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ily/★ 빠다킹 신부님과 새벽을..

포기하지 맙시다.

ohjulia 2006. 2. 22. 14:47
2006년 2월 22일 연중 제7주간 수요일

제1독서 베드로 1서 5,1-4

사랑하는 여러분, 1 나는 여러분 가운데에 있는 원로들에게 같은 원로로서, 또 그리스도께서 겪으신 고난의 증인이며 앞으로 나타날 영광에 동참할 사람으로서 권고합니다. 2 여러분 가운데에 있는 하느님의 양 떼를 잘 치십시오. 그들을 돌보되, 억지로 하지 말고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자진해서 하십시오. 부정한 이익을 탐내서 하지 말고 열성으로 하십시오. 3 여러분에게 맡겨진 이들을 위에서 지배하려고 하지 말고, 양 떼의 모범이 되십시오.
4 그러면 으뜸 목자께서 나타나실 때, 여러분은 시들지 않는 영광의 화관을 받을 것입니다.


복음 마태오 16,13-19
그때에 13 예수님께서 카이사리아 필리피 지방에 다다르시자 제자들에게, “사람의 아들을 누구라고들 하느냐?” 하고 물으셨다.
14 제자들이 대답하였다. “세례자 요한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엘리야라 하고, 또 어떤 이들은 예레미야나 예언자 가운데 한 분이라고 합니다.” 15 예수님께서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하고 물으시자, 16 시몬 베드로가 “스승님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드님 그리스도이십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17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시몬 바르요나야, 너는 행복하다! 살과 피가 아니라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것을 너에게 알려 주셨기 때문이다. 18 나 또한 너에게 말한다. 너는 베드로이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터인즉, 저승의 세력도 그것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 19 또 나는 너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그러니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고,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




어떤 책에서 보게 된 이야기를 생각나는 데로 적어보겠습니다.

아주 더운 여름 날, 개구리 세 마리가 나뭇잎에 올라탄 채 유유히 강물에 떠내려가고 있었습니다. 나뭇잎이 강의 중간쯤에 이르렀을 때 그 중 한 마리가 갑자기 벌떡 일어나 결심했다는 듯이 단호하게 외치는 것이었어요.

“너무 더워서 못살겠어. 나는 저 물 속으로 뛰어들꺼야!”

다른 개구리들은 그저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기만 했습니다.

자, 이제 그 나뭇잎에는 몇 마리의 개구리가 남아 있을까요?

저는 속으로 생각했지요. 한 마리는 뛰어들겠다고 했으니 강물 속에 들어갔을테고, 두 마리의 개구리는 고개만 끄덕인 것으로 보아서 그 나뭇잎에 그냥 남았을 것이라고. 따라서 나뭇잎에는 두 마리의 개구리만 남았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 책에서는 정답은 그냥 세 마리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결심과 실천은 다른 말이라고 말합니다. 즉, 개구리는 뛰어들겠다는 결심만 했을 뿐, 실천에 대한 말은 전혀 없다는 것이지요. 이 개구리가 정말로 물속에 뛰어들지, 또는 머리를 긁적이면서 자리에 다시 앉을지는 아무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아무튼 이 이야기를 통해서 어쩌면 우리들의 모습도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이 개구리처럼 우리들도 말만 하고 실천하지 않을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또한 그 곁에 있었던 다른 두 마리의 개구리처럼, 남의 말을 듣고 공감의 고갯짓도 하지만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는 모습을 보일 때 역시 참으로 많았던 것 같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님께 칭찬을 받습니다. 그래서 하늘나라의 열쇠까지도 받게 됩니다. 그런데 베드로에 대해서 한번 생각해보자고요. 그가 많이 배워서 똑똑했습니까? 아니면 그가 많은 재산과 세속적인 높은 지위를 가지고 있었습니까? 모두 아닙니다. 그는 어떻게 보면 무식한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는 미천한 갈릴래야 출신의 어부였습니다. 그렇다면 성격이 좋은가요? 그것도 아닌 것 같지요. 성서에 나타나 있는 그의 모습을 볼 때 덤벙대기도 하고, 무척 급한 성격임을 알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부족해 보이기만 한 그가 교회의 반석이 되고, 하늘나라의 열쇠를 받는 은총을 받게 됩니다. 왜 그럴까요? 비록 자신이 부족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주님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기 때문입니다.

