윗글에 나오는 아벨라아르와 엘로이즈의 사랑에 관해
익숙하지 않으신 분들을 위해 조금 소개합니다.
1142년 프랑스의 파라크레 수녀원장인 엘로이즈는 그녀의 젊은 수녀들과 함께
한 남자의 시신을 성교회로부터 인수하여 수녀원 뒷산에 고이 묻었다.
스승이며 남김없는 사랑을 바친 남편이기도 한 아벨라아르의 분묘를 지켜 30년,
이윽고 그녀마저 세상을 떠났을 때 사람들은 이 두사람을 전례없는 합장으로
모시었고, 몇해 후 개장하여 라 슈즈의 묘지로 옮겨 아름다운 쌍묘를 이루었는데
그후 8백여 년이 되는 지금껏 그들의 무덤을 찾는 이의 인적은 끊이지 않는다고 한다.
"저는 로마의 황후가 되기보다도 당신의 아내되기를 열망하며,
심지어 당신의 창녀가 되는 일이라고 해도 그것은 황제의 영화로운
황후되기보다 몇 갑절 나를 기쁘게했을 것을 의심할수 없습니다."
이 말은 수도녀 엘로이즈가 이 역시 수도자이던 아벨라아르에게 준 서한 속의
담대한 귀절이다.
<사랑과 수도의 편지>라는 표제로 이 두사람 사이의 서한은 온 세계에 번역되어
퍼진 바 있는데 고래로 여성이 쓸수 있었던 가장 격렬한 사랑의 말들이라고
정평되어 온 엘로이즈의 편지들을, 한번 되새겨 생각해 보고싶다.
일본어 이와나미 문고판으로 된 <아벨라아르와 엘로이즈>의 첫머리 범례에 보면,
<아벨라아르는 세상이 다 아는 중세기 굴지의 철학자,에로이즈는 재색을 겸비한 가인,
이 두사람의 사랑은 하룻밤 기구한 운명으로 중단되고 이들은 각기 수도원으로
몸을 의탁했었다.이 책은 수도원에서 수도원으로의 왕복 서한집이며, 인간애와
수도생활의 아픈 상극을 내용으로 하였으며 세계에서 가장 저명한 서간문의
그 한권이 된다>라고 씌어있다.
중세 철학계에 그 이름을 떨친 아벨라아르는 나이 39세에 이미 그를 흠모하여
모이는 5천 학도를 거느리고 명성과 자긍의 절정에 있었을 즈음 17세의 총명하고
어여쁜 한 처녀를 알게 되어 깊은 사랑에 빠져 들어갔다.
그곳의 명가이던 휼벨가의 질녀 엘로이즈의 교육을 맡는 명목으로 그 집에 입주한
그는 저녁나절 학교에서 돌아온 다음엔 줄곧 두 사람만의 서재에 들어박혀
애무와 환락에 사로잡혀 있었다.
사랑이 맛볼수 있는 모든 감미로움을 체험했었다고 술회하고 있는 아벨라아르 자신의
서한에 의하면 그는 때때로 엘로이즈에게 매질을 했는데 이 사랑의 매질은 그 어떠한
향료보다도 더 달가왔었다고 얘기하기까지 한다.
아벨라아르의 정신이 사랑으로 인해 혼란되고 있음을 알아차린 제자들은 재빨리
격분과 비탄에 휘몰리고, 더구나 엘로이즈의 숙부는 누구도 말릴수 없는
횡포한 분노 때문에 이성을 잃은 보복의 칼을 갈고 있었다.
그러나 이미 자기의 아기를 잉태하고 있었던 엘로이즈를 그는 그의 고향으로
도피시켜 그곳에서 아기를 낳게 했고, 사랑스런 아들에게 아스트라라브라는
이름으로 명명한 다음 아기를 누이동생에게 맡겨두고 두 사람은 다시 파리로 돌아와
비밀리에 결혼식을 올렸던 것이다.
