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배필 성
요셉 대축일 (San Giuseppe Sposo della Beata Vergine Maria) **
동정녀 마리아의 배필로 예수를 기른 아버지.
일반적으로 의인(義人)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는 마리아와 약혼을 하고 같이 살기
전에 잉태한 것이 드러났을 때 이 사실을 세상에 드러내지 않고 남모르게 파혼하기로
마음먹었던 태도에서 드러난다(마태 1:18-20).
다윗의 가문에 속한 요셉은 마리아와 동침하지 않았으나 법적(法的)인 남편이며,
예수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잉태되었으나 아버지 요셉을 통하여 법적인 다윗의 후손
(마태 15:23)이 되었고 메시아로 불릴 수 있었다(마태 22:42).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인구조사령에 따라 베들레헴에 가서 예수의 탄생을 보았고
아기 예수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하여 이집트에 피난했다가 나자렛에서 목수로 일하며
성가정(聖家庭)을 이끌어 갔다.
교회 전체의 주보로 공경받을 뿐 아니라 노동자, 가정, 동정녀, 환자, 임종하는 자의
주보이기도 하다.
교황 비오 11세는 요셉을 무신론적 공산주의와 투쟁하는 자들의 주보로 정하였고(1973년),
비오 12세는 노동자 성 요셉의 축일을 공포했으며(1973년)
요한 23세는 성 요셉을 제 2차 바티칸 공의회의 보호자라고 불렀다 (1961년).
(가톨릭대사전에서)
요셉은 히브리어로 ’하느님께서 더하신다’이란 뜻이다.
예수님의 양부인 요셉에 관한 내용은 마태오 복음 1~2장, 루가 복음 1~2장의
예수 탄생 기사에서 발견되는 것이 성서상의 근거이다.
이에 따르면, 요셉은 다윗 왕가의 후손이고, 요셉 가문은 유데아의 베들레헴에서 왔으나,
갈릴레아의 나자렛으로 이사하여 목수일을 하고 있었고, 이미 의인으로 존경받고 있었다.
그는 마리아와 약혼하였으나, "성령의 힘으로" 아기를 가진 그녀와 파혼하지 말라는
천사의 말을 듣고, 천사가 명한대로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였다.
그는 마리아와 함께 아기 예수께 조배하러온 동방박사의 방문을 받았고,
헤로데의 영아 학살을 피하기 위하여 가족을 이끌고 이집트로 피신하였다.
헤로데가 죽은 후에야 가족들은 나자렛으로 와서 살았다.
그와 마리아는 아기에게 할례를 베풀었고, 주님을 예루살렘 성전에 봉헌하였다.
예수가 12세였을 때, 그는 마리아와 함께 예수를 예루살렘으로 데리고 가서 잃어버렸다가,
학자들과 이야기하는 아들을 찾기도 하였다.
이때부터 요셉은 루가 복음 4장 22절을 제외하고는 신약에서 언급되지 않는다.
요셉은 아마도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 이전에 운명한듯 여겨진다.
야고보의 위복음서에는 그가 마리아와 결혼하였을 때, 이미 노인이었다고 말하기도 한다.
요셉의 공경은 동방교회에서부터 시작되었는데, 요셉 이야기라는 외경은 4세기부터
7세기까지 대중들로부터 사랑받는 인기있는 책이었다.
서방 교회에서는 아일랜드 사람인 왠거스 펠리르란 분이 "기념"했다는 언급이 있으나
(9세기), 15세기까지는 요셉 공경이 확산되지 않다가, 이 축일이 1479년에 로마력에
도입되면서부터 널리 알려졌다.
성 요셉 신심은 특히 성녀 데레사와 성 프란치스코 드 살에 의하여 보편화되었고,
1870년에 비오 9세 교황이 요셉을 보편 교회의 수호성인으로 선포하였으며,
레오 13세는 가장의 모델로 선포하면서, 성인들 가운데 성모님 다음의 위치로 올리셨다.
노동자의 수호자란 칭호는 베네딕토 15세가 부여하였고,
비오 11세는 사회정의의 수호자로, 또 비오 12세는 5월 1일을 성 요셉 노동자 축일로
확정하셨다.
(성바오로수도회홈에서)
세상에는 다른 초목 사이나 나무 그늘에 가려져 사람의 눈에는 잘 띄지 않는 것이라 해도,
사방에 향기를 풍기며 날이 갈수록 그 향기가 더해 마침내 부근의 기 전체를 향기로
화하게 하는 것과 같은 꽃이 있다.
성 요셉도 그러한 꽃 중의 하나에 비유할 수 있는 분이었다.
그는 누구나 아는 바와 같이 구세주의 양아버지인 동시에, 성모 마리아의 보호자이지만
그에 대해서 복음서 중에 기록된 곳은 매우 적다.
