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ily/★ 빠다킹 신부님과 새벽을..

고통을 두려워하지 맙시다.

ohjulia 2006. 4. 2. 05:50
2006년 4월 2일 사순 제5주일 나해

제1독서
예레미야 31,31-34
31 보라, 그날이 온다. 주님의 말씀이다. 그때에 나는 이스라엘 집안과 유다 집안과 새 계약을 맺겠다. 32 그것은 내가 그 조상들의 손을 잡고 이집트 땅에서 이끌고 나올 때에 그들과 맺었던 계약과는 다르다. 그들은 내가 저희 남편인데도 내 계약을 깨뜨렸다. 주님의 말씀이다.
33 그 시대가 지난 뒤에 내가 이스라엘 집안과 맺어 줄 계약은 이러하다. 주님의 말씀이다. 나는 그들의 가슴에 내 법을 넣어 주고, 그들의 마음에 그 법을 새겨 주겠다. 그리하여 나는 그들의 하느님이 되고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될 것이다.
34 그때에는 더 이상 아무도 자기 이웃에게, 아무도 자기 형제에게 “주님을 알아라.” 하고 가르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이 낮은 사람부터 높은 사람까지 모두 나를 알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주님의 말씀이다. 나는 그들의 허물을 용서하고, 그들의 죄를 더 이상 기억하지 않겠다.


제2독서
히브리서 5,7-9
7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 계실 때, 당신을 죽음에서 구하실 수 있는 분께 큰 소리로 부르짖고 눈물을 흘리며 기도와 탄원을 올리셨고, 하느님께서는 그 경외심 때문에 들어 주셨습니다. 8 예수님께서는 아드님이시지만 고난을 겪으심으로써 순종을 배우셨습니다. 9 그리고 완전하게 되신 뒤에는 당신께 순종하는 모든 이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셨습니다.

복음
요한 12,20-33
20 축제 때에 예배를 드리러 올라온 이들 가운데 그리스 사람도 몇 명 있었다. 21 그들은 갈릴래아의 벳사이다 출신 필립보에게 다가가, “선생님, 예수님을 뵙고 싶습니다.” 하고 청하였다. 22 필립보가 안드레아에게 가서 말하고 안드레아와 필립보가 예수님께 가서 말씀드리자, 23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사람의 아들이 영광스럽게 될 때가 왔다. 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25 자기 목숨을 사랑하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이 세상에서 자기 목숨을 미워하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에 이르도록 목숨을 간직할 것이다. 26 누구든지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라야 한다. 내가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사람도 함께 있을 것이다. 누구든지 나를 섬기면 아버지께서 그를 존중해 주실 것이다.
27 이제 제 마음이 산란합니다. 무슨 말씀을 드려야 합니까? ‘아버지, 이때를 벗어나게 해 주십시오.’ 하고 말할까요? 그러나 저는 바로 이때를 위하여 온 것입니다. 28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십시오.”
그러자 하늘에서 “나는 이미 그것을 영광스럽게 하였고 또다시 영광스럽게 하겠다.”는 소리가 들려왔다. 29 그곳에 서 있다가 이 소리를 들은 군중은 천둥이 울렸다고 하였다. 그러나 “천사가 저분에게 말하였다.” 하는 이들도 있었다. 30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그 소리는 내가 아니라 너희를 위하여 내린 것이다. 31 이제 이 세상은 심판을 받는다. 이제 이 세상의 우두머리가 밖으로 쫓겨날 것이다. 32 나는 땅에서 들어 올려지면 모든 사람을 나에게 이끌어 들일 것이다.”
33 예수님께서는 이 말씀으로, 당신께서 어떻게 죽임을 당하실 것인지 가리키신 것이다.





오늘 새벽, E-Mail을 확인하는데 깜짝 놀랐습니다. 평소에는 그렇게 많지 않던 E-Mail이 갑자기 폭주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 내용이 다 대동소이 합니다. 대부분 ‘저 때문에 깜짝 놀랐다.’는 내용이 담긴 메일이었습니다. 그리고 홈페이지에 들어가서도 깜짝 놀랐지요. 제 묵상 글에 대해서, 보통 20개 미만이었던 덧 글이 50개 넘게 달려 있지 않겠습니까? 제가 글을 잘못 썼나 싶어서 확인을 해보니, 이 내용 역시 E-Mail과 비슷합니다.