며칠 후에 끔찍이도 불행한 밤은 오고 세상에서도 가장 참혹하고 추악한 복수는
거침없이 이루어지고 말았다.
아벨라아르가 깊이 잠들었을 때 엘로이즈의 숙부는 하인들을 돈으로 매수하여
아벨라아르의 신체의 한 부분을 절단해버린 것이다.
남자의 성을 잃은 아벨라아르에겐 육체의 고통보다도 치욕의 고뇌가 더 참기 어려웠고
상처의 아픔보다 동정받는 아픔이 훨씬 더 혹독했었다고 한다.
국부가 손상된 동물은 신의 제물로도 쓰지 말라고 성서에 씌어 있음을 아는 그,
스스로의 당혹과 염오는 도저히 표현할 수도 없을 만큼 가혹했었다는 것이다.
그는 곤혹과 수모를 안은채 수도원으로 뛰어들었고, 엘로이즈 또한 그의 뜻을 받들어
쌍 도니의 수도원, 그 깊은 울안으로 사라져 버렸다.
그때 눈물과 흐느낌의 뒤범벅 속에, 저 폼페이우스장군의 아내 고루네리아가 남편의
참혹한 죽음을 통곡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어 뒤를 좇은 비탄의 대사가 그녀 입에서
새어 나왔다.
아아 우리의 침실에서 나의 사랑스런
위대한 낭군이여, 죽어 가시었나.
죄 많은 이 몸
임의 화를 빛으려고 몸 바친진 몰라도
지금은 받으소서.
기쁨으로 목숨을 버리는
나의 이 보상을,
엘로이즈는 본시 수도원에 맡겨져 거기서 양육되었고 철든 후 잠시 속세에 나왔다가
아벨라아르와의 연애로 인해 다시 수도원으로 이번에야말로 영원히 돌아가게 된 것이다.
그녀가 세속에 섞여 산 것은 불과 삼 년뿐 엘로이즈의 유일한 재산이라고 할
아벨라아르와의 사랑의 회상은 그녀의 한 평생을 통해 더 없이 보배스러웠다.
그녀의 신앙심 역시 찬양받기에 충분했었으나 일단 그녀가 아벨라아르를 향해 붓을
잡았을 때만은 숨겨온 격정의 둑이 터지고 적쟎이 관능과 욕정을 마저 호소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하지만 끝내는 아벨라아르의 명령, 그 범할수 없는 절대의 발언을 따라 육체적인 사랑을
정신애에까지 이끌어 올렸고, 따라서 그네들의 서한집 그 후반부에서는 뜨거운 구도의
부르짖음으로 넘쳐 있음을 보게된다.
"고귀한 여인 중의 어느 누가, 세력있는 여인중의 어느 한 사람인들 그 행운에 있어
나를 넘어설수 있겠습니까. 나는 당신으로 인해 가장 높은곳,또 가장 자랑스러운 기쁨에
이르렀고 지금은 다시 당신으로 인해 가장 비참한 이곳에까지 낙하하고 말았습니다."
"신을 노여우시게 하기보다 당신이 노여워하실까 그걸 겁냈습니다.
그리고 신의 마음에 들기보다는 당신의 마음 속에 합당하길 바랐거니,
내가 법의를 입고 성교회에 온 것도 신의 명령이었다기보다는,
당신께서 나에게 이와 같이 시키셨던 그 때문이었습니다."
"만약에 당신을 잃는다면 무슨 소망이 내게 남겠습니까.
정녕 그렇게 되고 만다면 무슨 위로를 힘입어 이 세상의 여로를 걷겠습니까?"
"아아 이렇게 외칠 수가 있다면 얼마나 가슴이 후련할는지.
신이시여, 당신께선 만사에 가혹하십니다. 사랑이 깊으신 듯이 보이지만
사실은 전혀 무자비하십니다."