그리고 세상 사람도 겸손한 성인의 생존시에는 별로 주목을 안했지만 다만 묵묵히 쌓인
성덕의 빛은 언제까지든지 감추어져 있지 않고 특히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복음이
전파됨에 따라 그의 양아버지의 성덕도 차차 세상에 알려지고 뭇사람들에게 존경을
받게 되었다.
성 요셉은 다윗 왕가의 후손이었다.
그러나 그의 시대에는 옛 영화도 꿈처럼 사라져서 빈궁한 나머지 겨우 손에 익은 목수의
일을 하며 그 날 그날을 보내지 않으면 안 될 형편이었다.
그런데 그는 정결하고도 겸손하고 게다가 열렬한 신앙과 하느님께 무한한 신뢰를 갖고
있었으므로 하느님께서는 성자와 성모를 맡기시는데 그 사람 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리시고
오묘한 섭리로써 그를 성모 마리아의 배필로 삼으셨던 것이다.
여기에 신비한 일은 마리아도 요셉과 같이 성왕 다윗의 혈통을 계승하고 또한 같이
현세의 재물의 혜택을 받지 못한 분이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마리아는 성덕에 있어서는 전후무비(前後無比)로 혜택을 받고 있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그녀를 성자의 성모로 간택해 대천사 가브리엘을 보내시어
그 뜻을 그녀에게 고하게 하셨지만, 그것은 이미 다 알고 있는 것이니 여기서는 생략하여
한다. 하여튼 그 뒤 곧 성령의 불가사의한 작용에 의해 천주성자는 인성을 취하셔서
마리아의 태중에 잉태하시게 되었다.
그 당시 마리아는 아직 요셉과 한 집에 살지 않고 다만 종종 나자렛에서 서로 만났을
뿐이었으므로 그녀의 잉태함을 알자 사정을 모르는 요셉의 놀람과 괴로움은 대단한
것이었다. 그는 어떻게해야 좋을 지 몰랐다.
유다교의 율법에 의하면 부정을 저지른 부인은 돌로 쳐죽이던가 그렇지 않으면 다른 극형에
처하기로 되어 있었다. 그래도 성서를 보면 바로 이때 요셉을 의인이라 했고 그는 마리아의
정결함을 믿고 감히 고발하려고 하지 않고 가만히 약혼을 풀어 그녀를 다시 자유의 몸으로
놔주려 결심했다고 한다.
이와 같이 요셉이 이리저리 망설이고 있을 때이다. 갑자기 주님의 천사가 꿈에 나타나
"다윗의 자손 요셉, 두려워하지 말고 마리아를 당신의 아내로 맞아들이시오. 그녀의 태중에
있는 아기는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마리아가 아들을 낳을 터이니 그 아기를 예수라 부르시오. 예수는 자기의 백성을 죄에서
구원할 것입니다"(마태 1, 20-21)하고 말했다.
이에 비로소 요셉의 의혹은 완전히 풀어지고 무한한 즐거움을 충만히 누리게 되었다.
하느님께로부터 온 사신에게 오묘한 섭리에 대해 알림을 받고 그 위에 황송하게도
천주성자, 세상의 구세주를 의자(義子)로 삼고 이에 이름지어 주고 아버지로서의 권리를
행사할 수 있게 된 것은 얼마나 큰 영광인가!
실로 아득한 미래에 이르기까지 절대로 그 예를 보지 못하는 특권이기도 하고 명예이기도
하다.
요셉은 천사의 알림에 따라 마리아를 아내로 삼고 동정을 지키며 성스러운 생활을 시작했다.
그 성가정에 대해서는 2,3가지의 사실밖에 성서에 기록되지 않고 있다.
그에 의하면 어느 가정에서나 마찬가지로 성 가정에도 때로는 기쁨이 있었고 때로는
슬픔이 있었다.
그러나 어느 때에도 가장인 요셉의 높은 성덕은 명백히 나타나 있다.
마리아도 함께 살기 시작한 지 얼마 안되어 당시의 황제 아우구스토(Augustus)의 칙령에
의해 호적조사가 행해져 사람들은 모두 자신들의 본적지로 가지 않으면 안되었다.
요셉이나 마리아나 그들의 본적지는 같이 베들레헴이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나자렛을 출발해 멀리 베들레헴을 향해 가게 되었다.
때는 마침 겨울이라 동주에서의 고생은 이루 말할 수 없었고, 5, 6일 만에 간신히 목적지에
당도햇으나, 유숙할 적당한 곳이 없었다.