바로 어제의 새벽 묵상 글 내용 때문이었습니다. 사실 어제 만우절이라고 거짓말로 새벽 묵상 글을 시작했었거든요. 그랬더니만 이런 폭발적인 반응으로 되돌아오네요. 아무튼 평소에 조용했던 제 카페에 이 글 하나로 북적북적해지는 모습을 보니까 기분이 좋기는 하네요.

남들이 생각해내지 못했던 거짓말 하나로 이렇게 관심을 끄는 모습을 보면서, 이런 행동을 자주 해야겠다는 짓궂은 생각을 문득 갖게 됩니다. 하긴 예수님께서도 그러셨지요. 물론 저처럼 거짓말 하신 것은 아닙니다. 대신 남들이 생각하지 못한 방법으로 사람들에게 접근하셨고, 또한 남들이 생각하지 못한 행동을 직접 실천하심으로써, 20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당신께 대한 폭발적인 관심을 갖도록 하신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오늘 복음만 보아도 예수님의 가르침이 그 당시의 지도자들과 다른지를 알 수가 있지요.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자기 목숨을 미워하는 사람이 있을까요? 그래서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어야 많은 열매를 맺듯이 죽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까요? 그 어떤 종교 지도자도 이렇게 파격적인 말은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단지 율법만 잘 지키면 된다고만 말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달랐습니다. 파격적이고 자극적인 말씀을 계속하심으로써 사람들의 이목을 받았습니다. 또한 당신께서 십자가의 죽음을 통해서 그 모범을 보여주시기도 했습니다. 그렇다면 단지 이렇게 사람들의 주목을 받기 위해서 이런 말씀을 하신 것일까요? 아닙니다. 우리 역시 당장 이 말씀에 대한 실천을 할 수 있도록 끊임없이 자극적인 말씀을 하셨던 것이지요.

그 어떤 사람도 고통 앞에서, 그리고 죽음 앞에서 자유로워질 수 없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이러한 고통과 죽음을 어떻게든 피하려는 것이 바로 우리 인간들의 모습입니다. 하지만 그 안에서도 희망이 있으며, 하느님을 체험할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사실 고통이 없는 곳에는 사랑도 없는 것 같습니다. 산모의 고통 없이는 사랑스러운 아기를 낳을 수 있을까요? 또한 산의 정상을 케이블카 타고 쉽게 오른다면 산에 대한 깊은 애정을 가질 수가 있을까요? 이밖에도 고통을 통해 사랑과 기쁨을 체험하는 경우는 너무나 많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죽으라는 자극적인 말씀을 하십니다.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서, 나의 가정을 위해서, 그리고 나의 이웃들을 위해서 내 자신을 한 번씩 죽이는 삶을 계속해서 살라고 하십니다. 왜냐하면 이 죽음을 통해 진정한 사랑을 이 땅에 꽃피울 수가 있고, 비로소 진정한 행복을 체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예수님의 말씀에 깜짝 놀라야 할 때입니다. 그래서 그 말씀에 실천하는 반응을 보여야 합니다. 사랑을 위해서라면 죽어야 한다는 말씀, 그래야 많은 사랑의 열매를 맺을 수 있다는 말씀을 내 삶의 한 가운데에 위치시키는 오늘이 되었으면 합니다.


고통을 두려워하지 맙시다.



달팽이('행복한 동행' 중에서)

아직 추위가 채 가시지 않은 어느 쌀쌀한 봄날, 달팽이 한 마리가 나무를 기어오르기 시작했다. 나뭇가지에 앉아 있던 새 한 마리가 달팽이에게 쏘아붙였다.

"이 바보 같은 달팽이야! 도대체 네가 어디로 가는 줄이나 알고 있니?"

옆에 있던 다른 새가 거들었다.

"지금은 나무에 올라가 봤자 아무런 열매도 없어."

그러자 묵묵히 나무를 기어오르던 달팽이가 대꾸했다.

"내가 저 꼭대기에 올라갈 즈음에는 틀림없이 열매가 열릴거야."

새들은 달팽이의 뚝심에 놀라고 말았다