"신의 외경도 성인들의 행적도 나를 움직일 수는 없습니다. 믿음이 흔들리는 나를,
오랜 고뇌로 여위어가는 나를 부디 조금이라도 위로해 주십시요.
진실로 신성한 혼인의 비적으로 항상 나에게 연결되어 계시는이여!"
"우리가 함께 맛본 사랑의 쾌락은 참으로 감미로와 나는 그걸 뉘우칠 수 없고
또한 내 기억 속에서 지울수도 없습니다. 어느 쪽을 보아도 나의 눈앞에 되살아나고
내 욕정에 불을 일굽니다.
내가 저지른 죄를 슬퍼해야 할 것임에도 불구하고 도리어 나는 아주 맹렬하게
잃어버린 것을 그리워합니다."
"나는 신에 대해서 비난을 품고 있습니다. 그분이 베푸신 부당한 형벌을 잠시도
잊을 수가 없기 때문에 결국 언제나 신을 노엽게 해드리게 됩니다.
가령에 죄를 고백하고 여러가지 고행으로 그것을 기워갚는다고 해도 내 정신이
다시금 죄에 대한 의지를 갖고 지난 날에의 욕망으로 불타고 있는 이상 어떻게
통회라고 부르겠습니까."
"유일한 이여! 당신께서 우리와 멀리 떨어진 곳에서 숨져 돌아가신다면
당신의 시신을 저희들께 보내주시길 부탁하겠습니다. 그로써 당신은 항상
저희에게 기억되고 보다 더 충분한 기도의 열매를 얻으시게 됩니다.
그러나 꼭 그렇게 되진 않는다고 해도 당신의 기억이 어찌 잠시나마 사라질 수
있겠습니까?"
"당신의 죽음을 생각만해도 금시 나는 숨이 막힙니다.
하물며 정작으로 당신이 죽어가신다면......, 아니 당신에 앞서 내가 죽을지언정
당신이 먼저 돌아가시지 않게 나는 쉬임없이 기도합니다."
"당신의 신의 거룩한 이름으로 부탁드리거니 부디 가능한 방법으로 조금만
내 앞에 나타나 주십시오. 나를 위로하는 편지를 써 주십시요.
진정 조금 당신의 위로를 힘입을수 있다면 나는 몇갑절 성심으로 우리들의 신께
봉사할 수 있습니다."
"악마들은 우리를 정사로서 파멸시킬수 없어 결혼을 가장해 우리를 넘어뜨린 것입니다.
아아 신성하고 서러운 나의 님이여!"
엘로이즈의 편지 속에는 여인의 한이 맥맥히 굽이치고 있다.
하기야 동일한 한 통의 편지 속에서라도, 가령 신학자가 글귀를 추려오는 경우엔
더 거룩하고 신심이 엿보이는 부분을 골라올는지 모르지만 내게 있어선 앞서
추려본 이러한 말들에서만이 그녀의 생생한 진실을 바라볼 수 있을 것처럼 여겨진다.
그렇다고 엘로이즈에게 신앙이 없었던것은 아니다.
그녀의 의식 가운데 참 많이 아벨라아르가 살고 있었지마는 그러나 인간의 영토는
심히 광활하여 ,가령 엘로이즈에게 있어서 조차 아벨라아르 앞에 내맡겨 건네었던
그 나머지는 모두 그녀의 신께 바쳤던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따라서 나는 사람에게 준 것과 신께 바치는 것과의 사이 그 분량을 계산하는 따위를
용서할 수가 없다.
아무리 많은 강물을 퍼내어도 나머지 물은 강 스스로의 자리에 남겨 있듯이
세상의 여인들이 그녀의 연인과 남편과 자식에게 제아무리 남김없이 모두를
베푼다고 해도 궁극에 있어 그녀들의 영혼은 남아 신께 돌아간다.
종내 신앞에 귀의하여 영겁의 안식에 포근히 안김을 부인할 수 없다.
Querer(사랑하는 모든 것) / Rogenberg Tri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