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Lord/† 聖人들의 삶을 통해서

성녀 스콜라스티카 (2월 10일) 동정

ohjulia 2006. 2. 10. 05:39
고향으로 , 성녀 스콜라스티카
 

    성녀 스콜라스티카 (Saint Scholastica) 동정

    축일 : 2월 10일 성인의 활동연도 : 480-543년 성인과 같은이름 : 스꼴라스띠까, 스콜라스띠까 성녀 스콜라스티카는 수도원 창립자로서 유명한 성 베네딕토의 동생으로, 5세기말경 로마에서 태어났다. 어머니는 그녀의 출생 후 1년도 못 되어 세상을 떠났으므로 그녀는 오빠와 같이 아버지의 슬하에서 양육되어 어려서부터 하느님을 두려워하며, 공경하는 마음을 간직하면서 자라났다. 그리고 오빠 베네딕토가 세속의 소란함을 떠나 깊은 산속에 들어가서 엄격한 수도 생활을 시작한 후에도 그는 아직 아버지의 슬하에 머물러 있었다. 스콜라스티카는 아름다웠고 또한 부유한 가정이었으므로 나이가 차자, 많은 로마 청년 귀족들로부터 청혼을 받았지만, 그는 조금도 마음의 요동없이 그 혼담을 물리쳤다. 그 이유는 자기도 오빠와 같이 일생을 하느님께 봉헌하기를 원했기 때문이었다. 본래 신심이 두터웠던 아버지는 늙어서 의지할 만한 딸을 떠나 보내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지만, 종내 그의 열심에 탄복해 수도 생활을 허락하게 되었다. 스콜라스티카는 자기 몫인 재산을 빈민에게 분배해 주고, 오빠의 수도원이 있는 몬테 카시노에 작은 초막을 세우고 오빠의 지도하에 극기, 희생의 고행과 부단한 기도 생활을 시작했다. 그 후 점차 다른 열심한 여성들이 스콜라스티카의 덕을 사모해 모여와서 같이 수도 생활을 하게 되었으므로, 베네딕토는 산상의 자기 수도원에서 이미 실행해 온대로 여동생의 수도원에도 일정한 회칙을 정해 주기로 했다. 성녀 스콜라스티카는 이 회의 최초의 총장으로서 말과 행실로써 자매들에게 덕행의 길을 가르쳐 왔는데, 그 사랑의 온순함과 그 기도의 열심함과 모든 덕의 우월함은 자매들을 언제나 감동케 해 "저분은 참으로 천사지만 우리에게 신앙 생활의 모범을 주시기 위해 임시 인간의 모습을 취하고 계시는 분은 아닐까?"하고 말하게끔 되었다고 한다. 스콜라스티카는 1년에 한 번씩 베네딕토를 만나 자매들의 지도에 관한 주의를 받거나, 오빠의 유익한 담화를 들어 마음의 양식을 삼거나 하기로 결정하고 그 회합의 장소는 양 수도원의 중간쯤에 있는 작은 촌집으로 결정했다. 543년 2월 7일, 마침 성스러운 남매가 1년에 한 번 서로 만나려고 하는 그 날이었다. 스콜라스티카는 성령의 특별한 묵시를 받고 오래지 않아 자기가 세상을 떠나게 될 것을 알았다. 그러나 그것이 그녀에게 즐거움을 가져왔지 속으로도 슬픈 기분을 나게 하지 않았다. 그는 2, 3인의 자매를 데리고 오빠와 만나게 될 촌집 있는 데로 산길을 걸어갔다. 하늘은 맑게 개었고, 더구나 남쪽 유럽의 봄 날씨는 화사했으며, 뜰에도 목장에도 꽃이 만발하게 피어있었다. 산상의 수도원에서도 역시 2, 3인의 형제를 동반하고 베네딕토가 내려왔다. 스콜라스티카는 앞으로 이 세상에서는 다시 오빠를 만날 기회가 없으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러한 세상의 슬픈 점에 대해서는 일절 상관치 않고 다만 무궁무진한 천당의 행복에 대해서만 오빠와 이야기했다.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하늘나라에 대해 담화하고 있는 동안 어느덧 석양은 하늘을 빨갛게 물들이고 서산으로 사라져. 이별하기는 섭섭했지만 베네딕토는 어둡기 전에 산상의 수도원에 돌아가려고 일어섰다. 그러나 스콜라스티카는 그를 붙잡으며 좀더 천상 이야기를 해 주기를 간청하는 것이었다. 베네딕토는 대답하기를, "이미 아는 바와 같이 회의 규칙은 엄격하다. 오늘은 대단히 늦었으므로 서로 급히 수도원에 돌아가지 않으면 안된다." 