하다못해 마굿간에서 하룻밤을 지내게 되었는데 그동안 마리아는 성자를 탄행시키셨고,
성요셉은 하느님께로부터 그들을 보호할 대임을 맡고서도 좋은 장소를 마련해 주지 못한
것을 얼마나 마음 아파했는지 모른다.
그래도 그는 무엇이든간에 잘 참았다. 그러던 중에 그의 희생에 대한 보수와 같이
기쁜 일이 연달아 일어났다.
즉 천사들의 찬미가, 목동들의 조배, 동국(東國) 삼왕들의 내조(來朝)가 그러한 것이다.
이런 것은 물론 요셉에 대한 것이 아니라 하느님 성자게 대한 존경이었다.
그러나 늘 하느님의 영광만을 원하는 요셉에게는 그것을 자기 것처럼 기뻐했던 것이다.
그 뒤 곧 성모의 가슴이 일곱 칼로 찔리는 것과 같은 슬픈 때가 왔다.
그것은 요셉에게도 고통의 시련이 되었다. 즉 어느날 밤 한 천사가 나타나 요셉에게
"일어나 아기와 아기의 어머니를 데리고 이집트로 피신해 내가 일러줄 때까지 거기
있으시오. 헤로데가 그 아기를 죽이려고 찾고 있소"(마티 2, 13)하고 알려준 것이다.
이는 간단한 명령인 것 같지만 의미는 극히 중대한 것이다.
베들레헴에서 몇주간이나 걸리는 먼 이집트에, 게다가 아무 준비도 없이 밤중에 즉각
출발해야 된다는 것은 얼나나 고생스런 것인가. 그 위에 도중에는 위험천만한 사막이
있는 것이다. 자기는 도대체 어디서 직업을 구하며 어떻게 성가족을 봉양 할 수가
있을 것인가? 이같이 많은 앞으로의 염려가 필연코 요셉의 마음을 스쳤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모든 근심을 하느님의 명령에 내맡기고 흔연히 따랐던 것이다.
이집트에 얼마동안 체재했는가는 알려져 있지 않지만 적어도 3년 가량은 있었을 것이다.
그러던 중 갑자기 꿈에 나타난 한 천사의 입으로부터 "아기의 목숨을 노리던 자들이
이미 죽었으니 일어나 아기와 아기 어머니를 데리고 이스라엘 땅으로 돌아가시오"
(마태 2, 20)하는 말씀을 듣고 요셉은 다시 성자와 성모를 보호하며 고향으로 돌아왔다.
진실로 말한다면 그의 생각에는 베들레헴을 영주지(永住地)로 하고 싶었다.
왜냐하면 그곳은 우선 성자께서 탄생한 성지도 될뿐더러 성전이 잇는 예루살렘에서도
멀지 않고 또한 대도시에 가까운 관계로 작은 마을에 불과한 나자렛에 있는 것보다는
자기의 목수일이 많으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성자의 생명을 빼앗으려는 헤로데의 아들이 아직 유다를 다스리고 있는 이상
주저할 수 없었다.
그 위에 하느님의 계시도 있고 해서 그는 이번에도 역시 깊은 신뢰를 가지고 이에 순종해
갈릴레아에 돌아가서 옛고향 나자렛에서 살아가게 되었다.
요셉의 신앙은 또 한 번 시험당했다. 그것은 성모와 12세의 예수를 데리고 예루살렘
성전을 참배했을 때 돌연 성자를 잃어버리고 형언키 어려운 불안과 초조한 마음으로
3일간이나 찾아 헤매었던 일이다.
그런데 예수께서 성전에 있는 수많은 율법학자에 둘러싸여 당당히 말을 주고받고 하는
것을 발견했을때 그의 즐거움은 대단한 것이었다.
이로써 성가족은 재차 나자렛에 돌아왔지만 그 뒤의 예수의 청소년 시대의 사생활에
대해서는 성서에 단지 "부모에게 순종하며 지냈다"(루가 2, 51)고 기록됐을 뿐이다.
생각컨대 예수께서는 사람들의 자녀에게 거울이 될 만큼 부모에게 효도하며
늘 잘 도와드렸음이 분명하다.
예수의 공생활로 들어가서 복음을 전하시기 전에 성요셉은 조용히 세상을 떠났다.
그래도 천주의 성모와 하느님이시고 모든 사람들의 심판자이신 예수 자신에게 간호 받으며
세상을 떠난 그의 임종은 다른 어떠한 성인에서도 볼 수 없는 은혜였던 것이다.
예수께서는 참으로 그때 양부인 요셉에게 "충실한 분이여, 주님의 종으로서의 즐거움을
누리소서!"하고 아주 강한 위로의 말씀을 해드렸을 것이다.
지극히 겸손하신 요셉이여, 우리를 위해 임종의 은혜를 하느님께 간구해 주소서!
(대구대교구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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