 너무나 멋있다.

아마 대부분이 2번이나 3번을 선택하시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런데 만약 며느리가 아니라 딸이라면 어떨까요? 1번을 선택하기는 뭐해도, 4번 정도를 선택하시지 않을까요? 맞아요. 어떤 상황에 있느냐에 따라서 자신의 처신도 달리지는 것이 우리들의 일반적인 모습이라는 것이지요.

오늘 복음에서도 그러한 모습이 등장하지요. 예수님께서는 마귀들을 돼지 속에 집어넣어 쫓아내십니다. 바로 마귀 들린 사람을 위한 행동이셨던 것이지요.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생겼습니다. 자신들이 키우던 돼지들이 모두 바닷물에 빠져 죽자, 이제 자기들에게 피해를 주지 말고 제발 좀 떠나달라고 청한다는 것입니다. 분명히 이들도 예수님께서 자기 고장에 온다고 했을 때 잔뜩 기대했을 것입니다. 좋은 말씀을 들을 수 있으며, 깜짝 놀랄만한 기적을 볼 수 있겠구나 하면서 얼마나 예수님을 기다렸을까요? 하지만 물질적인 피해를 입게 되자 곧바로 변합니다.

“우리 고장에서 떠나 주십시오.”

상황에 따라서 달라지는 이들의 모습들. 이들이 달라졌던 이유는 세속적인 기준에서 예수님을 받아들였기 때문이었습니다. 만약 이 사람들이 세속적인 기준인 물질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영혼의 성장을 따랐다면 과연 예수님을 쫓아내었을까요?

그렇다면 나의 모습은 어떤가요? 내가 오늘 복음에 나오는 돼지를 치는 사람의 입장이라면, 나의 이웃에게 들려있는 마귀를 쫓아내셨다는 이유만으로 감사의 마음을 가지고 기쁘게 예수님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세속적인 기준인 물질을 끊임없이 쫓고 있는 내 자신을 다시금 깨닫게 되지 않습니까?

이제는 세속적인 손해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영혼의 손해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우리가 될 것을 주님 앞에 약속해야 하겠습니다. 그래야 더 이상 주님을 내 곁에서 쫓아내지 않을 것입니다.


가족에게 사랑의 말을 전하도록 합시다.



오늘은 크림을 타시죠('국민일보 겨자씨' 중에서)

김천의 한 설렁탕집 이야기입니다.
그 집은 항상 최고의 재료를 썼습니다.
예수님이 드셔도 만족해 하실 설렁탕을 끓인다는 것이 집 주인의 목표였습니다.
그래서 주재료인 뼈와 고기는 물론 양념과 무,배추도 가장 좋은 것을 삽니다.

그런데 어느 날입니다. 국물이 뽀얗지 않고 누렇게 됐습니다.
24시간은 끓여야 되는데 큰일이다 싶어 뼈를 대주는 사람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저런 죄송합니다. 물건이 바뀌었나 봅니다. 사장님,오늘만 크림을 타시죠,”
크림을 타면 국물이 뽀얗게 된다는 것은 설렁탕집 주인도 익히 들어온 터였습니다.

그러나 결코 그럴 수는 없었습니다.
그는 크림을 타는 대신 가게문에 글을 하나 써 붙이기로 했습니다.
“오늘은 설렁탕 재료가 좋지 못해서 쉽니다. 죄송합니다.”
고객을 예수님처럼 모시는 이 정직한 마음과 주인의 행동은 많은 사람을 감동시켰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