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ily/★ 빠다킹 신부님과 새벽을..

“저는 믿습니다.” 이 말이 바로 나의 말이 될 수 있도록 해보세요.

ohjulia 2006. 2. 20. 09:17
2006년 2월 20일 연중 제7주간 월요일

제1독서
야고보서 3,13-18
사랑하는 여러분, 13 여러분 가운데 누가 지혜롭고 총명합니까? 그러한 사람은 지혜에서 오는 온유한 마음을 가지고 착하게 살아, 자기의 실천을 보여 주어야 합니다. 14 그러나 여러분이 마음속에 모진 시기와 이기심을 품고 있거든, 자만하거나 진리를 거슬러 거짓말을 하지 마십시오. 15 그러한 지혜는 위에서 내려오는 것이 아니라, 세속적이고 현세적이며 악마적인 것입니다. 16 시기와 이기심이 있는 곳에는 혼란과 온갖 악행도 있습니다.
17 그러나 위에서 오는 지혜는 먼저 순수하고, 그다음으로 평화롭고 관대하고 유순하며, 자비와 좋은 열매가 가득하고, 편견과 위선이 없습니다. 18 의로움의 열매는 평화를 이루는 이들을 위하여 평화 속에서 심어집니다.


복음 마르코 9,14-29
그때에 [예수님과 제자들이 산에서 내려와] 14 다른 제자들에게 가서 보니, 그 제자들이 군중에게 둘러싸여 율법 학자들과 논쟁하고 있었다. 15 마침 군중이 모두 예수님을 보고는 몹시 놀라며 달려와 인사하였다.
16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저들과 무슨 논쟁을 하느냐?” 하고 물으시자, 17 군중 가운데 한 사람이 대답하였다. “스승님, 벙어리 영이 들린 제 아들을 스승님께 데리고 왔습니다. 18 어디에서건 그 영이 아이를 사로잡기만 하면 거꾸러뜨립니다. 그러면 아이는 거품을 흘리고 이를 갈며 몸이 뻣뻣해집니다. 그래서 스승님의 제자들에게 저 영을 쫓아내 달라고 하였지만, 그들은 쫓아내지 못하였습니다.”
19 그러자 예수님께서, “아, 믿음이 없는 세대야! 내가 언제까지 너희 곁에 있어야 하느냐? 내가 언제까지 너희를 참아 주어야 한다는 말이냐? 아이를 내게 데려오너라.” 하고 그들에게 이르셨다. 20 그래서 사람들이 아이를 예수님께 데려왔다. 그 영은 예수님을 보자 곧바로 아이를 뒤흔들어 댔다. 아이는 땅에 쓰러져 거품을 흘리며 뒹굴었다.
21 예수님께서 그 아버지에게, “아이가 이렇게 된 지 얼마나 되었느냐?” 하고 물으시자 그가 대답하였다.
“어릴 적부터입니다. 22 저 영이 자주 아이를 죽이려고 불 속으로도, 물속으로도 내던졌습니다. 이제 하실 수 있으면 저희를 가엾이 여겨 도와주십시오.” 23 예수님께서 그에게 “‘하실 수 있으면’이 무슨 말이냐? 믿는 이에게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 하고 말씀하시자, 24 아이 아버지가 곧바로, “저는 믿습니다. 믿음이 없는 저를 도와주십시오.” 하고 외쳤다.
25 예수님께서는 군중이 떼를 지어 달려드는 것을 보시고 더러운 영을 꾸짖으며 말씀하셨다. “벙어리, 귀머거리 영아, 내가 너에게 명령한다. 그 아이에게서 나가라. 그리고 다시는 그에게 들어가지 마라.” 26 그러자 그 영이 소리를 지르며 아이를 마구 뒤흔들어 놓고 나가니, 아이는 죽은 것처럼 되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모두 “아이가 죽었구나.” 하였다.
27 그러나 예수님께서 아이의 손을 잡아 일으키시니 아이가 일어났다.
28 그 뒤에 예수님께서 집에 들어가셨을 때에 제자들이 그분께 따로, “어째서 저희는 그 영을 쫓아내지 못하였습니까?” 하고 물었다. 29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다. “그러한 것은 기도가 아니면 다른 어떤 방법으로도 나가게 할 수 없다.”