사실 자신의 결점을 탓하면서 포기하는 사람을 많이 보게 됩니다. 그래서 앞선 개구리처럼 말만 하고 실천하지 않는 경우, 또한 다른 이의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이기는 하지만 ‘나는 못해’라고 포기합니다.

내 자신도 혹시 이런 경우에 속했던 것은 아니었을까요? 그 순간에 우리는 이 점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내가 부족하다는 판단을 주님께서는 결코 하시지 않는다는 것을, 오히려 주님께서는 그 부족함을 보고서 우리들을 뽑으실 지도 모른다는 것을. 그래서 그렇게 부족해 보이는 베드로를 뽑으셨습니다.


포기하지 맙시다.



당신은 잘 할 수 있습니다(‘좋은 글’ 중에서)

사는 것이 힘이 들때가 있습니다.
어쩜 나 혼자 이런 시련을 당하고 있는지
라는 생각을 하게 될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잠시 뒤를 돌아 본다면
우리는 참 많은 시련을 잘 이겨내어 왔답니다.

처음 우리가 세상을 볼때를 기억하나요.
아마 아무도 기억하는 이는 없을 겁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렇게 큰 고통을 이기고
세상에 힘차게 나왔습니다.

한번 다시 생각해 보세요.
얼마나 많은 시련을 지금까지 잘 견뎌 왔는지요.

지금 당신이 생각하는 것 시간이 지나면
웃으며 그때는 그랬지라는 말이 나올겁니다.

가슴에 저 마다 담아둔 많은 사연과 아픔들
그리고 어딘가에서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함께 시련을 이겨내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지금 당장 얼굴이 굳어진 채로 지낸다고 해서
지금 상황이 달라 진다면 그렇게 하겠습니다.

지금 당장 술을 다 마셔 지금 상황이 달라진다면
세상의 모든 술을 다 마시겠습니다.

지금 당장 어딘가에 화를 내고
누구와 싸워서 지금 상황이 달라 진다면
백만 대군과도 싸움을 하겠습니다.

지금 당장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당신이 가진 시련이 달라지거나
변화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냥 그런 상태일수록
그런 아픈 마음이 많을 수록 하늘을 보고 웃어보세요.
그렇게 웃으며 차근 차근 하나씩
그 매듭을 풀어보세요.

너무나도 엉켜 있다면 시간이 조금 더 걸리는 것 뿐이지
절대로 그 매듭을 못푸는 것은 아닙니다.
수없이 엉킨 매듭이 지금 당신의 앞에 있다면
그 매듭앞에 앉아 보세요,

마음은 많이 답답해질 겁니다.
언제 그 많은 매듭을 다 풀지라고
생각을 한다면 더 답답할것 입니다.

생각을 너무 앞질러 하지 마세요,
다만, 앉은 채로 하나씩 풀어보는 겁니다.
그렇게 문제와 당당히 마주 앉아 풀어보면
언젠가는 신기하게도 그 매듭이 다 풀려져 있을겁니다.

그때가 되면 찡그리거나
그 앞에 했던 고민들이 너무나 아무것도 아닌 일에
시련이라는 단어를 붙였구나 하는 생각이
스쳐지나갈것 입니다.

당장 찡그리거나 가슴아파해서
달라지는 것이 있다면 그렇게 하세요.
그러나 그렇게 해도 달라지는 것이 없다면
힘차게 웃으며 달려가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난 후
풀벌레 소리와 시원한 큰 나무 밑에서
편안하게 쉬며 웃고 있을 당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당신은 잘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