했다. 스콜라스티카는 이별의 슬픔을 못 참는 듯이 얼굴을 땅에 대고 기도를 바쳤다. 그랬더니 지금까지 맑았던 하늘이 갑자기 흐려져 심한 폭풍우가 닥쳐왔다. 집이 떠나갈 정도의 바람 소리, 창에 부딪쳐 폭포와 같이 흐르는 폭우의 맹렬함에 막 집을 떠나려고 하던 베네딕토는 어이가 없는 듯 머뭇거렸다. 이러한 상태에서 그는 도저히 돌아갈 수 없다고 생각했다. 이를 본 스콜라스티카는 웃으면서 "자 보십시오. 오빠가 내 원의를 들어주지 않으므로 나는 지금 하느님께 기도를 바쳤습니다. 그러자 하느님께서는 즉시 내 기도를 들어 주셨습니다"하고 말했다. 이 기적에 베네딕토는 하느님의 성의가 우엇인가를 알고 그 날 밤은 그곳에 머물기로 하고, 그들은 성인의 행복과 천상의 환희 등에 대한 거룩한 화제로 하룻밤을 즐겁게 보냈다. 그 후 3일째 되는 날, 산상의 수도원의 한 방에서 기도에 몰두하고 있던 베네딕토가 얼핏 창 밖을 내다보니까 동생의 수도원에서 백색으로 빛나는 비둘기 한 마리가 바로 하늘로 날아 올라가는 것이 보였고 성령의 묵시를 받은 베네딕토는 즉시 비둘기가 동생의 영혼이고, 지금 천국으로 가는 것이라는 것을 확실히 알았다. 실제로 그와 같이 스콜라스티카는 특별한 아무 병도 없이 잠들 듯이 세상을 떠났던 것이다. 그후 40일도 못되어 성 베테딕토도 동생의 뒤를 따라 천국의 복락으로 들어갔다. (대구대교구홈에서) 성 베네딕투스(Benedictus)의 쌍둥이 누이동생인 성녀 스콜라스티카는 어릴 때부터 하느님께 봉헌한 사람으로 살아 왔으나, 아마도 부모의 집에서 늘 기거한 듯 보인다. 그 후 그녀는 몬테카시노(Monte Cassino)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살았는데, 혼자인지 아니면 공동체 생활을 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그 당시에 그녀는 일 년에 한두 번 정도 성 베네딕투스를 만난 것 같다. 교황 그레고리우스 1세(Gregorius I)가 쓴 “이탈리아 교부들의 생활과 기적에 관한 대화집” 33장에 의하면, 성 베네딕투스가 몬테카시노의 대수도원을 설립한 뒤 이곳에서 남쪽으로 약 8km 정도 떨어진 피우마롤라에 베네딕도 수녀원을 설립하여 누이동생인 스콜라스티카에게 맡겼다. 이로 인해 성녀는 베네딕토 수녀회의 첫 번째 수녀이자 원장이 되었다. 교황 성 대 그레고리우스 1세의 “대화집” 33장에는 이들 남매의 유명한 일화가 하나 전해 온다. 스콜라스티카 성녀가 마지막으로 베네딕투스 성인을 방문했을 때 성녀는 예년과 같이 수도원에 들어갈 수가 없었기 때문에, 베네딕투스 성인이 몇몇 수사들을 데리고 나와 수도원에서 약간 떨어진 어느 집에서 만났다. 그들은 만나서 늘 하던 대로 함께 기도하고 영적 담화를 나누었다. 밤이 되자 성녀는 오빠에게 다음날 아침까지 함께 있기를 간청하였으나 베네딕투스 성인은 수도회 규칙에 충실해야 한다며 거절하였다. 이에 성녀가 눈물을 흘리며 잠시 기도를 하자 곧 세찬 비바람이 몰아쳐서 베네딕투스 성인과 수사들은 밖으로 나갈 수가 없었다. 할 수 없이 그대로 머물게 된 베네딕투스 성인은 “누이야, 전능하신 하느님께서 너의 뜻을 허락하셨구나. 대체 네가 무엇을 했느냐?”고 물었고, 성녀는 “당신은 저의 말을 귀담아듣지 않았으나, 주님은 제 말을 귀담아들으셨습니다. 자, 이제 나가서 수도원으로 돌아가 보시지요.” 하고 대답하였다. 이렇게 해서 남매는 밤새도록 영적인 생활과 천상 생활의 기쁨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 마지막 만남이 있은 지 3일 후 성녀 스콜라스티카는 운명하였다. 베네딕투스 성인은 누이동생의 시신을 자신을 위해 몬테카시노 수도원 내에 마련해 두었던 무덤에 안장하였다고 한다. 성녀 스콜라스티카는 베네딕토 수녀회의 주보성녀로 공경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