화가인 아버지가 어린 아들에게 말을 가르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방법으로는 자신이 화가이다 보니 직접 그림을 그려줌으로써 말을 깨닫도록 하게 하였지요. 즉, 비행기, 자동차, 호랑이, 코끼리 등등 열심히 그림을 그려 보여주면서 말을 가르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말을 배우던 아이는 아버지가 그리는 것이 신기했나 봐요. 그래서 따라 하다가 갑자기 아버지의 볼펜을 빼앗고는 자기가 직접 그림을 그리려고 합니다.

잘 그려질까요? 물론 아이는 잘 그리려고 애는 쓰지만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아이가 생각대로 좋은 그림을 그릴 리가 없겠지요. 그래서 아버지가 아이를 도와줍니다. 아이의 손을 붙잡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번에는 잘 그려졌을까요?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번에도 좋은 그림은 그려지지 않았답니다. 왜 그랬을까요?

그 이유는 아주 간단해요. 그것은 아이가 아버지의 손에 붙들린 자기 손에서 힘을 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만약 아버지의 손길에 자기 손을 맡겼다면 분명히 자신의 손에 쥐어 있는 볼펜을 통해서 멋진 그림이 그려지는 것을 볼 수가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자기가 해보겠다는 욕심 때문에 제대로 된 그림을 그릴 수가 없었던 것이지요.

어쩌면 주님께서는 우리들에게 이런 점을 원하시는 것은 아닐까요? 아직 완전하지 못한 내 힘을 빼고서 당신께 모든 것을 맡기라고, 내 안의 고집만을 부리지 말고 겸손한 마음으로 당신의 뜻을 좇으라고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어쩌면 앞선 그 아이처럼 하느님께서 우리의 손을 잡고 함께 그려주시겠다고 하는데도 불구하고 나의 욕심을 앞세워서 제대로 된 작품을 만들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요?

오늘 복음에서 악령 들린 아이의 아버지는 예수님께 아이를 고쳐달라고 이렇게 말합니다.

“하실 수 있으면 저희를 가엾이 여겨 도와주십시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하실 수 있으면’이 무슨 말이냐? 믿는 이에게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

바로 주님께서는 믿음만 있다면 어떤 상황에서도, 심지어는 불가능하다고 판단되는 상황에서도 가능한 상황으로 뒤바뀌어 질 수 있다고 하십니다. 그래서 실제로 그 믿음의 힘으로써 아이를 치유해 주십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들 안에서 좋은 작품이 나오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들의 손을 당신께서 직접 잡아 주셨습니다. 이제 좋은 작품을 만드는 비결은 아주 간단해졌습니다. 나의 온전하지 못한 힘을 쫙 빼고서 주님의 뜻에 나를 맡기기만 하면 됩니다. 그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이 믿음은 여러분이 상상하는 것보다도 더 놀라운 일을 가능하게 만들 것입니다.


“저는 믿습니다.” 이 말이 바로 나의 말이 될 수 있도록 해보세요.



단지 입술만으로(‘좋은 글’ 중에서)

너희는 나를 주인이라 부르면서도 나의 말에 순종치 않았고,

너희는 나를 빛이라 부르면서도 나를 찾지 않았고,

너희는 나를 길이라 부르면서도 그대로 걷지 않았고,

너희는 나를 생명이라 부르면서도 나를 소망하지 않았고,

너희는 나를 지혜라 부르면서도 나를 따르지 않았고,

너희는 나를 애인이라 부르면서도 나를 사랑하지 않았고,

너희는 나를 부하다고 하면서도 내게 요구하지 않았고,

너희는 나를 영원하다고 하면서도 나를 구하지 않았고,

너희는 나를 자비롭다고 하면서도 나를 신뢰하지 않았고,

너희는 나를 고귀하다고 하면서도 내게 예배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